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감동의 스토리

성악가 조수미의 애국심

수성구 2022. 9. 19. 07:11

성악가 조수미의 애국심

조수미(曺秀美)ㅡ
세계 Top Class 인 Opera 가수 조수미(曺秀美) 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조수경이였는데 발음이
부자연스러워 조수미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이며 서울 선화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원래 피아노 신동이었지만 주위에서 노래를 시켜야 한다고
적극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미 어릴적 부터 천재성이 보여 그런 이유로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재학중 같은 학교 경영학과의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 후

그녀는 연애를 시작 하면서 조수미의 모든것이 달라졌고

예전의 조수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교수와 부모님은 상의 끝에 조수미의 장래를 생각해서
서울대를 중퇴시키고 세계에서 가장오래되고 전통있는 이태리
로마에 있는 명문대학인 산타체칠리아 (Santa cecilia Conservatory of Music)
음악원에 강제 유학을 보내게 됩니다.

그때부터 조수미는 본격적인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고 남자친구로 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후 이로 인해 조수미는 그때부터
지독하게 다짐하면서 음악원에서 5년 과정을 2년만에 졸업을 하는
놀라운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여 교수 전원이 감탄을 했다고 했습니다.

세계무대를 활보하며 결혼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1인자가 되기위한 이런 열정이 오늘의 조수미를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리며 활동하는 조수미씨가 대단하고
자랑스러우며 내일 모래면 회갑인데 아직도 미혼이라는게 안타깝습니다.

지금부터 30년전인 스물 여덟 살 때 이미 세계의 정상에 올랐던
조수미의 수많은 일화중 하나를 지금 소개할려고 합니다.

당시 영국의 가장 큰 음반 회사에서 조수미 씨에게
레코드 하나를 내주겠다고 제의(提議)를 했습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성악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반회사에서

자신의 레코드를 내준다며 제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환영한다면서 좋아서 수락을 했겠지만

조수미씨의 태도는 보통 성악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조수미씨는 레코드 회사에 ''조건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레코드에 ‘보리밭’을 넣어 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레코드 회사 사장을 50년이나 근무했지만
'보리밭'이라는 노래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조수미 선생! 그 '보리밭'이라는
노래가 무슨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Aria)입니까?”
“그것은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가 아니라, 내 조국 대한민국의
가곡(歌曲) 입니다.”

조수미씨의 제의를 듣고난 레코스사 사장은,
“이것은 서울에서 파는 레코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도시인
파리에서 팔고,
런던에서 팔고,
로마에서 팔고,
빈에서도 팔고,
뉴욕에서도 팔리는 세계적인 레코드 입니다.

거기에다 세계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보리밭’을 넣어 가지고
그 레코드가 성공은 커녕 팔리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만두시지요.” 조수미 씨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당황한 레코드회사 사장은 “앉으세요,
꼭 원하신다면 제의하신대로 '보리밭'을 넣도록 합시다
조수미선생 이제 만족 하시겠지요?”
조수미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십니까?”

“레코드 재킷에는 '보리밭'이라는
제목을 대한민국 글자인 한글로 찍어 주셔야합니다.”

레코드 회사 사장은 비서실에 전화를 하는 등
한참 수선을 피우더니 지금 영국에는 한글 활자가 없다는 이유로
조수미의 제안에 난색을 표합니다.

조수미 씨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장님! British Airway(영국 항공사)에 가면 한글 활자가 있다''고
맞섰습니다.

그래서 조수미씨의 첫 번째 레코드에
'보리밭'이 들어갔고, '보리밭'이 영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이태리어도 아닌 당당한 한글 <''보리밭''>으로 찍혀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애국 정신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이런 내용의 부탁은 일개국의 대통령이 레코드사를
방문해서 부탁해도 쉽게 이루어 질일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냘픈 한 여성 가수가 자기 조국(祖國)이라는 것에 대해
애착과 열정과 깊은 애국심을 갖고 더 나아가 큰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해낸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적인 행보가 아닐수 없습니다.

조수미(曺秀美)씨는

88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전야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에
이태리에서, 파리에서, 런던에서 그 바쁜 와중에도
모든것을 제끼고 한숨에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조수미씨 그녀는 조국에서 부르면 어떤 선약(先約)도 뒤로 미루고
언제든지 달려옵니다.

이런 인간성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라 하겠습니다.

글만 가르치는 것이 능사이고 소중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자라나는 인격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인격을 만들어 주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뭘.... 아니 올씨다
괴테가 유명한 희곡인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나이 80 넘어서 였고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Dome)을
70세가 넘어 완성했고 헨델과 하이든 같은
유명 작곡가들도 고희(古喜)의 나이를 넘겨 불후의 명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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