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플라톤주의로 청년기에 성서에 접한 뒤 개종하였으며,
고향인 포이터스의 주교로 피선되어 아리안족의 이교(異敎)에 맞서 대항하였습니다.
소아시아로 유배당한 그는 그 곳에서 동방의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아리안족의 개종에 전념하여 "서방의 아타나시우스" 란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삼위일체에 대하여’, ’시편의 주석’등이 있습니다.
최초의 서방 신학자이며,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삼위일체에 관한 연구에서 그의 설(設)을 즐겨 인용하였으며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축일:5월2일.게시판1137번.1742번.
* 삼위일체 대축일:2003.6.15.게시판1224,1225,1226번.2004.6.6.게시판1795,1796,1797번.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축일:8월28일.게시판1336번.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1월28일.게시판917번.1590번.
4세기 초엽 프랑스의 푸아티에에서 태어났다.
350년경 그 도시의 주교로 선출되고 아리우스 이단들과 용맹히 투쟁했다.
이때문에 콘스탄시우스 황제는 그를 유배형에 처했다.
카톨릭 신앙을 옹호하고 성서를 주해한, 지혜와 학식에서 탁월한 저서들을 남겼다. 367년 세상을 떠났다.
성 힐라리오 주교의 [삼위일체론]에서
(Lib. 1,37-38; PL 10,48-49)
당신의 이름을 전하며 당신을 섬기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당신을 섬기는 것이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나의 모든 말과 생각으로 당신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언변의 은총은, 당신의 이름을 전하고 당신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나 당신을 부인하는 이단자들에게나
당신이 참으로 아버지 곧 하느님 외아드님의 아버지시라는 것을 증명해 줌으로써 당신을 섬기는 일보다 다른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소망하는 것뿐입니다.
그 나머지는 당신의 도움과 자비의 은총에 달려 있으므로
나는 성령께서 당신의 숨으로써 우리 신앙과 찬미의 돛을 가득 부풀에 하시어 우리가 시작한 복음 전파의 길로 우리를 밀어 주십사고 청해야 합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두드리라, 열릴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충실하시므로 그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나약한 인간인 우리는 결핍된 것을 당신께 청할 것이고 당신의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을 확고한 열성으로 깊이 탐구할 것이며
또 진리를 원치 않아 닫아 버린 문마다 두드릴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바를 허락해 주시고 우리가 찾는 바를 발견케 해주시며
또 우리가 두드리는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우리의 본성은 게으름에 사로잡혀 있고, 또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우둔함으로 인해 억압되어 있어 당신의 신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가르침에 대한 탐구는 당신의 신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신앙에 대한 복종은 자연적 사고 능력을 넘어서까지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떨면서 발걸음을 내딛는 이 탐구에서 당신이 우리를 분발시켜 주시고 진보하는 동안 우리를 견고케 하시며,
우리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을 그들이 전한 본래의 뜻으로 이해하여
그 말씀들의 참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정신을 함께 나누게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영감을 받아 그들이 전한 것을 우리도 전할 것입니다.
즉,당신은 영원하신 하느님이시고 영원하신 외아드님의 아버지이시며 당신 홀로 태어남이 없으신 분이심을 전하고,
또한 한 주님이신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탄생으로써 당신에게서 나오시고
본성의 차이로 말미암아 제신들의 무리에 속하는 분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되며
또 당신에게서 태어나신 분으로서 유일한 하느님이신 당신과 똑같은 본성을 지니고 계시고
그분의 참 아버지이시고 하느님이신 당신에게서 태어나신 참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전할것입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이 말씀들의 참된 의미를 열어 보여 주시고 이해력의 빛을 주시며 언변의 힘과 참된 신앙을 주소서.
하느님,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고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대로 당신이 우리의 유일한 하느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주님이심을 전하게 해주소서.
하느님, 진리를 부인하는 이단자를 거슬러 당신은 하느님이시지만 홀로 계신 하느님이 아니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 참 하느님이심을 믿고 또 전하게 해주소서.(가톨릭홈에서)
성 힐라리오는 320년경 갈리아(오늘날 프랑스의 보아티에)시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그 나라의 귀족이었지만 이교도(異敎徒)였다.
힐라리오는 그 나라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지만 이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헛된 세속의 쾌락을 물리치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그 이유는 마음이 곧은 그가 일찌기 이교의 허무함과 이성에 배치됨을 깨닫고 진심으로 진리를 찾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책 한권을 얻게 되어 그 후부터는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열심히 그리스도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오랫동안 동경하며 구하고 있던 종교라는 것을 확신하여
마침내 세례를 받고 거룩한 신앙심에 북받쳐 그리스도교적 완덕에만 진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아티에 시의 주교께서 서거하시자 그는 그의 후계자로서의 최상의 적임자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되어 주교가 되었다.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는 이 학식많고 신앙이 두터운 주교를 선택해 진리의 옹호자로 만드셨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즉 그 당시 때마침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아리우스파(派)의 이단이
콘스뵈설?2세 황제의 지지를 얻어 삽시간에 서양 제국은 물론 동양에도 전파되었다.
힐라리오는 이에 대해 과감히 싸워 언변과 문필로써 전력을 다해 그들의 개종을 위해 노력했다.
이단자들은 이 훌륭한 인물을 자기편에 끌어드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성 주교의 신앙은 단호히 움직이지 않았고 위협이나 감언이설로도 끝내 성공을 못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원수들은 방법을 바꾸어 이번에는 백성들을 선동해 황제에게 힐라리오는 역적(逆賊)이라고 모함했다.
황제는 이말을 곧이 듣고 끝까지 올바른 신앙을 고수하는 주교를 소아시아로 추방했다.
그러나 힐라리오는 도리어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해 고생하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또한 감사했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 이역산천(異域山川)인 수천리 떨어진 타향에 귀양을 가서도 그는 조금도 낙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더욱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힘 자라는 데까지 싸웠다.
그때 그는 고국에 있는 성직자나 신자들에게 여러차례 편지를 보내어 신앙에 충실하기를 권면했는데,
이것을 보더라도 그의 신앙이 얼마나 견고하고 그의 학식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그가 귀양간 지방인 소아시아는 거의 전부 이단에게 침범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 이단자들과 논쟁하고 그의 본래의 웅변과 학식으로써 바른 도리를 설명했다.
이단자들은 한 사람도 대항해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입을 다물고 잠잠할 뿐이었으므로
마침내 할 수 없이 주교를 빨리 본국에 소환해 주도록 황제에게 간청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힐라리오 주교가 오래간만에 전임지인 보아티에 시에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환영과 열광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귀국 후 또다시 이단의 소멸에 노력해 대단하게 갈리아 전토를 이단에서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언젠가 주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을 모두 교회 전통의 교리에 일치시킬 수가 있었다.
다만 그 중에 한사람만은 종내 이단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제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다행히 교회를 이단의 설에서 인도해낸 힐라리오는 이제는 교회 내의 규율 확립과 신앙심의 부흥에 착수했다.
그 이유는 장기간 이단과의 논쟁으로 말미암아 규율이나 신앙심을 전부 소홀히 하게 된 탓이었다. 이 계획도 그의 열렬한 권면으로,
또한 그의 몸소 실천하는 모범에 의해 짧은 시간 동안에 훌륭히 성공했다.
그리고 교회에는 갱생의 활기가 충만해 갈리아 사람들은
성 주교의 불굴의 노력에 의해 굳은 신앙을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리우스의 이단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하느님 자신께서도 얼마나 힐라리오의 거룩한 활동을 어여삐 보셨는지 항상 그에게 용기를 주시며 또한 그를 통해 기적을 행하신 적도 가끔 있었다.
그가 세례를 못 받고 죽은 어린아이를 소생시킨 일도 그 한 가지 예이다.
힐라리오는 366년 1월 13일 성인다운 훌륭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서방 교회의 성 아타나시오로 공경받는다.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삼위일체"이다.
또 그는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음률을 붙인 찬미가를 활용했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와 시편의 주해서를 만들었다.
교회에서는 다만 그를 성인으로 공경할 뿐 아니라 1851년에 교회 박사라는 극히 드문 칭호까지 붙여 주게 되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