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죄인을 부르러 왔다

수성구 2022. 1. 16. 04:37

죄인을 부르러 왔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코 복음 2장 17절은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 땅에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말씀이다.

 

여기서 '건강한 이들'이라는 표현은

 은유적 표현인데, 

자기식의 의(義)를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의사'도 은유적 표현으로서

죄에 빠진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예수님 당신 자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 속에는

 예수님께서 왜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야 했는가에 대한 

해답이 주어져 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외적 조항을

 가지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단죄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못 알아보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교만과 

위선에 사로잡혀 있었는가를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건강한 척하면서 

당신을 외면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위해 오시지 않고, 

자신의 영적 건강을 걱정하던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의사이셨다.

 

특히 마르코 복음 2장 17절의 

전반부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유행하던 속담으로 알려졌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속담을 이용해서 바리사이들의 

교만과 위선을  지적했던 것이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여기서 '부르러'는 구원에로의 초대나

 제자로의 부름(마태4,21; 1베드2,9)을 

의미한다. 이 문장은 동사 하나에 

두 개의 목적어 '의인'과 '죄인'이 

동시에 사용되어서 서로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진정한 의미의 의인이 아니고,

본인이 자신을 생각하는 관점에서의 

자칭 의인이다.

 

왜냐하면 로마서 3장 10~2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의인이

한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죄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죄인'이라는 개념 역시 

꼭 어떤 죄를 지은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응답할 수 있는, 

스스로 죄인이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루카5,8).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초대를 받을

 자격은 겸손하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정확한 자기 의식이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겸손은 나무의 뿌리처럼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며,

자신을 감추는 것이고, 땅 속 깊이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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