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비 열전& 나의 속사정
The Queen of Joseon and My Inner Sa-jeong
오늘은 날씨가 조금 흐릿하다가 비도 조금 오는가 한다.
Today the weather is a little blurry, but the rain is a little bit.
그래서 운동을 하다가 머리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길래 얼른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편안한 삶이 되곤 한다.
하루 종일 성당에를 가지 않고 빈둥거리니
세상 편하고 너무 나의 마음이 넉넉한거 같다.
I do not go to the cathedral all day, and I feel comfortable and so ample in my heart.
근데 조금 삐딱한 생각으로는 다른 사람은 성당에
다가는데 나혼자 성당에 안가고 하면 심통이 나서
못사는데 아무도 오늘은 아침 미사가 없으니 같이
노니깐 세상 편하다고한다.ㅋㅋ
그러고는 하루를 생각을 하는데 조금 실패한
사람처럼 멍 때리곤 한다.
Then I think about the day and I beat it like a person who has failed a little.
ㅋㅋ 요즘 왠지 나의 불로그엔 들어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회수가
별로라서 나의 이야기는 나의 읽기는 ㅋㅋ 후훗
내 마음대로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의 잘못된 마음과 누구를 향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그릇된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제 나뭇잎은 푸르고 한데 바람이 부니 파란 잎사귀가
팔랑 팔랑 거리나 본다.
Now the leaves are green and the wind is blowing,
and the blue leaves look at the streets.
그래서 운동을 한다고 거리에 나가니 나의 앞에
새 한마리가 입에 뭘 물고는 내 앞에 살며시 앉는다.
A bird bites something in his mouth and sits gently in front of me.
그래서 "그입에 뭐니" 하고 속삭이니 재빠르게 날아가 버리곤 한다.
So I whisper "what is in your mouth" and fly away quickly.
그러고는 나 오늘은 마음의 휴식을 가지는데 그동안에 병원이며 무슨
큰 사업가도 아니면서 볼일이 많았던가 한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 먹고 푹 쉬니깐 나의 영이 맑아 지는 느낌이 온다.
So today I feel like my spirit is clearing because I am resting and resting.
사람은 이렇게 몸과 마음을 한번씩 쉬어 주어야 하나 본다.
One sees that one should rest one body and mind like this.
그런데 나의 기억속으로 영화 필름같이 스치는 사람들, 나의
기억속에서의 지워 버리려 한다.
근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니 조금 과한 생각을 해서 그런지
우리 신부님들이 떠오른다.
But I like people, so I think that my brides come to mind because I think a little too much.
근데 주임 신부님 삐돌이 신부님 보다는 보좌 신부님이
더욱이 떠오르곤 한다.
참으로 때묻지 않는 영혼이라고 한데 때묻지 않는건 어느
신부님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It is said that it is a soul that does not ask, but it is the same as a priest who does not ask.
그러한 삶에 무척이나 맑고 고운 영혼들이기에 난 그분들의
마음이 너무 깨끗 하다고 본다.
우리 큰 삐돌이 신부님은 너무 부담스러워 하시고 그러곤 우리 성당에
대스타들의 사랑이 있기에 난 포기 한다.ㅋ 호호ㅋ
그러고는 우리 새로 부임한 수녀님들도 아직은 신자들에게
핀찬을 듣지 않는 맑고 고운 영혼이기에 모두가 사랑 스러운거라 본다.
Then, our newly appointed nuns are clear and fine souls that do not yet listen to believers,
so everyone sees them as loving.
그러고는 오늘 비가 올듯 말듯 하여 난 운동을 접고선 오늘을 산다.
그러고는 우리 케롤린과 지인과의 전화 통화를 하는데 우리들의
대화는 세속에 때 묻지 않는 이야기가 대두 된다고 본다.
자꾸만 떠오르는 우리 보좌신부님 이제 그분을 위해서 기도 하려한다
그러면 또한 나에게 부담 스러워 하실가봐서 살짜기 나의 본연의
마음을 숨긴채 기도를 하는거 라고 본다.
Then I also think that it is praying while hiding my original mind because it is burdensome to me.
오늘의 복음에서 보면 복음이기 보담은 이번달은가정의 달이고
성모님의 달 그러니깐 성모성월 이라고 한다.
우리의 하느님을 낳아 주신 거룩하고도 신비스러운 성모 마리아,
오늘도 나는 성모님을 향해서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치곤 한다.
The holy and mysterious Virgin Mary who gave birth to our God,
today I also devote my prayers to the Virgin.
아마도 성모님은 혼자인 나의 여자의 마음을 알아 주시지 않나 싶다.
그러고는 오늘은 성 요셉의 날이라고 "노동자의 날인거 라고 하고
근로자의 날"이라고 한다.
오늘도 일선에서 피와 땀으로 고생하는 우리 국민들이 있기에 우리도
선진국에 발 맞추어서 모든거 보상 받고 그러므로서 많은 혜택속에서 살아 가지 않나 싶다.
Today, there are our people suffering from blood and sweat on the front line,
so we will not live in many benefits because we are compensated for everything
in line with advanced countries.
그러고는 근로자들 우리의 응원 속에서의 건강과 축복으로 살아 가리라 한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은 여러가지의 기적으로 행하시는데 고향에서 만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목수의 아들이라는 명칭아래에서 무시를 당하시는 예수님이
그래서 고향에서 만은 많은 기적을 이루시지 않은 거라 한다.
Jesus, who is ignored under the name of the son of a carpenter,
says that he did not achieve many miracles in his hometown.
#조선왕비열전 45여명의 왕비
1.태조 이성계
#신의왕후 한씨
태조의 첫번째 부인 한씨는 본관 안변으로 왕후가 세상에 태어날 때 풍류산에서 3년 동안 풍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성계가 30년간 전쟁터를 누볐기 때문에 고향 함흥에 남아 꿋꿋하고 인자하게 6남 2녀를 기르면서 집안을 잘 다스린 여성으로 한평생 열심히 내조하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1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ㅡ방우.방과.방의.방간.방원.방연,경신.경선공주
(방과 정종.방원 태종)
#진안대군 방우
아버지가 고려를 무너트리고 새왕조 조선을 건국하자 불만을 품어 온 나라 안을 떠돌아다니다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익안대군 방의
방원을 도운 공로로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태조가 왕위를 물러주어 정종으로 즉위하지만 방간으로 인해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원을 도와 즉위시킨다
#회안대군 방간
1차 왕자의 난 때의 공으로 회안공이 되었고 정종이 즉위하자 병사들을 관장하다 1400년 박포의 꼬임에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원과 맞서다 유배를 갔다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둘째 부인으로 첫째 부인과는 달리 본관 곡산의 막강한 권세를 지닌 집안에서 출생하여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배후에 큰 힘을 발휘하였었다
이성계는 강비에 대한 사랑이 아주 지극하였고 훗날 그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두 아들들에 의지해 살아가다 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혈육을 죽이자 분노가 극에 달했었다
부친 고려 판삼사사 역임한 강윤성
모친 진주 강씨
강윤서의 아버지 강서는 고려 황음무도한 충혜왕
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받았고 신덕왕후의 언니 강씨는 신돈의 친척인 신귀에게 시집갔다
신귀는 신예의 동생으로 환관 고용모의 처남이며 그는 원나라 기황후의 심복으로 고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신덕왕후 가문은 그 세력에 힘 입었었다
그러나 공민왕이 원나라 세력을 처단했고 신귀를 역모로 체포하여 유배되었다 신돈과 함께 처형 당했었다
1374년 9월 공민왕이 환관에게 시해 당해 세상을 떠나자 강씨는 개경으로 올라와 상류 사회에 접근하며 본격적으로 이성계를 내조한다
신덕왕후는 조선이 건국되자 방원을 멀리(개국공신에도 못듬)해버리고 정도전을 측근으로 끌여들여 방석을 세자로 삼는데 성공시킨다
방석이 세자에 오르기전 4살 많은 유씨와 가례를 올렸는데 세자빈 유씨의 비행이 방원에게 꼬리가 잡히고 만다
방원은 세자빈의 시비 춘심을 훗날 빈으로 봉할 것이라며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세자빈
이 심복 내시 이만과의 사통을 목격하고 내시를 묶어 신덕왕후에게 말했다
왕후와 태조가 세자의 비행을 알자마자 상소문이 신속하게 올라오고 사헌부의 30여명이 세자를 바꾸자고 소리 높이니 이성계는 크게 진노하며 방원이 사주 했냐고 대로하여 모두 파직시키고 귀양을 보냈다
이후 방석은 이조 전서 심효생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였고 방원은 자취를 감추었다
ㅡ방번.방석,경순공주
#무안대군 방번
이성계의 신덕왕후 사랑이 매우 커 입김이 대단했기에 적장자로 세자로 내정되려다가 광망하고 매사 경솔하다는 정도전의 반대로 세자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1398 1차 왕자의 난 때 방석과 함께 죽임을 당한다
#경순공주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남편인 이제.두 남동생 죽게 되자 이듬해 머리를 삭발하고 여승이 되게 하였다.
2.정종
#정안왕후 김씨
덕망이 높고 아름답고 검소하며 공손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아랫사람을 잘 다스렸고 친족들과 친교도 두터웠다
정종이 즉위 2년만에 세제 방원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목숨을 유지하고 우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왕후 김씨의 어진 내조가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1412.58세 사망)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백룡산 기슭의 익덕궁에 살면서 생활을 누리다가 1419년에 세상을 떠났고
ㅡ왕후와 사이에는 혈육이 없지만 7명의 후궁에게서 17남 8녀를 두었다
3.태종
#원경왕후 민씨
고려 명문가의 출신인 민제는 성균관 사성으로 일하며 성균관에 입학한 이방원의 사부라 불리며 16세에 민씨와 혼례를 치루었다
이때 보잘것 없는 방원의 관상을 본 하륜이 친구 민제를 통해 만나게 되고 그후 방원의 충실한 심복이 된다
방원이 조선을 개국하기전 이색과 고국을 떠나 민씨는 임신한 몸으로 근심이 많았고 이후 조선이 개국한 이후에도 불안한 일이 많아 밤잠을 이루지 못해 연이어 낳은 아들들이 요절하게 된다
그러다 1394년 양녕을 놓고 2년 뒤 효령을 놓다 태조 6년에 충녕대군(세종)이 태어나게 된다
이때 신덕왕후로 인해 조정에 쫓겨난 방원이 백수가 되어 충녕은 사랑과 관심속에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었다
민씨 부인은 1398년 정도전이 왕자들의 사병.무기를 없앴지만 동생들(민무구.민무질)을 통하여 무기를 준비하고 정도전을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1.2차 왕자의 난 때의 정보를 미리 입수한 그녀는 방원의 무기.갑옷을 입혀 주며 격려하여 조정의 실권을 넣고 세제가 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방원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하기 위해 수많은 공신들과 외척들을 제거하였다
4처남(민무구.민무딜.민무휼.민무회)에게 세자의 선위를 반겼다는 불충.모반의 죄를 씌워 죽여 버리고 공신들도 모두 조종에서 내쫓고 왕권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진다
(여러가지 정책을 만들고 실시하여 뒤를 이은 세종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태종은 처남들을 제거하고 왕후가 병석에 누웠어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여러 후궁을 거느려 왕후의 세력을 배척해 버리고 이로인해 부부 사이는 점점 멀어져 쓸쓸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ㅡ첫째 요절.둘째 요절.세째 요절.
양녕.효령.충녕(세종).성녕대군,정순.경정.경안.정선공주
9명의 후궁들에게서 8남 13녀를 둠
#양녕대군
자유분방한 그는 사냥.풍류를 즐겼고 엄격한 궁중생활에 염증을 느껴 어긋난 행동으로 인하여 부왕의 꾸중을 들었지만 뉘우침 없이 계속해서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며 정종의 애첩.매형의 첩과도 통정하는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부왕과 왕후가 충녕과 비교하자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 주기 위해 더욱 미친짓을 일삼아 폐세자가 되고 만다
1418년 이조판서 황희는 그의 거짓된 행동속에 성군의 자질이 보았기에 폐세자를 반대하다 귀양을 가게 된다
실제로 폐세자 양녕은 부지런히 학문을 닦는 효령(양주 회암사에 불교에 심취,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6왕을 거쳐 91세까지 살았음)에게 세자는 충녕이 되어야하니 마음을 돌리라고 말하며 깨닫게 해주고 형제의 정을 돈독하게 유지 할 수 있게 지켜주었다
4.세종
#소헌왕후 심씨
부친 심온은 조선 건국에 이바지한 개국공신으로
심씨가 14살 충녕군 12살에 혼인하여 왕실과 사돈 관계가 되었지만 심씨는 중전 민씨의 동생들이 비참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았기에 왕비가 될 꿈도 꾸지 않았지만 태종 18년 6월에 경빈으로 승격되었다
경빈은 상왕으로 인하여 늘 불안하고 두려웠기에 심온이 영의정에 올라도 근심이 가득했다
이때 명나라로 떠나던 심온의 위세가 태종의 비위에 거슬리게 되어 심씨의 친정 집안은 중전은 자리와 맞바꾸어 몰락하고 만다(심온.숙부 사약.모친 안씨 관가 노비 .동생 고문 받다 죽음)
화살은 중전 심씨에게까지 날라오지만 세종과의 금술이 좋고 자손을 많이 생산하였기에 위기를 면한다(태종 외척은 무참히 죽여도 왕후의 지위는 박탈하지 않고 더욱 외척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다처제도인 후궁제도를 법제화함)
심씨는 궁궐의 후궁들과 그 소생들은 후대해 주고 궁 곳곳에 심복을 두고 동태를 살피며 행동을 파악하고 올바르지 않은 일이 생기면 꼭 세종괴 의논하여 잘 다스린 지혜롭고 덕이 있는 왕비였다
세종과 조정 대신들이 중전의 언행과 덕을 칭찬하였지만 왕비가 되자 집안이 몰락하고 연이어 세자빈을 폐출한 후 두 아들이 세상을 떠나 한평생 마음 고생을 한 외로운 왕후였다
ㅡ이향(문종).수양(세조).안평.임영.광평.금성.평원.영응대군,정소.정의공주
외 5명의 후궁에게서 10남 2녀를 둠
#이향
1.상호군 김오문의 딸이 세자의 사랑을 차지하려 몰래 비방을 써 발각되어 폐출
2.봉여의 딸이 시비와 동성애를 즐겨 폐출
3.후궁 권전의 딸이 세자빈으로 승격되어1441년 7월 왕세손(단종)을 놓지만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남
#안평대군 이용
황보인.김종서와 관계 유지하며 수양대군의 세력과 맞서 조정의 실력자로 떠오지만 계유정난 때 이후 황보인.김종서가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귀양가서 사사되었다
#임영대군 이구
세조가 조정의 정권을 잡자 그를 도와 신임을 얻음
#광평대군 이여
학문에 능통하고 음률.산수에도 밝았다
1437년 신덕왕후 강씨 첫째 방번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지만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금성대군 이유
1437년 참찬 최사강의 딸과 혼인한 해에 신덕왕후 강씨의 둘째 방석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지만 수양대군이 단종의 자리를 빼았자 반발하다 유배되어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유배지에서 순흥 부사 이보흠과 단종 복위 도모하다 처형되었다
#평원대군
학문에 힘썼지만 두창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영응대군 이염
세종은 8째인 아들 염을 매우 아끼고 총애하여 그의 집 동별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5.문종
#현덕왕후 권씨
권씨는 집안이 어려워 1430년에 세자궁의 시비로 들어와 임신하게 되자 후궁으로 책봉되고 세종 15년에 딸을 낳았지만 하루를 못 넘기고 죽었고 그 뒤 다시 임신했을 때 세자빈 봉씨(동성애)에게 온몸에 피가 나도록 매질을 당하지만 세종 18년 봄에 경혜공주를 낳는다
1437년 세자빈 봉씨가 궁녀와 음탕하게 놀아나고 시기.질투가 심하여 폐출되고는 권씨가 세자빈에 오르게 되고 1441년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승하하게 된다
허약한 문종은 자주 병석에 누웠기에 수양.안평대군의 세력은 커지고 왕권은 위축되어 조종의 분위기가 긴장된 즈음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게 된다
세조가 단종을 쫓아낸 후 죽은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얼굴에 침을 뱉고 사라지고는 동궁이 갑작스럽게 죽고 이때부터 세조는 피부병에 걸려 죽을때까지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화가 난 세조가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치라 명하자 능에 여자 울음소리가 진동하였고 무덤을 파헤치고 관이 움직이지 않자 도끼로 찍어 없애라 명하니 관이 스스로 무덤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시 불살라 버리라는 명이 내려지자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려 관을 강물에 던지라 명했다
그러자 관이 둥둥 떠 나루터에 닿아 농부가 양지바른 곳에 묻고는 꿈에 왕후가 나타나 미래를 알려주고 부자가 되었고 훗날 40년 뒤 중종 때 관을 찿자 꿈에 왕후의 명에 의해 관가에 알려주고는 후한 상금을 받았다
세상을 떠난 현덕왕후는 어린 단종을 지켜보고 세조의 가족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6.단종
#정순왕후 송씨
14세의 송씨는 성품이 곧아 매우 공손하고 검소하며,15세의 단종은 비록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만 의젓하고 침착하며 정중하니 성군의 자질을 갖추었지만 조정 대신(삼정승의 황표정사)들과 여러 삼촌(군사력 지닌 수양.안평.금성대군)들에게 몰려 정사를 배우거나 다스릴 여력이 부족하였다
수양은 권남 등 여러 식객들을 모아 한명회와 함께 김종서와 그의 아들을 죽이고는 깊은 밤 궁으로 쳐들어가 김종서.안평대군이 역모를 꾸몄다고 왕을 만나고는 멋대로 신하들을 불러 한명회의 살생부에 따라 반대파를 모두 죽여 없앴다(계유정난)
이때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났으나 거사가 발각되어 단종은 서인으로 강봉되어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되어 헤어져 부부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이별을 하게 되었다
동망봉 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던 왕후는 단종의 죽은 이후에는 소복을 입고 매일 산봉우리 거북 바위에 올라 슬피 울며 세조가 보내는 식량을 거절한 채 자줏물을 염색하는 일로 여생을 살았다
7.세조
#정희왕후 윤씨
수양대군의 혼처를 결정하기 위해 감찰상궁이 물색하던 중 어린 정희왕후를 보자 궁궐에 들어가 칭찬을 늘어 놓아 수양대군과 정혼할 수 있었다
윤씨는 세종의 각별한 배려하에 궁궐에서 머므르며 법도를 익혔고 아이를 낳을 때도 특별히 궐에서 낳았다
그러던 세종 30년 사육신 박팽년의 딸이 대군의 소실로 들어왔고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려고 할 때 정보가 누설되어 망설이자 윤씨가 직접 갑옷을 입혀 주면서 독려했다고 한다
1455년 6월 왕비로 책봉 된 윤씨는 현덕왕후의 저주로 인해 몹시 두려움에 어수선해져 불공을 드리거나 양로잔치를 베풀기도 했지만 어머니.세자가 연거푸 죽자 충격을 크게 받는다
그래서인지 세조의 후궁 박팽년의 딸 근빈을 박대하지 않았고 근빈 역시 마음을 잘 다스렸기에 세조를 보필하고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세조는 1468년 9월 늘 고생하던 피부병이 악화되어 세자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52세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생을 마감하고 뒤 이은 예종마져 재위 1년 2개월 만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다 13세의 자을산군(성종)에게 왕위가 돌아가고 조선왕조 최초의 수렴청정은 대왕대비(7년간 수렴)인 윤씨의 몫이 되고 조정은 한명회.신숙주를 주축으로 권력이 형성된 후 종친의 관리 등용을 법으로 금지시켜 왕을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해 버린다
ㅡ세조는 후궁을 많이 두지 않아 왕후 윤씨2남1녀 근빈 박씨 2남뿐이다
그런데다 의경세자가 20세에 세상을 떠나 후사가 적었다
#소혜왕후 한씨
청주 한씨 서원부원군 한확(1417년 한확의 첫째 여동생 명나라 3대 영락제의 여비 7년 뒤 순장,막내 여동생 선덕제의 총애가 커 손자를 맡아 길러 영향력 막강)의 여섯째 딸로 의경세자인 도원군과 혼인하여 1455년 세자빈에 책봉되나 의경세자가 죽어 왕비가 되지 못하고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인수대비에 책봉된다
한씨는 한문.유교경전에 매우 능통하고 성격이 깐깐하고 엄격하여 폭빈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자식들의 작은 실수라도 엄히 꾸짖으며 키웠다
훗날 성종의 아들 연산군으로 인하여 68세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ㅡ의경세자(덕종).해양대군(예종).의숙공주
8.예종
#정순왕후 한씨
아버지 한명회와는 달리 온유하고 아름답고 정숙하며 매사에 어긋남이 없고 시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효도를 다하였으나 1460년(세조6) 4월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1461년(1년 7개월 후인) 11월 30일 원손 인성대군(예종)을 낳고 한달 만에 산후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훗날 예종이 왕위에 올라 왕비로 추존되었다
정순왕후 사후 6년 뒤 한명회의 둘째 딸(공혜왕후 왕비 책봉 후 19세 후사없이 요절)을 예종의 조카(성종.자을산군)에게 시집보내 2대 왕후를 만들고 신숙주와 사돈을 맺어 권력이 막강했다
(한명회는 세조.예종.성종 대에까지 조정 정사 참여,4번이나 1등 공신 추대,노년에는 부원군에 오름,성종 18년 1487년 73세 죽음)
#안순왕후 한씨
우의정 한백륜의 딸로 예종의 후궁 정5품 소훈에 책봉되지만 정순왕후 한씨가 죽자 1462(세조8)년에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1468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469년 11월 예종이 승하하자 인혜대비에 책봉되고 연산군 재3(1467)년에 명의대비로 된다
그녀의 소생은 제안.현숙이 있는데 특히 제안대군은 일찍이 욕심을 버렸기에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ㅡ인성대군(예종).제안대군.현숙공주
9.성종
#공혜왕후 한씨
한명회의 첫째 딸은 세자빈 책봉 1년만에 17세 나이로 아이를 낳다 요절했고 둘째(6년 뒤)가 자을산군(성종)에게 시집가 월산군이 병악하여 왕위가 갑자기 둘째 자을산군에게 돌아가 14살에 왕비가 되고 1474년 19살 나이에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채 요절하게 된다
그리하여 뛰어난 한명회로 인해 조선왕조 역사상 전무후무하게도 한자매가 나란히 공릉.순릉에 각각 묻히게 된다
특히 인수대비가 매우 염격하게 공혜왕후를 현모양처로 만들기 위해 직접 교육 시켰는데 왕후는 시기.질투도 조금도 없이 잘 따랐으나 임신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윤호의 딸 숙이를 입궐시킨다
#제헌왕후 윤씨
1473년에 숙의에 책봉된 윤씨는 검소하고 윗전을 잘 모시고 성종의 총애를 받다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1476년 8월에 왕비가 되고 3개월 후 연산군을 놓았다
이후 성종의 총애가 후궁(소용 정씨.엄씨)들에게 쏟아지고 발길이 뜸해지자 각종 비방을 동원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용안에 손톱 자국을 내어 인수대비.성종에 의해 대신들의 찬반론을 무시해 버리고 폐비 당하여 사가로 쫓겨 났었다
크게 뉘우치고비참한 삶을 꾸려나가던 중 세자 책봉 논의에 폐비 윤씨의 동전론이 나오지만 소용 엄씨.정씨.인수대비에 의해 무산되고 폐비의 거짓 보고로 인해 화가 난 성종은 사약을 내리고 만다
#정현왕후 윤씨
인수대비는 정소용을 마음에 두지만 최종 선택권을 쥔 대왕대비는 폐비에 반대한 신하들의 힘을 염려하여 말썽이 없던 숙의 윤씨를 선택하여 훗날 중종을 낳은 그녀가 왕비에 오른다
정현왕후는 폐비 윤씨가 투기와 급한 성격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고 쫓겨났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버리고 굳게 다짐하고 살았으니 24살의 성종은 그런 그녀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칭찬하고 편안해했었다
ㅡ모두 12명의 부인에게서 16남 12녀를 둠
연산군(폐비윤씨).진성대군(정현왕후.중종)
10.연산군
#거창군부인 신씨
아버지 거창부원군 신승선과 어머니는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딸로 연산군보다 2년 연상으로 성종 18년에 세자빈에 간택되어 성종 재25(1494)년 12월에 왕비가 된다
온순하고 어질고 얌전한 성품의 신씨의 가례를 치르던 날 불길하게도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더니
연산군의 폭정.엽색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더니 집안과 소생마져 모두 죽고 멸문당한다
**무오사화 어머니의 문제로 사림을 없애고 훈구파까지 파면,정치 투쟁
ㅡ아첨배들이 득실 패륜을 일삼음
ㅡ갑자사화 임사홍이 연산의 처남 신수근과 결탁하여 폐비 윤씨의 모친을 이용해 훈구세력인 반대세력 제거 피바람의 연좌죄 적용
ㅡ성균관 유생을 못마땅하게 여기더니 1504년(연산10) 7월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고 왕비가 반란이 염려되어 옥쇄를 감추자 연산군이 신씨에게 폭행과 욕을 해댔다
ㅡ중종반정 1506년 성희안.박원종 군사를 일으켜 연산을 폐하고 중종 옹립
ㅡ왕에서 군으로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도 유배 간 두달 후 역질로 31세 사망(1506.11월)
ㅡ4남 2녀 4아들 모두 일찍 죽거나 유배지에서 사망
11.중종
#단경왕후 신씨
연산군의 후비인 거창군부인 신씨가 고모이고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으로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것을 반대하여 단경왕후는 왕비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위되어 쫓겨난다
신씨는 친정으로 거처를 옮겨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와 고모.조까딸로 한집에 지내고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지냈다고 한다
#장경왕후 윤씨
중종반정의 훈구 세력들의 소실 8명이 후궁으로 들어 왔으나 숙의 윤씨만이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났기에 단경왕후가 쫓겨난 후 장경왕후가 새 왕비로 간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종10년(1515) 세자(인종)을 놓고 산후병으로 25세에 승하한다
#문정왕후 윤씨
경빈 박씨(가문이 좋지 않아 반대).폐비 신씨(반정공신 반대)를 복위하려 했지만 반대가 심하여 무산되고 영돈녕부사 윤지임의 딸이 간택된다
중종이 경빈 박씨를 아끼고 자주 찾지만 문정왕후는 질투보다는 권력이 필요 했기에 책들을 탐독하고 세력을 잡아 정적을 죽이고 제거(역모사건을 꾸며 정적지목)해 나간다
경원대군(명종)을 낳은 뒤 세자(인종)를 제거하기 위해 각종 모의를 꾸몄고 조정에는 대윤.소윤으로 나뉘어져 쟁탈전이 벌어졌고 나라안이 시끄럽자 그 틈을 노린 왜구들의 침략이 잦아지지만 문정왕후는 오로지 경원대군을 왕위에 세위기 위해 즉위한 인종을 표독스럽게 괴롭히고 독살한다
어린 명종이 오르자 수렴청정하면서 동생 윤원형 .정난정으로 각종 음모(을사사화.양재역 벽서사건)를 꾸미고 조정과 나라를 장악하고 흔들었다
유교에 위축된 불교를 34살의 기둥서방인 보우에게 빠져 매우 신임하여 불교 총수로 삼고 많은 대신들과 유생들의 반대에도 승려들을 옹호하며 불교 진흥 정책을 펼쳤다
(나라안 도둑이 떼로 난립.의적 임꺽정이 전국을 누빔)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고 임금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고 때리거나 욕을 하기도 했고 용안에 뺨을 올려 소리지른 표독스러운 여인이다
중종반정 성공하자 훈구세력 득세
ㅡ조광조를 끌여들여 새로운 정치.도학정치 펼치고 신진 사람파 득세,조정에 정국공신 개정운동
ㅡ기묘사화 공신록에 삭제된 이들이 조광조에 실증을 느낀 중종의 마음을 이용하여 후궁 희빈이 배갯머리 송사를 펼쳐 사림파 헐뜯고 주초우왕의 나뭇잎으로 인해 조정이 뒤집어져 70여명이 죽음
ㅡ부인 12명 자녀 9남 11녀
인종(장경왕후).경원대군(문정왕후.명종).창빈안씨 2남 1녀중 덕흥대원군 선조의 아버지
12.인종
#인성왕후 박씨
1524.03.11세에 세자빈이 책봉되어 왕비가 되지만 1545.07월 재위 9개월 만에 남편이 세상을 등지자 인종 못지 않게 온순하고 착한 공의대비 박씨는 시어머니 문정왕후 아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ㅡ자녀X
13.명종
#인순왕후 심씨
12살에 경원대군(명종)과 혼례를 올려 대군부인이된 2년 후(1545.07) 왕비로 책봉되었지만 문정왕후 아래 숨 죽이고 살다가 명종 8(1553)년에 직접 친정하고 이후 문정왕후가 죽자 후비 심씨의 외척들이 세력을 키우고 뇌물을 거두기 바빠 나라가 어렵던 말던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급급했었다
명종과 심씨 사이에 순회세자(1551~563)가 요절하여 하성군(중종의 창빈 안씨 7째 아들 덕흥군의 3째 아들)으로 후사로 삼기 위해 전교를 작성했지만 취소하고 무수리 장씨에게 후사를 이으려 노력했지만 지나친 정사로 건강을 해쳤다
인순왕후의 전교에 따라 하성군이 왕위에 오르고 수렴청정했고 본인이 직접 정치를 하지 않았고 조정에 친정의 친척들이 등용된 것에 만족했었다
ㅡ7명의 부인이 있지만 소생은 요절한 순회세자뿐이였다
14.선조
#의인왕후 박씨
인순왕후와 의인왕후의 집안이 친밀하여 선조가 18세 때 15세에 왕비에 책봉되나 석녀임이 밝혀지자 5명의 김씨들의 후궁을 들여 후궁들의 소생을 세자로 내세우기 위해 궁안의 전쟁이 치열했지만 내명부의 어른인 왕비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숨 죽이고 살았다
비록 자녀를 생산하지 못했지만 후궁들이 낳은 아이들과 후궁들을 잘 보살피고 늘 관대하였지만 선조 33년 6월 43세에 세상을 떠난다
(소주방 나인으로 승은을 입어 소용되고 선조7.임해군을 낳아 공빈에 오른후 1575년 선조8 광해군을 놓고 2년 뒤 병으로 사망)
#인목왕후 김씨
전쟁이 끝나고 딸이 17세가 넘도록 혼처를 구하지 못하여(명문 집안 출신에게 혼사 거절 당함)
근심하던 중 선조 34년에 금혼령이 내려져 간택되어 선조51.김씨 19세에 가례를 올리고 영창대군이 태어나 세자와 세자를 지지하는 세력과 궐내 혼란을 야기 시켰었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광해가 왕위에 오르자 영창대군.김제남(아버지)가 역모로 몰려 집안이 몰락되고 대비 김씨는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되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성리학을 숭상하는 나라로 부모를 폐위시키고 유폐한 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명분이 충분하여 1623년 능양군(인빈김씨 3남 정원군의 큰 아들)을 중심으로 반정에 성공하여 다시 대비로 복귀되지만 실권은 서인들이 잡았기에 딸 정명공주를 홍주원에게 시집 보내 남은 여생을 의지하고 살았다
김효원(윤원형 식객으로 권력 아부한 소인으로 비난 받음 동인).심의겸(서인) 갈등을 계기로 붕당이 형성 동인.서인으로 나눔
ㅡ불화가 원인이 되어 노론.소론.남인.북인 사색 당파 혼란
ㅡ1589 선조22년 정여립 역모 실패하여 자결 서인 정권 잡음(조사관 정철 수 많은 동인을 제거하고 3년간 약 천여명이 사망)
ㅡ1591 선조24년 좌의정 정철.영의정 이산해.인빈김씨와 광해군 세자 책봉 논의하다 이산해.인빈 김씨에게 함정에 빠져 유배,서인들의 세력이 약해졌고 정철의 사형 과격파.귀양 온건파로 분열(국력이 약해짐 조선건국이후 200년간 전쟁이 없었기에 군사.성을 쌓고 보수하거나 무기.군사훈련X.전쟁 대비 중단 준비X,이순신은 미리 수군훈련 거북선 제작.무기 준비O)
ㅡ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나라 침공 구실로 길목인 조선 차지하기 위해 전쟁 일으킴 임진왜란
ㅡ신립 장군의 패전 소식을 듣고 광해군을 급히 세자로 세우고 선조 도망
ㅡ다시 시작되는 당파 싸움과 선조와 세자 사이의 갈등
ㅡ인목왕후가 적통인 영창대군을 놓자 조정은 대북(광해).소북(영창)으로 갈라짐
ㅡ8명 부인 14남 11녀
#영창대군
1613 7서옥(7명 서자)이 발생
여주 조령고개 일어난 은상인 살인사건을 역모로 확대시켜 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을 사건에 연류시켜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한다는 일을 꾸며 유배되어 9살에 살해당한다
#임해군
서출 장남 공빈 김씨 소생으로 성품이 포악하고 술을 좋아했기에 세자로 책봉되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에게 억류되어 있다가 서방되어 한양으로 온 후 부왕이 죽은 후 세자 책봉 훈제로 명나라에서 사신이 파견 되었는데 임해군이 문제를 일으킬까봐 대북파에 의해 유배되었다 살해 당한다
#신성군
인빈 김씨 소생으로 한때 세자에 거론되나 임진왜란 중 병으로 사망
#정원군
인빈김씨 소생으로 신성군 동생이다
능양군(인조).능원군.능창군을 두어 훗날 왕으로 추존된다
15.광해군
#문성군부인 유씨
1588(선조21)16살에 2살 아래 광해군과 혼인
1602(선조35)30세의 유씨보다 11살 어린 시어머니(인목) 맞이
1606(선조39)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조정은 대북.소북으로 나누어져 대립하고 서얼 출신인 선조는 왕비가 영창대군을 놓자 광해군을 무시하거나 냉대하고 그런 왕비와 궁녀들도 유씨를 업신 여겼다
1608(선조41)광해군이 즉위하여 유씨가 왕비에 책봉되자 조정을 유씨 집안 사람들로 요직에 채워
비리와 부정을 묵인하고 재물을 챙기기 바빠 왜란이후 어려운 나라안의 사정은 내버려둔 채 벼슬 행상살이로 벼슬 팔기에 바빴다
이때 김상궁이 유씨에게 비위를 맞추며 광해에게 여러 후궁을 바쳐 술.여자에 빠져 중전을 멀리했지만 친정과 집안 챙기기 급급했다
1623(광해군 15)인조반정으로 폐하여 왕.세자 부부는 유배에 오르게 되고 폐세자 부부가 탈출하려다 실패하여 자살하자 유씨 부인도 목을 매어 자살했다
ㅡ부인 10명 1남1녀
16.인조
#인열왕후 한씨
1610(광해2)년 한살 아래 능양군과 혼인한 후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검소하게 살았고 능창군(시동생)이 역모에 연루될 때 패물을 팔아 뇌물로 바쳤다
1623년 30세에 왕비로 책봉 되고 인조가 궁궐을 호화롭게 꾸미려고 할 대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검소하게 살도록 건의 했고 반정 세력에 위축되지 않도록 열심히 이끌고 내조를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
1635(인조13)년 42세에 산후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1년 뒤 봉자호란이 일어났다
#장렬왕후 조씨
1638(인조16)년 15세에 44세인 인조와 혼례를 올렸지만 숭선군을 낳고 반정 공신 김자점의 세력을 업은 소용 조씨에게 눌려 죽은 듯 지내고 인조의 총애를 잃어 화병을 앓게 되었다
인조가 봉림대군에게 문안을 못하게 했지만 1649(인조27)년 인조가 세상을 떠난 뒤 효종의 극진한 효성으로 권위를 되찾았다
재위 10년만에 효종이 죽게되자 복상 문제에 휘말려 조대비의 상복을 둘러싸고 긴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대북파제거
ㅡ이괄의 난.군사 1만 5천 ,한양 점령
흥안군(선조 10째 아들.온빈 한씨) 왕으로 세움
ㅡ1627(인조5.친명배금정책)년 후금의 태종 침략 정묘호란(형제관계 요구.조공.몇가지 조건)을 맺으나 약속을 깨고 군신관계 요구
ㅡ1636년 국호를 청으로 바꾼 태종 10만 군사 거느리고 쳐들어와 인조에게 명나라와 관겨 끊고 삼전도에서 무릎 꿇게 하고(병자호란) 세자.대군.척화파를 볼모로 끌고 감
ㅡ1645년 소현세자가 귀국한 후 2달 만에 갑자기 죽고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고 강빈이 모함을 당하여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김자점.정소용이 죽게 했다)
ㅡ5명 부인 6남 1녀
#소현세자
인조.인열와후는 남인 윤의립(조카 윤인발 이괄읨난 역모 가담)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려 했으나 서인들의 반대로 인해 동부승지 강석기의 딸과 혼인하게 되었다
윤씨를 마음에 두었던 세자는 강씨를 멀리하고 나인 귀희를 총애하였는데 나인이 강씨를 저주하여 맞아 죽은 이후는 강씨를 더욱 미워 했었었다
그러나 세자는 어머니 인열왕후의 죽음 이후 차츰 강씨에게 마음을 기울였다
심양에 9년간 머무르면서 서양의 문물에 심취되어 조정에 친정 행위로 규정되어 비난 받고 반청세력.인조에 의해 부자지간이 악화되다 후궁 조소용의 간계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인평대군
중국화가 맹영광과 친분 두터웠고 시.서.화 모두 능했고 제자백가에도 깊이 있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산수도.노승하관도.고백도.송계집.연행록.산행록 등)
17.효종
#인선왕후 장씨
척화파로 절개가 곧은 집안으로서 외할아버지가 강화도가 청나라에 함락되자 화약 몸에 품고 자폭한 김상용이었다
1631(인조9)년 봉림대군과 혼인하여 풍안부부인 책봉
1637(인조15) 심양에 대군과 함께 볼모 잡혀가 현종을 낳았다
1645(인조23)봉림대군 세자 책봉
1646년 소현세자빈 강씨 사사된 후 세자빈에 책봉
1649(인조27)31세에 왕비에 오른다
삼전도에 항복한 치욕의 야심으로 인해 북벌계획
ㅡ서인은 원당(원평부원군 원두표).낙당(김자점).산당(김집.송시열 등 대부분 고향에 살며 성리학에 몰두).한당(김육)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효종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산당 세력 등용해 북벌 논의
ㅡ조귀인.김자점 숭선군을 왕으로 추대 모의 발각되어 모두 죽음
ㅡ1654.1658년 두차례 청나라가 러시아 정벌하기 위해 출정
ㅡ효종은 북벌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 10년 만에 사망 ㅡ1차 예송~~효종 적자냐 차남이냐에 따라 복상 3년(남인 허목). 1년(서인 송시열)~서인 승리
15년 뒤 효종 후비 인선왕후 장씨의 복상 논란 시어머니 장렬왕후 상복 맏며느리1년(남인). 둘째 며느리 9개월(서인)~효종 선택.남인 승리
ㅡ부인4명 1남 7녀
18.현종
#명성왕후 김씨
침략이 없어 평화로운 시대였으나 명성왕후와 대비 인선왕후와 암투가 벌어져 조정에 각자 세력을 확보하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복상 문제로 인해 논란이 심했다
훗날 삼복(인평대군의 세 아들 복창군.복평군.복선군 남인)이 숙종을 죽이거나 위협을 할까 염려되어 궁녀들과 분륜 관계 가졌다고 주장하여(궁녀 홍수의 변) 귀양을 보낸다
이사건을 계기(남인들이 탄핵 숙종 받아들임)로 아버지 김우명이 화병으로 죽자 숙종 6년(1680)에 명성왕후 사촌 오빠 김석주가 뒤에서 허견이 삼복과 결탁하여 역모를 도모 했다고 해서 남인.삼복들은 모두 죽였다(남인 지지 세력 추방 장옥정)
ㅡ부인1명 1남(숙종) 3녀
19.숙종
#인경왕후 김씨
1670(현종11)년 10살 동갑 숙종과 혼례를 치르지만 서인이였기에 숙종이 멀리하였지만 착하고 미모가 빼어나 차츰 정이들게 되었다
1674년 왕비가 되었으나 동굴시절의 숙종이 조대비의 나인(장희빈)에게 빠져 착한 성품에 장녀의 처소를 응향각으로 옴겨 주지만 장씨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었다
1680(숙종6)년 막삭이 된 채 천연두를 앓다가 20세에 죽음을 맞이했다
#인현왕후 민씨
외할아버지가 대학자 송준길.아버지 여양부원군 여흥 민씨 민유중인 명문가 출신의 민씨는 너무나도 반듯하고 예의가 바른 것이 흠이 되어 혼인 한 초에는 숙종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1683)숙종 9년에 명성왕후가 승하하자 서인들은 후사를 잇기 위해 민유중이 앞장서서 후궁을 간택하지만 왕은 두 여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자 장렬왕후가 장녀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다(1686.숙종12년.28세)
인경왕후를 모함하던 장씨는 인현왕후까지 걸고 넘어져 힘든 궁 생활을 지내다 대비마져 임종한 후에 장씨가 아들을(경종) 놓아 예물.보약을 내렸지만 무시 받고 끼니까지 거르며 마음 고생을 한다
그러다 결국 보약으로 인해 꼬투리가 잡혀 있지도 않은 일까지 숙종이 몰아부쳐 가슴을 태우며 지내다 장희빈의 음모에 빠져 생일날 일이터지고 쫓겨나게 되었다
훗날 감고당에 들어온 큰 개 한마리를 길러 새끼를 4마리 놓더니 송아지 만큼 자라 맹견이 되어 장희빈이 보낸 자객들을 물어 인현왕후 시해에 실패했다고 한다
#폐비 장씨
세자로 인해 권력을 잡은 장씨가 저지른 만행과 거듭되는 천재지변과 장희재가 엉망으로 권세를 휘둘러 나라가 어지러워 숙종의 마음이 돌아설 즈음 궁안에서 폐비의 생일상을 차려놓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무수리 최씨와 동침해 훗날 연잉군(영조)을 놓게 되고 장비는 임신한 무수리를 고문하고 인현왕후를 저주한 후 음식에 독이 발견되어 사약받게 되어 표독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인원왕후 김씨
경원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16에 숙종의 2계비가 되어 세자의 지극한 효성과 숙종의 귀여움을 받으며 탈 없이 궁중이 화합되고 기강이 바르게 지내던 중 1705(숙종31)년 봄 김주신이 온 지방 관리들이 보낸 봉물로 장안의 갑부가 되자 탄핵이 거세지어 재산을 기민청에 바쳐 백성들을 구휼했다
훗날 신임옥사(노론이 세제 연잉군을 없애기 위해 조정을 휘둘렀으나 실패한 후 연좌된이들까지 포함 173명의 사람이 죽음)때 인원왕후가 연잉군을 감싸주어 소론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경종이 유언 없이 음식을 먹다 갑자기 죽어 김일경을 포함한 조정의 소론들은 연잉군의 혈통을 들먹일때도 38살의 대왕대비인 인원왕후(인원왕후가 없었으면 영조는 왕이 되지 못했음)의 입김과 교지로 연잉군을 왕위에 올린다
ㅡ부인9명 6남2녀 3명의 왕후가 모두 자식 없음
희빈ㅡ경종,무수리 숙빈 최씨 영조
20.경종
#단의왕후 심씨
매우 슬기롭고 참을성 강하며 행동도 조심하고 천성이 간소한 것을 좋아하여 좋은 물건이 생기면 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보잘것 없는 물건이라도 어른에게 양보하거나 먼저 입에 대지 않았다
돌이 지나기 전에 말을 했고 총명한 심씨는 11세(1696.숙종22) 세자빈에 책봉되어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데 손색이 없었지만 33세에 생과부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숙종이 위독할 때에 음식을 먹지 않고 눈물로 밤낮을 기도한 어질고 총명하며 효심이 깊었음)
#선의왕후 어씨
14세에 세자빈(1718.숙종 44)으로 간택되어 경종의 병수발을 성심껏 다한 온순한 왕비로 훗날 영조가 즉위한 후 대비가 되었다
ㅡ부인 2명 자식없음
21.영조
#정성왕후 서씨
1704(숙종 30) 13세에 11세의 연잉군과 혼례
1721(경종 1) 세제빈 책봉
1724(경종 4)33세에 왕비에 오름
투기가 없어 후궁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대하여 주었고 훗날 효장세자(어머니는 정빈 이씨,이행은 1724년영조 즉위년에 경의대군에 봉해졌고 이듬해 세자로 책봉.이복동생 장헌세자가 세자로 책봉)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충격으로 기절했고 잊지못하여 괴로워 했었다
사도세자가 비행을 저지르고 부자간 일이 터질때마다 가운데에 끼여서 타이르고 애원하다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1757.영조33)
#정순왕후 김씨
1759(영조35)년 15세에 계비로 책봉되어 화완옹주와 문숙의(영조 총애 받던)와 친밀하게 지내며 부왕의 총애를 받으며 세자의 기이한 행동들과 비행을 부추겨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촉했었다
(노론 김씨의 아버지 김한구 일파 사주를 받은 나경언 세자 비행10조 고발.세자 역적 상소,숙의 문씨와 세자의 모친 영빈 이씨 세자 모함)
훗날 11세의 어린 순조가 등극하여 최고 권력자가 된 대왕대비로 수렴청정을 하여 벽파(노론 계열)를 중심으로 조정을 채워 천주교 말살정책을 펼쳐 수만명의 사람들을 죽게 했다
노론.소론.남인.소북 인재 고르게 등용,탕평책 실시
ㅡ소론(김일경.목호룡 등) 영조 혈통 비웃음 영조 즉위년 사형.귀용 소론에 대한 대대적인 탄핵 후 노론 등용,을사환국(1725)
ㅡ노론이 (신임옥사) 노론 4대신 신원 복관과 보복이 영조(탕평책 고르 등용)로 인하여 무산되어 파면 되고 다시 소론 합류,정미환국(1727.영조3)
ㅡ이인좌 반란군 일으키나 실패하여 밀풍군(소현세자 셋째 아들인 경안군이회의 손자이며, 임창군 이곤의 아들
.소현세자의 아들 중 경안군이 살아 남아 밀풍군
은 소현세자의 혈손)사사
ㅡ1748(영조24)세자가
14살 때 금호문 벽서 사건 일어남,역적 김일경.이인좌 잔당인 소론 세자를 둘러싸고 영조가 죽길 기다린다는 것(세자가 싫어하던 노론 꾸밈)~세자 대리청정케 하지만 훗날 1752(영조28)년 왕세손인 정조가 태어나자 세자의 대리청정을 거두었다(이후 세자는 나인 임씨에게 빠져 은언군.은신군 왕자 놓음,은언군 철종 조부.은신군 흥선대원군의 조부)
ㅡ노론이 사도세자 비행 10조 고발.역적 모의 상소 결국 사도세자 죽음
ㅡ1775(영조51)왕세손 대리청정 3개월 후 등극(숙부 홍인한.오빠 홍낙임 세손암살 은전군 추대 역모 가담)
ㅡ부인 6명 2남 7녀,왕후 서씨.김씨 자식 없음
22.정조
#효의왕후 김씨
1762(영조38)10세로 11세의 세손과 혼례.세손빈 책봉
1776년 왕비 책봉
시어머니(혜경궁)를 극진하게 모이며 주변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며 시누이(청연.청선)와 우애도 매우 극진했다
깨끗하고 청명한 성품을 지녀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가에 내려지는 재물.공물을 함부로 사가에 내리지도 않았다
정조와 금실이 좋았으나 후사를 낳지 못하여 죄인처럼 숨죽이고 지내다 상상임신까지 했었다
ㅡ부인 5명 수빈 박씨ㅡ순조
23.순조
#순원왕후 김씨
김씨 아버지 안동 김씨 성균관 지사 김조순
1800(정조24)정조 죽어 삼간택 연기
1802(순조2) 14세에 왕비 책봉
시파 김조순은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때 중립을 지켜 살아남았는데 대왕대비가 죽자 벽파 잔여 세력까지 모두 제거한 후 조정.지방관아 실권을 행사하며 안동 김씨 일족으로 세력을 채워 절대 권력을 행사했었다
1809(순조9)숙종 이후 정실 왕후에게서 적통 왕자(익종) 생산ㅡ효명세자
1819(순조19)세자빈 풍양 조씨 조만영 딸 세자빈 책봉하여 안동 김씨 견제하나 효명세자가 일찍 죽어 3년만에막을 내림
1827(순조27)세자빈 조씨 헌종 생산
8세의 어린 헌종이 등극하자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며 친정의 세도를 위해 몰두하여 있는 힘껏 헌신하며 다시 천주교를 탄압(신유박하)하다 69세에 세상을 떠났다
.안동 김씨 외척세도의 전성기,뇌물.과거제도 문란.매관매직.나라 위기,순조 어머니 반남 박씨.영조 계비 경주김씨.안동김씨 씨족 중심 벼슬
ㅡ1811년 서북인으로 차별대우 받던 홍경래의 난 일으키나 실패, 그렇지만 백성들의 자각심을 일깨웠기에 그 후 농민들의 반란 연이어 발생했고 조선 사회 붕괴 가속화 원인이 됨
ㅡ부인2명 1남 5녀 효명세자
#효명세자
순조.순원왕후 사이 태어난 이영은1827년 대리청정을 했는데 인재 등용.형벌을 신중하게 하고 백성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대리청정 3년만에 죽고 만다(아들 헌종 즉위,세자빈 조씨 헌종 즉위하여 대비가 됨 시어머니 순원왕후로 인하여 죽어 지내다 1863 철종이 죽고 홍선대원군과 결탁한 여장부로 고종을 양자로 삼아 수렴청정 하지만 실권X)
24.헌종(효명세자 죽자 1830 세손 책봉)
#효현왕후 김씨
1837(헌종3년) 10세에 왕비 책봉
순원왕후가 친정 집안을 위해 왕비로 결정되지만 16세에 병으로 승하하게 된다
#효정왕후 홍씨
1844(헌종10)14세에 왕비 책봉
안동 김씨.풍양 조씨 세력 다툼으로 사회가 문란해져 백성들의 굶주리는 피폐한 생활이 이어지고 신분 질서.봉건 제도 붕괴 조짐으로 각종 모반 사건이 일어났다
밖으로는 천주교 탄압의 구실 등의 이유로 서구 열강들의 위협을 받았지만 대책을 마련하기는 커녕 안으로 세력다툼으로 권력만 탐했었다
ㅡ부인 4명 왕후 2명 자식없음,궁인 김씨 사이 1녀 요절
25.철종(사도세자.숙빈 임씨 사이 은언군의 3형제 상계.풍계.전계군 중 전계군의 아들 원경.경응.원범 중 순원왕후가 고아 농사꾼 원범 지목.강화도령)
ㅡ농민 수탈 전성기,봉건적인 불교.유교 사상 비판 ㅡ최제우의 동학 혁명
#철인왕후 김씨
안동 김씨 영돈녕부사 김문근의 딸로 철종2년에(1851)왕비로 책봉되자 안동 김씨 세도가 독재로 장악한 후 나랏일을 직접 처리하며 국정을 농단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안동 김씨 때문에 조정은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가 없었고 위협이 될 만한 왕족들마져 거의 죽였다
그로인해 철종은 술.여자에 빠져 각혈하다 몸이 쇠약해져 죽었고 철인왕후가 낳은 소생들 마져 요절하고 말았다
ㅡ부인 8명 5남1녀 영혜옹주외 5남 요절
26.고종
#명성왕후
1866(고종3)년 흥선대원군의 부대부인 민씨의 천거로 8세에 부모를 여원(모친 가문 한미) 민씨를 왕비에 책봉되어 궁에 들어왔으나 고종이 후궁 이씨를 총애하였기에 역사.도서를 읽으며 참고 지냈었다
1868년 이상궁이 완화군을 놓자 원자 책봉의 조짐을 느끼자 조정에 친정 일가 사람들로 서서히 끌여들여 들이기 시작하며 면밀하게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1871(고종8)년 민비가 왕자를 낳았지만 항문이 막혀 요절하자 산삼을 많이 먹인 흥선대원군을 원망하며 갈등이 악화되었고 13살 완화군이 죽자 이씨를 궐에서 쫓아냈다
1873(고종10)22살의 고종이 직접 친정하자 민비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정을 민씨 일가와 함께 장악하였다
1873(고종11)왕세자 이척을 생산(순종)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는 조선이 성장할 수 없다고 깨닫은 민비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구미열강과 조약을 맺었고 일족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태호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하여 세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임오군란(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 차별 계기)때 위기를 맞아 창덕궁을 빠져 나와 민응식의 집에 숨어 지냈다가 청나라 개입으로 인해 다시 입궁하게 되의 친정 정책을 펼치자 갑신정변(개화당 청나라 속방에 저항 우정국 테러 이후 일본 공사관 습격 조선은 한성조약 맺어 일본에 배상 및 조선 침략의 발판 마련케 했음)을 겪게 되고 더욱 청나라에 의존하였다
갑신정변이후 민씨 일가가 다시 조정을 장악했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알지 못하고 민비는 청나라에만 크게 의존하다가 나라에 위기를 초래하여 조선을 사이에 두고 열강들 사이 끼여 밀약을 맺으며 지키려고 했다
눈이 먼 민비.민씨 일족들의 폐해로 동학 혁명이 전국을 조직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원성이 높아져 갔다
민비는 농민들의 봉기가 확산되자 직접 해결하거나 안으로 정책을 펼치지 않고 청나라에 원병을 청하여 나라를 위기에 넣어 청.일 전쟁이 조선에서 일어나게 되고 후에 동학군의 봉기는 항일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때 민비는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고 일본은 청일전쟁을 승리했지만 민비가 친러정책을 펼치려하자 흥선대원군을 앞세워 암살하고 만다
조선의 어느 왕비보다 가장 영특하고 탁월한 정치 수완을 지녔지만 흥선대원군처럼 권력에 눈이 멀고 집착하여 백성보다는 자신과 일가의 권력에 힘썼던 국모로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전국에서 백성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훗날 고종의 죽음은 독살 설이 번지게 되어 3.1운동이 일어났었다
#순헌황귀비
영친왕 이은의 생모로 민비에 의해 쫓겨 났다가 민비가 죽은 지 5일만에 다시 입궐(1895)하게 된다
1900년 이은이 영왕으로 봉해져 순빈 책봉
1901년 후비로 승격
1906년 진명여학교 세울때 거금 내놓고 양정학교.숙명여학교 설립 때도 중심 역할을 해 교육에 힘썼다
1907년 영친왕이 마지막 황태자로 책봉되자 순헌황귀비에 책봉 되고 10세의 황태자 일본 볼모로 잡혀 갔다
1920년 석녀로 알려진 일본 황족 딸 마사코와 왕세제(1910년 순종 폐위때 황태자 격하)와 정략 결혼했다
아들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다 58세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아들은 순종이 죽어도 귀국하지 못하고 왕위를 잇긴 하지만 귀국하지 못하다가 1963년 박정희 의장 주선으로 부부가 귀국하지만 뇌혈전.실어증으로 고생하다 74세 사망)
ㅡ부인 7명 6남1녀,명성왕후 순종,순헌황구비 영왕.
#덕혜옹주
순헌왕귀비가 죽은 후 고종은 사칙 양씨에게서 덕혜옹주(1912)를 낳는다
옹주가 소학교 5학년이던 때 일제에 볼모로 끌려가 교육 받고 강제 결혼 한 후 정신 질환이 심하여 이혼당하고 방정희.이방자에 의해 1962년에 귀국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아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27.순종
#순명효황후 민씨
1882(고종19)년 11세에 왕세자빈 책봉
1884(고종21)년 아버지 민태호 민씨 일족 세력으로 활약하다가 갑신정변 개화파에 의해 살해
1897(고종34)대한제국의 황태자비 책봉
1904(고종41)명성왕후 시해 이후 주어진 모든 것을 숙명으로 여기고 숨죽이고 살다가 33세 소생없이 세상을 떠났다
#순명효황후 윤씨
1906년 황태자비로 책봉
1907년 순종이 즉위하자 황후가 됨
1910(융희4)년 옥새를 치마속에 감추고 있다가 큰아버지 윤덕영이 강제로 빼앗아 이완용에게 건네주고 만다
친일파인 친정과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받아 72세에 후사없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순조.헌종.철종을 거치는 동안
안동 김씨.세도정치.명성왕후의 일족에 의해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망하게 되며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주위에는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로 둘러 쌓인 채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하여 강제 합방되고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갇힌 채 5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해 6.10일 국상이 치러질 때 전국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조선의 왕비여전이 조금 길지요.
The Queen of Joseon is a little long.
근데 읽어 가다 보면 참으로 재미있고 놀라운 우리의
왕비열전, 많이 올려서 조금 지겹지만 역사의 많은
도움이 되곤 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Today, I am spending my day in the grace of the Lord and the Virgin.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Thank you, be healthy,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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