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축일:10월18일 성 루가 복음사가

수성구 2013. 10. 15. 17:51

축일:10월18일 성 루가 복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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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uke the Evangelist-GHIRLANDAIO, Domenico

1486-90.Fresco.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축일:10월18일

성 루가 복음사가

St.LUKE the Apostle

San Luca Evangelista

St. Lucas, Evang

at Antioch - in Greece

Name Meaning:bringer of light (= luke)

 

 

루가는 ’사랑하는 의사’(골로 4:14)요 바울로의 ’동료’(필레 1:24)로서 바울로의 죽음 직전 함께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2디모 4:11)이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셋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이다.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이며(골로 4:11.14 참조) 자신이 저술한 내용을 목격하지 않았으므로(루가 1:2) 일흔 두 제자의 하나도 아니고(루가 10:1)

엠마오로 가는 길에 글레오파와 동행한 자도(루가 24:18) 아니다.

토로아스에서 처음으로 바울로를 만났고(사도 16:10) 수년 뒤 필립비에서 다시 합류했으며(사도 20:5) 바울로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고 (사도 21:1-18)

체사레아와 팔레스티나와 로마에서 구금된 바울로와 함께 머물렀다(사도 27:1-28:16).

 

전승에 의하면, 루가는 미혼이었고 84세를 일기로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이집트)에서 별세했는데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는 대개 저술가 또는 소(牛)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의 상징(에제 10:14, 묵시 4:7)으로 표현한 것은 루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 때문일 것이다.

*가톨릭대사전에서.

 

 

 

루가는 신약 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제3복음과 사도행전을 저술한 사람이다.

그는 이 두 책에서 그리스도의 생활과 교회의 생활을 나란히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복음 사가 중에서 유일한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안티오키아 출신이며 바오로는 그를 "우리의 사랑하는 의사"(골로 4,11)라고 불렀다.

그의 복음은 아마 서기 70년과 85년 사이에 씌어졌을 것이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의 두 번째 전교 여행 중에 나타나는데 바오로가 세 번째 전교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몇 해 동안 필립비에 머물다가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바오로가 체사레아에서 수감됐을 때 그의 곁에 있었다.

이 2년 동안 루가는 예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고 예수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로마로 향하는 바오로의 위험한 여행에 동반했으며 로마에서 바오로의 충실한 동료가 되었다.

"루가만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2디모 4,11)라고 바울로는 기록했다.

루가는「사도행전에서 교회의 초기부터 바울로가 로마에 처음으로 체류할 때까지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주었다.

 

 

이방인이었던 루가는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글을 썼다.

그는 그리스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도한 것이다.

루가 복음을 보면 루가가 고전적인 그리스 문체에 매우 뛰어났으며 유대의 원전에 대한 지식도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가의 성격은 그의 복음에서 강조한 것으로 가장 잘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여러 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자비의 복음 : 루가는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연민과 인내심 그리고 고통에 대하여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폭 넓게 마음을 열고 사마리아인, 나병 환자,

세리, 군인, 드러난 죄인들, 무식한 목동들, 가난한 사람들 모두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신다.

루가만이 죄 많은 여인의 비유, 잃어버린 양과 은전의 비유, 방탕한 아들의 비유, 우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둘째, 보편적 구원의 복음 : 예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며 또한 아담의 후손으로 이방인들도 역시 그의 친구들이다.

 

셋째,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 : "미소한 사람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즈가리야와 엘리사벳,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 시므온과 나이 많은 과부 안나가 있다.

그는 또한 오늘날 우리가 "복음적 청빈"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둔다.

 

넷째, 절대적 재생의 복음 : 루가는 그리스도에게 완전한 헌신을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다섯째, 기도와 성령의 복음 : 루가는 예수님이 선교의 중요한 단계에 앞서서 언제나 기도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성령은 교회에 마지막 완성된 모습을 가져오고 있다.

 

여섯째, 기쁨의 복음 : 루가는 초대 교회에 충만해 있던 구원의 기쁨을 생생하게 그리는 데 성공했다.

 

루가 복음의 마지막 :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다.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루가 24,50-53)

 

*성바오로수도회에서

 

 

 

[이콘]복음서 저자 루가(Lukas).북부러시아.16세기.46.5 x 33.5cm

 

안티오키아 (Antiochia)의 의사였던 루가는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 중 유일한 이단교도로서 후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희랍 정교회에서는 10월 31일(10월 18일)에 세번째로 복음서를 저술한 또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쓴 루가를 기념한다.

그는 그리스에서 사망하였는데 장수(長壽)하였다.

일찌기 사람들은 옛 성모상들이 그의 손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믿었으므로 화가들의 파트론이 되었다.

루가는 그리스도의 12제자들에 속하는 성자가 아니라 사도의 제자로서, 사도 바울이 그의 스승으로 간주된다.

 

성 루가를 묘사한 이 성화는 구도가 짜임새가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루가가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데, 그의 앞에는 독서상이 놓여 있고 그의 무릎 위에 복음서를 들고 있으며 그의 뒤에는 한 건물이 보인다.

그는 발을 발판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짙은 청록색의 옷 위에 빛나는 빨간색의 겉옷을 걸치고 있다.

그림을 지배하는 의복의 따뜻한 짙은 청록색과 빨간색은 밝은 색과의 대조를 더욱 뚜렷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유럽 聖畵(ICON)集에서

 

 

St Luke Displaying a Painting of the Virgin-GUERCINO

1652-53.Oil on canvas.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성 루가하면 우리는 즉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성인 화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그림을 잘 그렸는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옛 전설에 맨 처음 성모상을 그린 분이라는 것이다.

성 루가는 본래 의사인데 성서를 저술한 이후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고향은 학교 교육의 중심지인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시였다.

가톨릭이 전파되기 시작한 40년경에 이미 그시에는 가톨릭 신자 단체가 조직되었고, 루가는 그 중의 열심한 한 청년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즐겼으며 그리스어에도 능숙했고 학문을 넓히기위해 그리스와 이집트에 여행도 했다.

그때 안티오키아 시에는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 사도들이 전교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생활을 보고 존경하게 되었고 특별히 바오로 사도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다.

 

바오로의 제2차 전도 여행에 수행한 루가는 그와 고난을 같이 겪으며 힘껏 도왔고, 바오로가 마케도니아에서 예루살렘에 귀환했을 때에도

그 곳에 바오로 사도가 제3차 전도 여행에서 트로아스에 도착되었을 때, 루가는 급히 그곳으로가서 오래간만에 서로 상봉했으며, 그 들은 서로 갈라지지 않고,

바오로가 유다인에게 잡혀 가이사리아 감옥에 갇혔을 때, 로마에 호송되었을 때, 형장에 끌려나갈 때에도 항상 그 뒤를 따랐다.

 

그 당시 벌써 주 에수께 대한 그릇된 전설이며 교회에 대한 낭설이 유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어에 능통한 루가는 바오로 사도의 권유도 있고 하여 주님의 올바를 모습을 전하는 성서 저술에 착수,

친히 성모 마리아를 찾아 뵈옵고 주님의 탄생 전후를 파악하여 이에 중점을 두고 상세한 저술을 했다.

 

또 본인이 의사이므로 병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어 주님께서 그들을 대하신 자비심과 그 기적들을 많이 수록했다.

 

 

한편 루가는 주님의 사제직에 관해서도 각별히 유의하여 집필했으므로,

각 성서 저자의 상징인 마태오는 천사, 마르코는 사자, 요한은 독수리며,

루가는 희생을 의미하는 소가 된 것이다.

 

 

 

Sts Mark, Barbara and Luke-LOCHNER, Stefan

1445-50.Panel, 100,5 x 58 cm.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루가의 저서로서는 사도행전이 있다.

이는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가톨릭 초창기에 있어서의 교회사(敎會史)로서,

전 28장 가운데 먼저 12장은 베드로 사도에 관한 사적이 수록되어 있고, 다음은 바오로 사도에 관한 사적인데,

여기에 한 가지 관심을 둘 것은 바오로 사도와 친밀히 지낸 자신에 관한 말은 한 구절도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이 겸덕을 엿볼 수 있다.

 

루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데오필로라는 한 로마인을 기록했는데,

데오필로는 바오로나 루가에게서 세례를 받은 열심한 신자로, 그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고자 했다.

 

루가는 초대 신자들 간에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성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 중에 "우리는 디도에게 형제 한 사람을 딸려 보냅니다.

그 사람은 모든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2고린 8, 18)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바로 루가를 두고 한 말이다.

 

바오로 사도가 67년에 로마에서 장렬한 순교를 한 후, 루가는 그리스로 가서 아카이아 지방에 전교하고 다음은 소아시아 지방에 가서 주님을 위해 갖은 고초를 다 겪고

마침내 80 고령으로 귀천하였으며 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 반열에 넣고, 또 의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은 그를 주보로 모시게 되었다.

 

 

 

Evangelist Luke-DONATELLO.1428-43.Polychrome stucco,

diameter: 215 cm,Old Sacristy, 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성서의 인물] 사랑받는 제자 루가

허영업 신부 (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평화신문.호수 : 666 호. 발행일 : 2002-3-10

 

루가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머리 속으로 지나가는 젊은 시절, 수없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일생을 한 순간에 바꾸었던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루가는 자신의 일생을 결코 사도 바오로의 삶과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섭리하고 준비하신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주 우연히 사도 바오로의 주치의 노릇을 하면서 그의 전도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사실 사도 바오로는 고질병을 갖고 있었고 전도 중에도 자주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으로 신음하였다.

 

그때마다 루가는 사도 바오로의 곁에서 극진하게 간호하곤 했었다. 루가는 유다인이 아니라 안티오키아 출신의 시리아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였다.그런데 사도 바오로의 인간적 인품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사도 바오로를 만난 후 진정한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에 루가는 사도 바오로의 충실한 동반자이며 제자가 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따라 다니려고 노력했다.

 

루가는 모름지기 신의와 충성을 중요시하는 충실한 사람이었다.

사도 바오로를 같이 따랐던 사람들이 가끔씩 세상의 유혹과 어려움에 굴복하여 바오로를 떠났어도 루가는 항상 사도 바오로의 곁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전해 들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소식을 기록하기로 작정했다.

루가는 이미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기록했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그 분의 생애를 보다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면밀히 조사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직업 의식이 몸에 배 있었다.

 

또한 그는 특히 뛰어난 필체와 문학가로서의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전해 들은 구전 지식과 전승들을 모아놓고 붓을 들어 편지 형식으로 복음서의 첫머리를 써 내려갔다.

 

“존경하는 테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써서 각하에게 써 보내드리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바가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루가 1,1~4)

 

루가 복음의 첫 대목만 보아도 저자가 얼마나 지혜롭고 명석한 지식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글의 재료와 편집의 방법과 목적을 분명히 밝히면서 논리 정연하지만 들뜨고 감격스런 마음으로 마치 신앙을 고백하듯이 복음서의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루가는 자신 안의 어떤 큰 힘에 이끌려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자주 체험하게 되었다.

루가는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이란 사실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은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영적 체험을 한껏 할 수가 있었다.

 

물론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도 바오로와 동고동락하면서 그를 통해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마치 살아있는 분으로 느끼곤 했다.

그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

루가는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기도 했지만 한편 죄악으로 곤란함에 빠져있는 영혼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자 했다.

 

특히 이방인 지역에는 죄악에 빠져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가는 이런 상황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을 막고자 마음 먹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계 있게 기록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루가는 지식의 사람이요, 활동가인 동시에 덕이 높은 신사로 존경받았고 사도 바오로가 “사랑을 받는 의원 루가”라고 칭송해 주었다.

그 모든 것이 루가는 자신 안에서 늘 활동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루가는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교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으로 모든 이에게 겸손되이 봉사하였으니 사랑을 받아 마땅한 인격자였다.

루가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필체로 살아있는 주님을 전해주고 있다.

 

 

St Luke (detail)CIMABUE

1280-83.Fresco, 450 x 900 cm.Upp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복음서에 대한 강론」에서

(Hom. 17,1-3: PL 76,1139)

 

주님은 당신을 전파하는 이들을 뒤따르십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 주 구세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말씀으로써 또 어떤 때에는 행위로써 우리를 권고해 주십니다.

주님의 행위는 우리에게 있어 그 자체로 계명입니다. 주님이 무언중에 하시는 행위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사도들을 둘씩 짝지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십니다.

사랑의 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둘씩 짝지워 제자들을 복음 전파하러 파견하시는 것은 말 없이 행위로써 우리에게 다음의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복음전파의 직분을 결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에 당신을 앞서 제자들을 파견하셨다.”고 복음서가 적절히 말해 줍니다.

복음 전파가 앞장서 나아가고 주님은 당신의 복음 전파자들을 뒤따르십니다.

즉 복음 전파의 말씀들이 앞장서 나아가고 그것을 통해서 영혼이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만 주님은 우리 영혼에 오시어 거처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는 복음 전파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권고해 줍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그리고 시편은 말 해 줍니다. “서녘으로부터 오르시는 주님의 길을 닦아라.”

실상 주님은 당신의 수난으로 인해 넘어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의 영광을 더 찬란히 보여 주시어 서녘으로부터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서녘으로부터 오르셨습니다.” 즉 죽임을 당하신 후 부활하심으로써 그 죽음을 서녘에 잠겨 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영혼에게 주님의 영광을 전파할 때 서녘으로부터 오르시는 분의 길을 닦아 놓고

주님이 친히 오시어 당신 사랑의 현존으로 여러분을 비추어 주시게 합니다.

 

파견하시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로 합시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들이 적습니다. 나는 이 말을 할 때 서글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기쁜 소식을 듣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보십시오. 세상은 사제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밀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찾아내기란 너무도 힙듭니다.

우리가 사제의 직분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직분을 완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말씀을 재삼 숙고하십시오.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우리가 여러분의 필요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여러분을 권고해 주는 일에 잠시도 중단치 않도록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설교자의 직분을 취한 다음 우리의 침묵이 의로우신 재판관 앞에서 우리를 고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산타마리아마죠레에는 루가복음사가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오는 성모자 이콘이 있었다.
이 성모님는 "로마 백성의 구원"(Salus Populi Romani)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성모 성화는 복음사가 루가가 그렸다고 하며, 
로마시민들은 전통적으로 이 성화에 극진한 공경을 표해 왔습니다. 
몇몇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서기 590년에 로마에 흑사병이 창궐할 적에 이 역병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대그레고리오 교황(축일:9월3일)이 행렬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모시고 간 성화상이 이 성모 성화였다고 합니다. 
(루가복믐사가는 성모마리아를 공경한 첫 사람이라고 할 수있다.
성모님에 대한 내용이 신약성서 전체에서 보다도 
루가의 두 작품-루가복음서,사도행전 안에서 더 많이 기술하고 있다) 
루가복음사가(축일:10월18일)의 상본에는 성모자를 그리고 있는 루가복음사가의 모습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