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금요말씀 (불멸의 성녀, 체칠리아)

수성구 2013. 11. 22. 02:32

금요말씀 (불멸의 성녀, 체칠리아)

 
    <불멸의 성녀, 체칠리아>
 
    로마 시와 로마 근교는 거의 모든 곳이 유적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상뿐 아니라 지하 여기저기서도 다양한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기에 지하를 개발하기가 어렵습니다. 로마에 가서 서울지하철처럼 쾌적한 지하철을 기대하면 큰 실망입니다. 아주 소란스럽고 노선도 짧고 노후화된 지하철에 깜짝 놀랍니다. 로마 근처 지하에서 현재까지 약 60여개의 카타콤바가 발견되었는데, 카타콤바란 초세기 교회 공동체의 지하공동묘지를 지칭합니다. 그중 순례객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카타콤바가 산갈리스토 카타콤바입니다. 순교자이자 교황이었던 성 갈리스토(217~222)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카타콤바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큽니다. 현재 지하 5층까지만 개발되어 있는데, 잠깐 한 눈 팔다가는 길 잃어버릴 정도로 길고 복잡한 미로로 가득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산 갈리스토 카타콤바의 관리를 저희 살레시오회에 위탁하셔서 현재 살레시오 회원들이 거주하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산 갈리스토 카타콤바에 가시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체칠리아 성녀의 조각상이 있는 장소입니다. 한때 산 갈리스토 카타콤바에 안장되어 있던 체칠리아 성녀의 시신이 다른 곳으로 이장되고 난 다음 이 조각상으로 대치한 것입니다. 그녀의 무덤은 지금까지 딱 두 번 공개가 되었는데 500년이 지난 810년, 그리고 1599년. 이장을 위해 그녀의 무덤이 공개되었을 때 성녀의 시신은 순교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고, 이에 감동 받은 스폰드라도 추기경은 스물 셋의 젊은 작가 스테파노 마데르노에게 이 모습 그대로를 조각할 것을 요청하여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조각상이 남게 된 것입니다. 성녀는 얼굴을 땅에 묻고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옆으로 누워 있는데 마치 잠을 자듯이 편안한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면 성녀의 목에 칼자국이 보입니다. 참수 당할 당시 목에 칼을 세 번 맞고도 목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두 손을 보면 왼손은 세 손가락을 펴고 있고, 오른손은 검지 하나만 펴고 있는데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임종 마지막 순간까지 증거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무척이나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성녀가 체칠리아 성녀지만 솔직히 그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합니다. 오직 구전으로 내려온 전설들을 통해 그녀의 삶과 신앙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체칠리아는 로마 귀족 가문 출신의 총명하고 신앙심 깊은 딸이었답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기 위해 동정으로 살고자 마음먹었지만 부모는 발레리아누스란 전도양양한 청년과 혼사를 밀어붙입니다. 하느님의 영과 지혜로 충만했던 체칠리아였기에 자신의 계획을 남편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설득에 성공한 체칠리아는 비록 결혼한 몸이었지만 자신이 꿈꾸어오던 봉헌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 한 가지, 체칠리아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교도였던 남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킵니다. 시댁 식구들도 차례로 개종시킵니다. 남편 발레리아누스에게 얼마나 신앙교육과 교리교육을 철저히 시켰으면 남편은 체칠리아에 앞서 순교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 체칠리아 역시 체포당하여 법정에 소환됩니다. 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갖은 위협과 감언이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겠노라고 외칩니다. 구전에 따르면 체칠리아는 언제나 성경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녀는 하루 중 기도를 드리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개인적인 종신서원도 발했답니다. 부모가 강제로 밀어붙인 결혼식 날 체칠리아는 아름다운 금실로 장식된 예복을 입었지만 속에는 거친 삼베옷을 입었답니다. 체칠리아의 깊은 신앙에 감화를 받은 남편 발레리아노는 자신은 물론 동생까지도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남편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순교자들에게는 무덤을 제공하였습니다. 결국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참수당하여 순교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그 가녀린 목에 세 번씩이나 칼을 맞고도 3일 동안 목숨이 붙어있었던 체칠리아는 임종 직전 우르바노 주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당신이 제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느님께 3일을 기도했습니다. 제 집이 있는 자리에 교회를 세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