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사순시기]성모 칠고 묵주기도/ 축일:3월14일 성녀 마틸다 왕후 //

수성구 2014. 3. 10. 19:14

사순시기]성모 칠고 묵주기도/ 축일:3월14일 성녀 마틸다 왕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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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tombment(detail)- CARAVAGGIO

1602-03. Oil on canvas, 300 x 203 cm. Pinacoteca, Vatican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

 

사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므온의 예언에서부터, 이집트 피난, 12세의 아들 예수를 잃고 3일을 근심 속에서 찾아 헤매던 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숨진 아들을 안고 통곡하는 등 일생을 예수님의 길을 뒤따르며 어머니로서 아드님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셨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님의 이러한 삶을 "정신적 순교"의 삶이라고 하였다.

(원죄없으신 성모기사회홈에서)

 

묵주기도 중에서 7단으로 된 묵주가 있는데

이는 성모님의 칠고와 칠락을 묵상하면서 바치기 위한 것이다.

 

 

 

 

■ 성모칠고(聖母七苦) 묵주기도

 

   성모칠고(聖母七苦)

① 시므온의 예언(루가2,34-35)

② 이집트로의 피난(마태2,13-18)

③ 예수를 성전에서 잃음(루가2,41-51)

④ 예수. 십자가를 짊(루가23,26-32)

⑤ 예수. 십자가에서 죽음(요한19,25-30)

⑥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요한19,38-40)

⑦ 예수 무덤에 묻힘(요한19,41-42)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Feast of Our Lady of Sorrows)

:9월15일. 게시판642번,136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시작 기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의 왕이신 주님!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던 날부터

온갖 수난과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나이다.

이 모든 것이 저희를 위한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하소서.

저희 죄인들의 피난처이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은 아드님의 인류 구원사업의 협조자로서

온갖 고뇌와 슬픔을 함께 받으셨나이다.

현세에서 저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성모님의 고통에 일치하여

인류 구원의 협조자가 될 수 있게 하소서.

 

 

[icon] The presentation at the temple. XV c. Novogorod Museum

 

성모 통고의 신비 1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성전에서 시므온 예언자의 예언을 들으신 고통을 묵상합시다.

 

루가2,34-35

34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35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No. 20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4. Flight into Egypt-GIOTTO di Bondone

1304-06. Fresco, 200 x 185 cm.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성모 통고의 신비 2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예수님과 함께 에집트로 피난가신 고통을 묵상합시다.

 

마태2,13-18

13  박사들이 물러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주었다.

14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6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18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No. 22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6. Christ among the Doctors-GIOTTO di Bondone

1304-06. Fresco, 200 x 185 cm.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성모 통고의 신비 3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소년 예수님을 잃으신 고통을 묵상합시다.

 

루가2,41-51

41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44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45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46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0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Christ Carrying the Cross-TIEPOLO, Giovanni Battista.

1737-38. Oil on canvas, 450 x 517 cm. Sant’Alvise, Venice

 

성모 통고의 신비 4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신 고통을 묵상합시다.

 

루가23,26-32

26  그들은 예수를 끌고 나가다가 시골에서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붙들어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27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뒤따랐는데 그 중에는 예수를 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28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을 돌아보시며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29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보지 못하고 젖을 빨려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 하고 말할 때가 이제 올 것이다.

30  그 때 사람들은 산을 보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할 것이며, 언덕을 보고 ’우리를 가려달라.’ 할 것이다.

31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오죽하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No. 35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19. Crucifixion -GIOTTO di Bondone

1304-06. Fresco, 200 x 185 cm.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성모 통고의 신비 5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와 함께 고통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요한19,25-30

25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26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27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28  예수께서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성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29  마침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포도주를 해면에 담뿍 적셔서 히솝 풀대에 꿰어가지고 예수의 입에 대어드렸다.

30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Descent from the Cross-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34. Oil on canvas, 158 x 117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성모 통고의 신비 6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성시를 품에 안으신 고통을 묵상합시다.

 

 

요한19,38-40(마르15,42-47)

38  그 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게 하여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렸다.

39  그리고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40  이 두 사람은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The Entombment - CARAVAGGIO

1602-03. Oil on canvas, 300 x 203 cm. Pinacoteca, Vatican

 

성모 통고의 신비 7단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돌무덤에 묻히실 때 당하신 고통을 묵상합시다.

 

요한19,41-42(루가23,50-56)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42  그 날은 유다인들이 명절을 준비하는 날인데다가 그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일곱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마침기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품에 안고

얘통해 하시는 어머니 마리아님.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받으신 당신의 고통을 따라

저희도 깊이 통회하며 보속과 기도를 바치오니

악을 저지르는 세상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선으로 변화시켜 주시어 그들도 용서받을 수 있게 하시고

육신과 세속과 마귀를 이길 수 있드록 전구해 주소서.

아멘.

 

성모송(세번)

통고의 어머니. 당신 고통 저희에게 나눠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모 칠고 묵주기도-아베마리아출판사 참조.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 인류의 빛

 

마리아와 예수님의 유년기

57. 구원 활동에서 성모님과 아드님의 이 결합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 때부터 그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드러난다.

먼저 마리아께서 서둘러 일어나 엘리사벳을 찾아가시어 그이에게서 약속된 구원을 믿으셨으니 복되시다는 인사를 받으시고,

선구자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뻐 뛰놀던 때에(루가 1,41-45 참조),

또 천주의 성모님께서 당신의 완전한 동정성을 감소시키시지 않고 오히려 성화하신 당신의 맏아드님을10)

목자들과 박사들에게 기꺼이 보여 주시던 성탄 때에 그 결합이 드러난다.

성전에서 가난한 이들의 제물을 바치시며 주님께 아드님을 봉헌하셨을 때에,

성모님께서는 또한 아드님이 장차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고

어머니의 마음이 칼에 찔릴 것이며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숨은 생각이 드러나게 되리라는 시므온의 예언을 들으셨다(루가 2,34-35 참조).

어린 예수님을 잃고 애태우며 찾던 그 부모는 성전에서 당신 성부의 일에 열중하시던 예수님을 발견하였으나 아드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당신 마음에 깊이 새겨 간직하셨다(루가 2,41-51 참조).

 

마리아와 예수님의 공생활

58.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맨 처음부터 뚜렷이 나타나신다.

갈릴래아의 가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는 자비심이 우러나 당신의 전구로 구세주 예수님의 첫 기적을 이끌어 내셨다(요한 2,1-11 참조).

예수님의 복음 선포 과정에서는 아드님께서 혈육의 관계나 유대를 넘어 하느님 나라를 들어 높이시며,

성모님께서 충실히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루가 2,19.51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신(마르 3,35; 루가 11,27-28 참조) 그 말씀을 받아들이셨다.

 

이렇게 복되신 동정녀께서도 신앙의 나그넷길을 걸으셨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드님과 당신의 결합을 충실히 견지하셨다.

거기에 하느님의 계획대로 서 계시어(요한 19,25 참조),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극도의 고통을 겪으시며

당신에게서 나신 희생 제물에 사랑으로 일치하시어 아드님의 희생 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셨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성모님을 제자에게 어머니로 주셨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요한 19,26-27 참조).11)

 

 

 

■The Franciscan crown . 칠락묵주기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7가지 기쁨을 찬미하기 위하여 1422년에 시작된 7단짜리 묵주기도(rosary).

이 묵주기도는 또한 ’천사적 로사리오’(seraphic rosary)라고 불리기도 한다.

 

*칠락묵주기도:게시판1408번

*묵주기도. 빛의 신비:게시판721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묵주기도의 영성

묵주기도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만약 묵주기도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라면,

왜 성모님 상(像) 중에 묵주를 들고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는 성모님 상이 있겠는가?

 

만약기도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라면 성모님이 묵주를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성모님께 바친다는 이야기는 맞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깊숙이 묵상에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예수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묵주기도는 오히려 성모님을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성모님의 중심은 예수였고

성모님의 모든 것이 예수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묵주기도의 모든 묵상은 예수님을 향해야 한다.

 

 

 

 

 

축일:3월14일

성녀 마틸다 왕후

St. Matilda

Santa Matilde di Germania Regina

Engern, Sassonia, ca. 895 - Quedlimburgo, Sassonia, 14 marzo 968

Matilde = strongly in war, from the German

 

 

마틸다는 ’힘과 전투’란 뜻이다.

웨스트팔리 백작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삭소니아의 공작인 오토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 얼마 후에 독일의 헨리 1세 국왕이 되었다.

 

또 그녀의 아들 오토는 오토 1세 왕이 되었고, 다른 한 아들 브루노는 쾰른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녀는 32세 때에 과부가 되었는데, 이때 아들인 오토 1세로부터 극심한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심이 뛰어났으므로 자선사업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동생 헨리가 형인 오토 1세에게 반기를 드는 판국이라 그녀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그녀는 수도원을 세곳이나 세웠고, 만년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녀는 궤돌린부르그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과 교회의 후원자로서 큰 공경을 받는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마틸다 왕후는 9세기 말경 독일 웨스트파렌 주(州)의 테오도리고 후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덴마크의 왕녀 라인힐다다.

그 당시는 자녀를 수도원에 의탁하여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상류사회의 관습이었으므로

마틸다도 관습에 따라 숙모가 원장으로 하는 헬포르드 여자 수녀원에 맡겨져

필요한 일반 지식과 함께 종교 교육도 받으며 경건히 자랐다.

그러던 중 그녀는 어려서 삭소니아의 공작인 하인리히와 결혼하고, 안락한 부부 생활을 하며 3남 2녀를 낳았다.

 

결혼 후 3년째인 912년의 일이다.

독일 황제 콘라도 1세가 승하하고 하인리히가 그의 후계자로 추대되자

자연히 마틸다도 국모로 존경을 받게 되었지만

겸손한 그녀는 조금도 교만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도리어 빈민을 돕고 병자를 문안하고

백성을 돌봐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남편이 천성적으로 성미가 급하고 쉽게 화를 잘 내는 성격임에도

늘 그녀는 온화하고 온순한 태도로 대하고,

또한 죄수를 석방하고 죄인을 관대히 처분해 줄 것을 종종 부탁한 일도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수도원이 한 나라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함을 깨닫고

남편과 함께 수도원을 몇 군데 세우고

그 중의 하나인 궤돌린브르크 수도원을 자신들의 묘소(墓所)로 정하기까지도 했다.

 

936년, 하인리히 황제는 중병에 걸려 마틸다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났다.

때는 아침이 아니었으나 그때 왕후는 아직 식사도 들지 않은 사제를 다행히 만나

한시라도 빨리 죽은 남편을 위해 미사를 드리게 한 후

자신도 미사에 참여하면서 진정으로 죽은이를 위해 기도했다.

 

 

미사가 끝난 뒤 마틸다는 그 사제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의 표시로 자신의 황금 팔찌를 증정하고

황제의 관 앞에 가서 다시 이별의 슬픔에 잠겼지만,

이내 아직 어린 오토, 하인리히 두 황자를 불러놓고

"보는 바와 같이 황금의 왕관을 쓰던 황제라 하더라도 때가 이르면

일반 평민과 똑같이 죽어 하느님의 심판 마당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그대들은 신분이 높을수록 더욱 제 몸을 수양하고 선을 행하며 악을 피해 훌륭한 성군이 되어

하느님의 뜻에 의합한 자가 되고 사후에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각별히 조심해 달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새로 황제위에 오른 오토는 바바리아 후작이 된 동생과 어머니의 훈계에도 아랑곳없이

오랫동안 서로 싸워 마틸다에게 많은 걱정을 하게 했다.

후에 간신히 화해를 하자마자 이번에는 "마틸다 황태후가 가난한 자를 구하기 위해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악한들의 모함을 곧이 듣고 형제가 합세하여 어머니의 재산을 거두어 버렸다.

 

마틸다는 이러한 자식의 불의에 몹시 마음이 상했지만 자신이 궁전에 있으면

도리어 풍파의 원인이 되리라 생각하고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나 엔게룬 수도원에 들어가서 밤낮 하느님만을 섬기며

불효한 아들들을 위해 용서와 회개의 은혜를 간구했다.

 

마틸다가 궁전을 떠난 뒤에는 국내에 여러 가지의 재앙과 불행이 계속 일어났으므로

성직자들이나 제후들은 이를 천벌로 생각하고

왕비를 통해 황제에게 황태후를 도로 모셔올 것을 간청했으므로

오토도 깊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어머니를 영접하러가서 진심으로 죄의 용서를 청했다.

 

마틸다 황태후는 이와 같이 다시 궁중의 사람이 되었지만

호화로운 생활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고

다만 마음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녀의 자선 사업의 공적은 그녀가 죽은 후 6년에 걸쳐 편찬된 전기에 자세히 실려 있지만 그 일부를 들어보면

"성녀는 하루 두번씩 빈민에세 식사를 제공했고 자신의 음식 중에서 맛있는 것은 불쌍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또한 토요일은 남편의 기일(忌日)도 되고 주일의 전날도 되므로 특별히 더 많은 어려운 이들을 도와 주고

아울러 빈민을 위해 목욕물까지 마련해 주며 손수 심부름을 해 주는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마틸다의 기도에 대한 열성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종종 밤중에도 시녀(侍女)와 함께 일어나 성당에서 기도했다.

그리고 평일에는 다윗의 시편 150편을 빠뜨리지 않고 외웠다고 한다.

 

955년, 마침 성녀가 궤돌린부르크의 수도원에 머물고 있을 때

바바리아 후작이던 아들 하인리히의 부고가 왔다.

그러자 마틸다는 즉시 수녀들에게 그를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기를 부탁하고,

아울러 고인이 된 남편과 자녀의 행복을 빌 목적으로 노르트하이젠에 여자 수도원을 세웠다.

그 뒤 천국으로 갈 날이 가까워 온 줄을 안 마틸다는 남편의 옆에 묻어주기를 원하며

그의 묘가 있는 궤돌린부르크 수도원에 가서 968년 3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대구대교구홈에서)

 

 

 

 

 

   프리슬란드-덴마크의 귀족 가문인 그라펜 디트리히의 딸로 태어난 성녀 마틸다(Mathildis)는 909년 작센(Sachsen)의 공작인 하인리히(Heinrich)와 결혼했다. 919년 하인리히가 독일의 하인리히 1세 국왕이 되자 독일 여왕이 된 그녀는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들을 두었는데, 훗날 독일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오토(Otto), 프랑스의 루이 4세와 결혼한 게르베르가(Gerberga),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인 하인리히, 프랑스 카페(Capet) 왕조의 위그 카페의 어머니인 하드비히(Hadwig), 그리고 쾰른(Koln)의 대주교가 된 성 브루노(Bruno, 10월 11일)가 그들이다.

   그녀는 32세에 과부가 되었는데, 이때 아들인 오토 1세로부터 극심한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심이 뛰어났으므로 자선사업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동생 하인리히가 형인 오토 1세에게 반기를 드는 판국이니 그녀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그녀는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 곳이나 세웠고, 만년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그녀의 아들 오토 1세와 화해를 하고 968년 3월 24일 사망하여 궤틀린부르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과 교회의 후원자로서 큰 공경을 받는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