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부활 성야: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19. 4. 20. 07:29

부활 성야: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조욱현 신부 강론

       

 

 

부활 성야: 다해: 종말론적 사건 부활

 

부활 복음: 루카 24,1-12: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다

이 거룩한 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풍성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복음 말씀들은 아들과 성령과 함께 아버지께서 가지신 영원한 구원계획이 실현된 역사적, 예언적, 지혜의 말씀이다. 여기서는 중요한 테마를 보도록 하겠다.

 

안식일이 지났다. 이는 하느님의 안식”(창세 2,4 참조), “일곱째 날이다. 이제 주간 첫 날8이 시작되었다. 안식일 다음날로 표현된 이 8일은 상징적 숫자이다. 7은 충만을 의미하며, 1은 충만의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다. 이 날은 계시와 役事의 마지막 날이며, 새로운 날이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첫째 날에 계시하시고 행하신다( 창세 1,1-3; 에제 1,1). 또한 이날은 종말론적인 날이며, “더 이상그 후에는 있지 않을 날이다. 영원히.

 

주님께 유일하게 충실했던 여인들이 등장한다. 남자들, 특전을 받은 사람들, 선택되고 축복 받은 제자들그 때, 그분을 버리고, 모두 도망쳐 버렸다고 마르 14,50은 상징적 문헌을 보고하고 있다. 여인들은 이 순간부터 공동체와 관련된 의미에서 항상 주님 부활의 표징에 대한 受託者들이 된다.

 

부활 복음은 오늘 이 밤 그리고 항상 무엇보다도 먼저 충실한 여인들을 돌아보고 그리고 남자들을 돌아보게 된다. 사도들이 세상에 대해 홀로 전적인 증거자들이 되더라도 말이다(사도 1,1-4.21; 10,41). 그 기능에 있어서는 같다.

 

묵은 옛 어두움은 여명 앞에 사라져 가고, 약속된 우리의 정의의 태양”(말라 4,2:불가타), “빛나는 아침의 샛별(묵시 22,16) 떠오른다. 주검에 발라 시체가 천천히 썩도록 하는 묵은 향유가 준비되었으나,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여인들은 무덤을 보고”, “향유를 바르려가고 있다. 그러나 돌은 이미 치워졌고, 무덤은 비었으며, 시체는 거기에 없었다. 여기서 여인들은 위대한 神現을 체험한다. 천사 혹은 부활의 천사들을 만나게 된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말한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5)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는 수없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는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즉 우리의 삶속에 구체적으로 살아계신 분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과거의 한 인물로, 성경에 나오는 분으로 묶어두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고, 그 부활은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얻으신 영광된 부활을 우리가 잘 알아듣고 우리의 삶 전체가 부활하신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인간 존재가 완전히 변모하는 것이다. 부활은 승리의 신비이며, 죽음과 모든 부패의 힘에 대한 완전한 승리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살아나다.’ ‘되살아나다.’라는 말의 의미이다. 이를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했을 때, 사도들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하여간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류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계시요, 인류를 위한 가장 큰 역사라고 할지라도, 이 부활사건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활하신 주 예수의 모습은 바로 영광스럽게 될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며, 그 부활의 신비는 우리 안에서 드러나야 하며, 선포되어야 하는 신비이다. 영광의 주님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큰 대가가 지불되었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새로운 삶이 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삶은 죄와 죽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완전히 참여하는 삶이다. 그 삶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일치한 사랑으로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가 되셨다. 우리도 그분과 같이 하느님의 뜻에 충실함으로써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며 실천함으로써 더욱 완전한 삶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삶을 받아들여 살아야 한다.

 

우리가 전할 부활의 신비도 우리 자신이 지고 가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활 메시지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5) 이 미사 중에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부활의 신비를 힘차게 선포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