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멋지게 지려다가
9월 첫째주 연중 제23주일
자기 소유를 다 바라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14.25-33)
십자가 멋지게 지려다가
(이재정 신부 의정부교구 별내성당 주임)
강론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잘 써보고 싶은 마음때문인지 더더욱 어려웠다.
내가 묵상한 내용은 십자가와 소유라는 주제였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야 할까?
하루가 끝날 때마다 오늘은 꼭 잘 써봐야지 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밤잠을 설쳤다.
강론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십자가였고.
강론을 잘 써 보고 싶은 마음은 내 욕심이었다.
이렇게 짊어져야 할 십자가와 십자가를 잘 지고 싶은 욕심이
내 안에 머물고 있으니 나의하루는 불안과 초조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좋은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려고 한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것 보다 어떻게 십자가를 더 멋지게 잘 지고 갈 것인지에
더 많이 마음을 두게 된다. 더 마음을 두는 것. 이것이 바로 욕심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충분한데 거기에 욕심을 붙이니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십자가를 피하게 되고.
왜 나에게 이런 십자가를 주시냐고 하느님께 원망을 털어놓는다.
내 인생에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하나만 있다면 좋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어는 정도 갔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새로운 십자가가 나타난다.
예수는 삶과 신앙 속에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계속해서 내어 주신다.
그리곤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이 십자가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지게 되어 있다.
강론을 쓰는 것이 십자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씨름하다가 결국 다 포기하고 나니.
더 수월하게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내가 욕심을 버리는 순간.
십자가는 나에게 더이상 삶의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 신앙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더 잘 짊어지고. 더 이쁘게 짊어지고. 더 행복하게 짊어져야지 하는 마음이 욕심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가 되려면. 다 버리고 따라오라고 하셨나 보다.
결국 십자가를 지는 것이 다 버리는 것이고.
다 버려야 십자가를 질 수 있기에...
삶과 신앙 속에서 예수님이 선택하라고 내어주는 십자가는
계속해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절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내 욕심이 또 다른 십자가가 되므로....
'백합 > 주님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체를 모시는 이들에게 힘을 주신다 (0) | 2022.09.12 |
---|---|
누군지 알았더라면 (0) | 2022.09.11 |
천당은 어떤 곳인가요? (0) | 2022.09.10 |
생생한 믿음이 있는 사람 (0) | 2022.09.09 |
은혜를 기억하라 (0) | 2022.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