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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세례 받고 남에서 견진성사

수성구 2021. 6. 4. 05:02

북에서 세례 받고 남에서 견진성사

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이순전 할머니, 1949년 황해도 송화성당 영세 72년 만에 감격의 견진

 

▲ 김종수 주교가 황해도 송화성당에서 세례 받은 지 72년 만에 견진을 받는 이순전 할머니 이마에 도유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새기고 있다.


72년 만의 견진성사로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1935년생,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인 이순전(아가타)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인 23일 대전교구 대화동성당에서 봉헌된 교중 미사 중 33명에 대한 견진예식에서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가 축성 성유를 도유하고 안수하자 할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1949년 당시 서울대목구 관할이던 황해도 송화성당에서 1944년 9월부터 1950년 9월까지 3대 주임으로 재임한 서기창(프란치스코)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지 꼭 72년 만이었다. 2009년 1월 대전교구에 양업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작성한 그의 교적에는 ‘재령성당’으로 기록돼 있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고향 송화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서 신부님한테 세례를 받았는데, 신부님이 성당에서 정치보위부원들이 던진 폭탄에 맞아 돌아가시는 걸 제가 목격했어요. 그러고 나서 곧장 단신 월남했고, 한동안 군산에서 피란살이를 하다가 대전으로 와서 정착했어요. 한동안 잡화점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혼인했는데, 4남 2녀를 뒀어요. 혼자서 교적도 없이 월남했기에 영성체도 못 하고 겨우 신앙생활만 하다가 10여 년 전에야 교적도 만들고 2012년에야 판공을 한 뒤 성체도 받아 모시게 됐어요. 이제 견진성사까지 받았으니 너무도 기쁘고,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이 할머니가 견진을 받게 된 건 최근 본당에서 구역장을 통해 견진자를 모집한 게 계기가 됐다. 평소 친분을 나누던 교우 윤순분(체칠리아, 75)씨에게 “실은 내가 이북에서 세례받고 견진을 못 받았는데, 이번에 견진을 받을 테니 대모를 서달라”고 부탁한 게 계기였다. 이에 구역장을 통해 견진교리를 받게 됐는데, 대화동본당 주임인 김재덕 신부는 이 할머니가 일단 거동이 불편해 걷기 힘들고 고령인 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신약성경에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읽는 것으로 견진 교리를 대신하도록 했다. 성령의 열매와 은사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견진 교육이 충분하다는 게 김 신부의 사목적 판단이었다.

윤순분씨는 “같은 아파트에서 알고 지낸 지가 30∼40년이 넘었는데, 평소 신앙생활이나 기도생활을 무척 열심히 하시며 사셔서 아가타 할머니가 견진을 받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대모가 되겠다고 했고, 앞으로도 할머니가 신앙생활을 하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고 동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재덕 신부도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 견진성사를 받으시려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고 초대하시는 거니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읽도록 했는데, 견진에 앞서 숙제를 하셨냐고 물었더니 ‘성경이 찢어질 정도로 읽었다’고 답변해 주셔서 정말 기뻤다”고 밝혔다. 이어 “북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시작된 신앙이 72년 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남에서 견진을 받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 걸 보니 하느님께서 이렇게 오묘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