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사는 이야기

우리 아버지는 엄마 얼굴도 모르신다|─

수성구 2014. 10. 4. 19:37

 

 
 




우리 아버지는 엄마 얼굴도 모르신다



우리 아버지는 엄마 얼굴을 모르신다.
당신을 낳아 주신 엄마 얼굴을 모르신다.
아버지는 새엄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새엄마에게 매일매일 매를 맞았다.
이유도 없이 피가 터지도록 매를 맞았다.
툭하면 한겨울 눈밭 위로 맨발로 쫓겨났다.

아홉 살 어린아이가 얼마나 추웠을까......
차가운 눈밭 위로 맨발로 서서
빠개질 듯 시린 발을 어루만지며,
얼마나 엄마를 생각했을까......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을까......

새벽녘, 동이 트기 전,
아버지는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왔다.
죽도록 일하며 돈을 벌었고,
아버지는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엄마와 결혼한 후, 아버지는 산동네에서
조그만 고물상을 시작했다.
고물상 이름은 '행복한 고물상'이었다.
고물상 마당에 앉아, 아버지는 선풍기를 고쳤다.
낡은 선풍기에 묻어 있는 때를 벗겨 내고 또 벗겨 냈다.
아버지는 그 선풍기를 돌산 밑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사는 가엾은 할머니에게 갖다 드렸다.
돈도 받지 않고 드렸다.
엄마 같은 할머니들에게 작은 사랑을 나눠 드리며
아버지는, 엄마 얼굴을 모르는 아픔을 치유하셨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고물상 앞마당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얼룩지고 때묻은 장난감들을 아버지는 온종일 비누로 닦았다.
단것이 먹고 싶어서
길에 떨어져 있는 빵 봉지에 묻어 있는 하얀 크림을 빨아먹는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12월 내내 장난감을 선물했다.
비록 새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며,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셨다.

어느 날 밤, 아버지 자전거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고물상 앞마당에 세워 놓은 자전거를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었다.
비록 고물이었지만, 자전거는 아버지의 발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전거 위에 솜사탕을 꽂아 놓고 팔고 있었다.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아도 아버지 자전거가 분명했다.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데리고 학교 앞으로 왔다.
추운 겨울, 자전거 옆에 쪼그려 앉아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김치 하나로
찬밥을 먹고 있었다.

아줌마 등 뒤에 업혀 있는 아가 얼굴이 겨울 바람에 새파랬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전거가 아니라고 우기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 맺혀 있었다.
혹독하게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절망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사랑의 우물가에서 키우셨다.
글을 쓰며, 아버지 생각에 나는 여러 번 눈물 흘렸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내가 쓴 책을 읽어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눈물을 감추시려고
고개를 내내 숙이고 계셨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버지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신다.
술을 드시기 전에는
자식들에게 살가운 미소 한 번 주지 못하신다.
아버지는 늘 침묵으로 말하신다.
사랑만이...... 사람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꽃밭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는 거라고......

『곰보빵』
(이철환 지음 |꽃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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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F.R.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