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축일:1월30일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수성구 2014. 1. 25. 09:25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 나오는 ‘다윗의 감사 기도’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깊이 감명받고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다윗의 참된 겸손입니다. 겸손과 겸허가 기도의 밑바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우리는 자주 그 참뜻을 오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가진 것이 없는 자’에서 우리는 잘못 이해된 겸손을 실감합니다. 세상에 드러나는 등불과 대비되는 이 모습은 자신이 받은 몫을 부끄러워하고 그저 숨어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참된 겸손은 두려움과 자기 폐쇄에서 비롯된 무조건적인 비하가 아닙니다. 그러한 태도는 실제를 외면하고자 하는 일종의 심리적인 자기방어에 불과합니다. 여기에는 기쁨도 기다림도, 새로운 시작도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나타나는 참된 겸손은 오히려 움츠러들지 않고 실제의 모습이나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는 담대함과 자신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습니다. 겸손은 보잘것없고 비천한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하실 큰일을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2년 전에 선종한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의 전 교구장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은 대담집 『예루살렘 밤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잘못 그은 선이라도 교정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긋지도 않은 선을 고쳐 그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떨쳐 내고,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늘 새로이 시작하려는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참된 겸손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자세일 것입니다.
축일:1월30일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

 

 

 

 

축일:1월30일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St. Hyacintha Mariscotti

Santa Giacinta Marescotti Religiosa

Vignanello (VT), 1585 - Viterbo, 30 gennaio 1640

Etimologia: Giacinta = dal nome del fiore(=from the name of the flower)

Beatified :1 September 1726 by Pope Benedict XIII

Canonized :24 May 1807 by Pope Pius VII

 

 

히야친타는 1585년 비테르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3회에 들어왔다.

심한 질병을 앓은 후에 엄격한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이웃사랑에도 열심이었다.

1640년 비테르보에서 선종했다.

 

하느님, 복된 동정녀 히야친타를 당신 사랑으로 불타게 하시고

끊임없는 극기의 모범으로 세우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눈물로 죄를 뉘우치고 기쁜 마음으로 당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발자취를 따라서에서)

 

 

비냐렐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비떼르보의 프란치스꼬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비떼르보의 프란치스꼬 율수 3회에 입회하였다.

이때에 그녀는 히야친따라는 이름을 받고 서원하였다.

 

특히 그녀의 애덕은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만큼 위대하였고,

따라서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그녀는 55세 때에 운명하였다.

 

시성 선언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Hyacintha de Mariscottis)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한 후작이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 입회한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수도생활 초기 10여 년간 여전히 사치스럽고 개인적 생활로 수녀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고해성사를 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의 가장 큰 덕은 애덕으로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히야친타는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가톨릭홈에서)

 

*파티마의 복녀 히야친타 축일: 2월20일, 게시판1626번.
*폴란드의 사도 성 히야친토 축일: 8월17일.게시판1319번.

*비테르보의 성녀 로사 축일:9월4일(3월6일), 게시판1348번, 1647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율수3회(Tertius Ordo Regularis,  T.O.R.)

 

13세기 부터 재속 3회 내에서 수도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단체를 구성하고 자선사업을 하며 공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1413년 교환 요한 22세가 칙서를 보내서 총회를 가질수 있도록 하였다.

1회와 똑같은 서원을 하며, 1회와 3회의 이상을 결합한 고유의 회칙을 갖고 있다.

1회 세가족과 함께 재속프란치스코회의 영적. 사목적 보조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가족

 

1회: 작은형제회(O.F.M.).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O.F.M.conv.),카푸친작은형제회(O.F.M.cap.)

2회: 클라라회(O.S.C.)

3회: 재속프란치스코회(O.F.S.), 율수3회(T.O.R.), 수도 3회

(재속프란치스코회홈에서)

 

 

변화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당할 때,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는 힘껏 저항해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후 최선의 상황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성녀 히야친타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는 막내 여동생이 자기보다 먼저 결혼한 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그를 프란치스코 수녀원에 강제로 입회시켰는데,

그는 그곳에서도 제멋대로 생활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어려움을 주었다.

 

그렇게 지낸 지 10년쯤 되던 해에 히야친타는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방법을 바꾸어 마침내는 자기 수련과 자선가의 모델이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는 ‘아무리 늦어도 변화는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철저한 자기 성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기심, 교만, 탐욕처럼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그것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첫 단계다.

성녀 히야친타처럼 그것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

우리의 어두운 내면에 진리와 희망, 그리고 사랑의 빛이 채워질 수 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변화하지 않고 이대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하자.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