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묵상글

함께 알아가는 생태신학 06-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수성구 2021. 5. 31. 06:48

함께 알아가는 생태신학 06-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김춘수 시인의 「꽃」의 일부입니다.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꽃이 되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철학적 해석에 따르면 “몸짓”을 ‘무의미’로, “꽃”을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의미한 존재’가 아닌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표현한 시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평이한 관점에서는 사랑을 노래한 시 또는 사랑받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시로도 해석합니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는 구절 때문에, 이 시는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이 짐승과 새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대목을 떠오르게 합니다(창세 2,19-20 참조).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은 친밀한 관계의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신이 낳은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그를 자신의 아기로 인식하고, 다른 아기들과는 맺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은 동물들이 사람과 함께 있을 협력자로서 창조되었고 사람이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전합니다. 비록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창세 2,20)는 아니었지만 동물들에게 사람이 이름을 붙인 것은, 사람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에덴동산에서 함께 지내는, 일종의 동반자적 관계를 맺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2장은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으며, 흙으로 다른 동물들도 빚으셨다고 전합니다(창세 2,7.19 참조). 이는 흙이 의미하는 땅, 곧 이 지상 세계에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함께 속해 있으며, 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토대로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와 똑같이 흙으로 다른 동물들을 만드셨다면 - 비록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으신 것처럼 다른 동물들에게도 숨을 불어넣으심으로써 그들 역시 생명을 얻어 사람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의 생명은 똑같이 하느님의 숨결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2장은 하느님 창조의 관점에서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차별화시키기보다는 인간이 그들과 맺는 동반자적 관계와 결속, 일종의 동질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특별한 존엄성은 이러한 동질성과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인간과 함께 창조 공동체를 이루는 다른 피조물들의 의미와 가치 또한 올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 OFM Conv 2021년 5월 23일 성령 강림 대축일 의정부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