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의 과정: 물과 피와 성령
1요한 5,5-13; 루카 5,12-16 / 2022.1.7.; 공현 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지방에서 주로 활동하시던 예수님의 소문이 그 지방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해서 천형(天刑)이라 불리던 나병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만으로 아주 간단하게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루카 5,13).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그 놀라운 치유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몸이 깨끗해진 나병환자에게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단지 한 말씀만 하셨는데, 그것은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진 몸을 보여주고, 그러니까 나병이 나았음을 증명해주고 이에 대한 예물을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공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장면의 본질에 대해서는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도 요한의 진술이 적중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성령으로 그분의 참 모습이 증언된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여기서 물은 세상의 죄에 물들어 자기가 지은 죄를 씻어버리는 회개를 상징합니다. 의로움의 가치를 드러내는 세례성사의 은총입니다. 또 피는 아직도 여전히 사람들이 짓고 있는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한 희생을 상징합니다. 거룩함의 가치를 드러내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이 의로움과 거룩함의 가치로 사회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사도직 활동은 불치의 나병이라도 깨끗하게 하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신데, 이로써 세상은 온갖 오류와 이로 말미암은 우상숭배적이고 무신론적인 죄악들로부터 정화되어 깨끗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죄악들은 사탄이 조종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 즉 탐욕과 지배욕은 물론 진리에 눈먼 무명(無明)까지 걸쳐있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탐욕은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소유해야 하거나 공동으로 사용해야 할 재화들을 독차지하려 들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의 폭등, 분배정의의 지체, 빈부양극화 선호 등을 초래합니다. 지배욕은 기왕에 차지하고 있던 기득권의 카르텔을 방어하고자 허수아비를 내세워서라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무명은 세상에서 얻은 지식과 명성에 기대어 하느님을 가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눈먼 채로 살아가게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물과 피와 성령, 즉 의로움과 거룩함과 사도직이 지닌 가치와 힘을 사회적으로 공현시켜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대적해야 할 과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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