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가 받은 재산은
9월 둘째주 연중제24주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15.1-32)
탕자가 받은 재산은
(윤행도 신부. 마산교구 경화동성당 주임)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아버지의 마음.
작은아들의 입장과 큰 아들의 태도 등등 묵상할 거리가 수없이 많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작은아들에게 나누어 준 재산에 대해 묵상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는 사랑 그 자체이시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 사랑 말고 더 있을까?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나누어 받은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먼 고장으로 가서 그 사랑이 자신의 것인 양
방종한 생활을 하며 마구 써버렸다.
사랑은 점점 메말라갔으며 머지않아 바닥을 보이고 말았고.
곤궁해진 작은 아들은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 매달려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탕진해버린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의 사랑으로 채워보려 했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죽을 고생을 한 후에야 그는 아버지의 사랑은 오직 아버지로 부터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못난 아들을 아버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여
자기 스스로 박차고 나간 아들의 지위를 되돌려준다.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그렸다는 그림
돌아온 탕자 속 아버지의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
자비로우신 아버지께서는 돌아온 작은 아들.
홰개한 죄인의 죄를 보지 않으심을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 아닐까?
아버지의 집에서 늘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는 큰아들은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이 언제나 자신의 것임을 모르고 있다.
매일 매 순간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있듯이..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와 멀어졌던 분들이 돌아오고 있다.
1년넘게 쉬었다가 고백하며 미안해한다.
그동안 가족 간. 직장 동료간. 이웃 간에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있었다고도 한다.
나는 그것은 사랑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며
그렇기에 우리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하느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라고 말씀드린다.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든 시기.
힘들고 지쳐 쓰러질 때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더더욱 필요한다.
사랑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즉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
아버지의 집에는 그 많은 품팔이꾼에게조차 나눠줄 사랑이 차고 넘치기에
나는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
아버지가 오메불망 기다리는 아들이기에.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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