백합/오늘의 강론

하느님,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수성구 2022. 1. 28. 05:50

하느님,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2사무 11,1-17; 마르 4,26-34 / 2022.1.28.; 성 토마스 아퀴나스; 이기우 신부

 

  오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기념일입니다. 그는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했던’(집회 15,5. 입당송) 사제 학자로서, ‘뛰어난 성덕과 거룩한 학문의 본보기’(본기도)였습니다. 교회의 두 번째 천년기가 시작된 시기에는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교회가 십자군 전쟁(1095~1291)을 일으켰는데, 뛰어난 성덕을 지녔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불행한 사태를 학문적으로 수습하였습니다. 13세기에 그가 쓴 「신학대전」(神學大典)은 이 십자군 전쟁으로 유입된 앞선 이슬람 문명이 전해준 보물 창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이용하여 근세와 현대를 준비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았던 것입니다. 두 번째 천년기를 마무리하던 20세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던 교부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법론인 네오 토미즘을 응용하여 귀납법적으로 사태에 접근하였습니다. 역대 교황들은 이 귀납법적 방식에다가 가르멜 수도자들이 발견해 낸 지혜, 즉 사회악을 관찰하고 나서 공동선을 판단하며 사도직으로 공동선을 창출해 내는 영성으로 현대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문제의식으로 삼았습니다. 그 요체가 시대의 징표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시대 상황을 통해 추론해 나가는 방식으로 공의회 문헌이 작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의 시대는 이집트 노예살이 시절에 바닥을 치고 올라온 정점이었고 그 이후 예수님 시대까지 줄곧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심으로써 바닥을 치고 올라갈 뻔하더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래 다시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떠도는 유랑생활을 하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겨우 수습을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윗의 시대에 시온 계약으로 정점을 찍었던 순간은 시편 8장으로 남아 있지만, 그가 곧 이어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부하를 죽이는 죄악을 저지름으로써 자신과 동족의 운명을 내리막으로 끌어내린 일은 시편 51장에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정녕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머니가 저를 배었습니다. …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당신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당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제가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

 

  본시 시온 계약에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은 시나이 계약의 정신, 즉 하느님을 섬기고 약자를 돌보겠다는 약속에 붙여진 부록과도 같은 것이었고 다윗이 그 정신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검증되어 왕위에 올려진 것이었는데, 다윗은 축복을 받자마자 죄악을 저지름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이 더 이상 사람에게서는 가망이 없어지게 만들었고 급기야 다윗 가문에서 출현할 메시아에게서 실현되도록 단계를 건너뛰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뿐만 아니라 이러한 다윗의 죄악과 속죄하는 참회도 사실 알고 보면, 이미 옛적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으셨던 하느님의 말씀(신명 30,19)에 대하여 개인이든 민족이든 인간의 자유가 선택한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하느님 나라를 현세에 세우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은 하느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것이지만, 인간의 자유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 열매 맺는 시기와 풍성함의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리해 놓았고, 공의회가 집대성한 문제의식으로 지금과 다가올 시대의 사회를 해석하고 응답하는 관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읊은 속죄의 시편을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는 성무일도의 초대송에도 되풀이하는 것이며, 특히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로 갈 때에 연도의 한 부분으로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자라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요, 인간의 자유와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의 철칙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