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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시다

수성구 2021. 5. 21. 05:43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시다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시다

사도 20,17-27; 요한 17,1-11 / 2021.5.18.;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땅에서 십자가로 승천하는 은총에 대해 묵상하는 이즈음,

복음과 독서가 모두 고별사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미 매우 긴 고별사를

전해주고 있는 요한은 그 본론 겸 결론을 오늘 복음으로 전해주었습니다.

열두 제자 모두를 모아 놓은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발을 일일이 다 씻겨주신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삶이 바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물이어야 함을 기도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섬김이 봉헌 제물이었던 그분께는 수난이

곧 영광이었기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이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땅에서 이룩하시는 섬김의 수난이 곧 하늘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병들어 아픈 이들의 고통을 치유해 주시고,

마귀 들려 속박당하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의 공생활 동안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복음을 선포하셨다면,

이제 그 복음선포 활동을 마무리짓는 예루살렘에서의 대결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섬김으로 봉헌하고 수난으로 승천하는 삶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임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이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땅이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이요, 섬기시는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를 짊어지실 분이 부활하실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에페소에서의 선교 활동을 마친 사도 바오로가 예루살렘을 거쳐

네 번째 선교 활동으로서 드디어 로마에 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는지 굳이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을

근 밀레토스 섬으로 불러서 작별인사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원로들은 사도 바오로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 놓은 첫날부터 함께 한 사람들로서,

바오로에게는 동지이기도 했고 제자이기도 한 사람들입니다.

함께 했으므로 동지이며,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뜻을 알려 주었으므로 제자입니다.

그들 중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음모로 사도 바오로가 겪어야 했던 시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오로가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 시련을

겸손되이 참아 받았음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해 온 그리스인들에게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사도 바오로가 증언했음을 지켜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예루살렘 행을 앞두고 성령께서 그곳에서 고난,

투옥과 재판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리 알려주셨는데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고 응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성령이야말로 땅에서 고난을 통해 하늘로 승천하게 해 주는 기운이심을

알려줍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기로는 예수님이나 바오로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목숨보다 더 귀하고 더 중요한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오로가 20여 년 간,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자신의

선교 활동을 결산하며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자신의 직무를 맡겨주었기에,

그들도 이 위임에 따라 에페소 교회를 잘 지켰고 키웠습니다.

사도 바오로 이후에는 티모테오가 책임을 맡고 있다가 사도 요한을 초빙하여

이 에페소 교회를 돌보아주었으므로 이들은 함께 인근의 여섯 교회까지도

복음을 전하여 마치 밤하늘의 북두칠성처럼 소아시아의 일곱 별이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파트모스 섬에 유배를 당하면서도 동굴에 가서 기도하다가 성령으로부터

계시를 받기를,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묵시 2,2)고 하였습니다. 에페소 교회가 한 일이란

이 원로들과 사도 요한이 함께 힘을 모아

여섯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킨 일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노고를 들여야 했고 큰 인내를 발휘해야 했으며 아르테미스 여신과

도미티아누스 신을 숭배하던 풍조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던 자들을 몰아내야 했습니다(묵시 2,3).

그런데 좀처럼 지치지 않던 에페소 교회가

사도 요한마저 박해를 당하여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자,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리고 침체되어 버렸습니다(묵시 2,4).

 

파트모스 섬에서 사도 요한은 늙은 몸으로 대리석을 채취하는 중노동을 하며 묵시록을

써서 보냈는데, 이 때 에페소 교회를 돌보던 사도는 오네시모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신앙이 공인되고 나서도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에는,

이단이 유행하여 정통 신앙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영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고

영육이원론을 펴는 아리우스 이단이었습니다. 결국 431년에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한

공의회가 에페소에서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께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는 교의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에페소 교회가 수행하던 역할처럼, 한국 가톨릭교회에게도

선교적으로 돌보아야 할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들은 우선 한반도의 북녘 땅과,

만주와 연해주, 몽골과 중국과 대만, 일본과 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의 동아시아

교회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선교 방식과 지혜를 감안하자면 이 지역들에 들어가서

뿌리내리고 있는 한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여, 이들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한류를 종교적으로 일으킴으로써

선교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때가 다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