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하늘을우러러

십일조 신앙 -1

수성구 2021. 1. 4. 05:08

십일조 신앙 -1

 

 

한센병 환우들의 정착 마을이

전국에 약60개 정도 남아 있는데

종교적으로 분류하면 세 가지 형태다.

개신교 단독 마을, 천주교 단독 마을,

그리고 천주교 · 개신교 혼합 마을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 혼합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1960년대, 그때에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환우들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

다행히 천주교에서는

구호물자가 나와서 밀가루다,

강냉이다 해서 배급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신부들이 간간이 쌀값이다,

연탄 값이다 해서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거지 신세나 다름없었다.

 

생계가 어려운 환우들은 읍내에 내려가

각설이 타령으로 돈 좀 얻어

끼니를 때우고 살림을 꾸렸는데,

조금 여유가 있는 자들은

양돈이나 양계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때는 가난했지만,

움막일망정 내 집이 있다는 것을

대견스러워 했으며,

나중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감격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웬 일로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너나없이 살림이 어려워

대부분 주저 앉았는데,

개신교 신자들만큼은 이상하게 힘을 얻어

쑥쑥 일어서서 자립을 하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이상한 일이었다.

자립을 한다면 당연히 도움을 받는

천주교 신자 쪽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도움이 전혀 없었던

개신교 신자 쪽이 먼저 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개신교 신자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들이 동냥해 온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느님의 몫으로 바쳤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그런 십일조 신앙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 신부들이

"환자들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으니

교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온 탓에 이를테면

'받는 신앙'은 크게 있어도

'바치는 신앙'은 없었던 것이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는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바치는

개신교 신자들은 더 부지런하고

더 검소해질 뿐만 아니라 더 기도하고

더 찬송하게 되었던 반면,

천주교 신자들은 바치는 신앙

없기 때문에 밤낮 없이 술만 마시고

싸움을 할 뿐 아니라

밤새도록 돈내기 화투를 치는 등

무절제한 생활로

그들을 병들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아무리 가난해도

하느님의 몫을 하느님께 바쳐야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의 몫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생전

누가 그런 말씀을 들려주는 이가 없어

십일조의 은혜를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 <밭에 묻힌 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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