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영생에 대한 갈증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수성구 2014. 3. 23. 02:34

 

*♡♥ 영생에 대한 갈증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요즘은 주말이 되면 
날씨도 화창하고 기온도 올라가고
봄을 즐기기 참 좋은 날들이 됩니다.
이번 주말도 그렇죠?
저는 어제부터 좀 정신 없이 지냈습니다.
금요일 아침에 어머니께서 의식이 없어시단 소식을 접하고
동생에게 가톨릭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라고 하고
저도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급하게 응급조치를 하여
떨어진 혈압을 끌어올리고
산소호흡기로 호흡을 도와주면서 
몇 가지 검사를 위해서 피를 뽑고
CT촬영을 하고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의식이 돌아올 가미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로 입원을했습니다.
중환자실에는 하루에 두 번 30분씩만 면회가 된답니다.
오늘 아침에 면회를 가니까 그래도 다행히 
의식이 좀 돌아오신 것 같았습니다.
여기 저기 기도를 청하고
저도 기도를 드리면서 하루를 지내고 
저녁에 다시 면회를 갔습니다.
아침 보다도 의식이 더 돌아와서
이젠 말을 다 알아들으시고 반응을 하십니다.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점점 호전되고 있으니 한 씨름 놓기는 했습니다.
형제 자매님도 기도 중에 
저의 어머니 신 보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형제 자매님,
벌써 사순제 3주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자기들을 이집트에 그냥 둘 것이지 왜 데리고 왔느냐고 
불평하며 따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벌써 힘든 노예생활에서 구해달라고 
하느님께 울부짖던 날들(탈출 2,23)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면서 체험한 하느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사랑에 감사할 줄은 모르고 
작은 불편 때문에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목이 마르다고(탈출 15,24), 
배가 고파서 굶어 죽겠다고(탈출 16,3) 불평하면서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신 하느님께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흔히 생활 중에서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큰 은총은 쉽게 잊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하느님을 원망하죠?  
우리도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시카르라는 동네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참된 믿음에로 이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부정한 자들이라 하여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낮추시며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히 살게 하는 샘솟는 물 곧 성령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나약한 한 인간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낮추고 다가가심으로써 
여인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그 여인이 자신의 처지를 올바로 직시하도록 
곧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것은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물을 애타게 찾듯이 
자기 죄를 알고 있는 사람이 구원의 필요성을 더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정체를 점점 깨달아 가고, 
그녀의 믿음이 깊어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은 그러한 사실을 여인이 예수님께 사용하는 호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처음에 예수님을 그냥 한 ‘유다 사람’이라 불렀지만(9절) 
곧 ‘선생님’으로 부르고(11절)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12절)이라고 불렀다가 
“예언자시군요.”라고 고백하고(19절) 
마침내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29절).
그리고 그 여인의 증언으로 예수님을 만났던 마을 사람들도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라고 
고백합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은 그분과의 계속된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의 증언으로 호기심이 생겨 예수께 접근했습니다.  
예수님과의 첫 번째 만남은 
그들에게 그분의 위격이 끝까지 추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신비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자신들의 동네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고, 
아마 격렬하고도 긴 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시다.”라는 확신에 이르게 됩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예수님께 이런 확신에 찬 고백을 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만남은 우리가 꾸준하게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부족한 곳을 꾸밀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대면한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세속적인 가치들에 빼앗기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분의 삶이 사랑 자체였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삶을 누리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과의 만남을 계속하면서 참된 생명에의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대면하기를 피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샘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면한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심으로써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머물면서 사랑에 대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면,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샘솟는 물 곧,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새롭게 일깨워주시고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하셔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대구 대신학교 남산동 유스티노 교정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