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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성 요한 에우데스 사제

수성구 2022. 8. 19. 04:39

8월 19일 성 요한 에우데스 사제

축일: 8월 19일

성 요한 에우데스 사제

St. JOHN EUDES St. Joannes Eudes, C  
San Giovanni Eudes Sacerdote
(Ri, Francia, 1601 - Caen, 19 agosto 1680)
Born :14 November 1601 at Ri, Normandy, France
Died :19 August 1680 at Caen, Normandy, France
Beatified:25 April 1909
Canonized :1925
Giovanni = il Signore è benefico, dono del Signore, dall'ebraico

 

 

1610년 프랑스의 세에즈 교구에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후 본당들을 순회하며 여러 해 동안 설교 했다.

신학교에서 사제들을 교육시키는 남자 수도회와 윤락 여성들을 구제하는 착한 목자회를 창립했다.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에 대한 신심을 꾸준히 증진시켰다.

1680년 세상을 떠났다.

 

 

 

 

Society of Jesus and Mary(Eudists)

 

 

예수 성심회의 창설자이자 학자였던 사제 요한에우데스는

14세 되던 해에 예수회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부모의 소망과는 달리 설교회에 입회하여 사제로 활동하였습니다.

 

한때 그는 노르망디에 만연된 전염병 희생자를 돌보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향후 10여년 설교가요,고해사제

그리고 얀세니즘의 강력한 반대자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성인은 1643년에 예수 마리아회를 세워 신학교의 정신적 방향을 바로잡고

일반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성인이 오늘날 크게 알려진 계기는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따 알라콕과 함께 예수 성심 공경 신심을 널리 전하고

성모 신심을 보편화 하는데 기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Sacred Heart of Jesus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대축일이며 성체 성혈 대축일 주간의 금요일에 지켜집니다.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와서 상당히 일반화되어 성 요한 에우데스는

예수 성심 신심과 그 축일 제정의 신학적이고 전례적인 기초를 확립하기에 이르렸습니다.

 

또한 1673년 12월 27일,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성녀 마르가리따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예수님께서 발현하시어

성심 공경과 성심 축일의 제정을 요청하시게 되어,성심께 대한 신심이 공적으로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Immaculate Heart of Mary

순결하고 티없으신 성모 성심께 대한 신심은

17세기 성 요한 에우데스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성모 성심을 예수 성심과 긴밀히 연결시켰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교회는 이 신심에 대해 오랫동안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성모 성심 공경은 19세기에 따로 날을 잡아 기념하기 전까지는

예수 성심 신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1805년, 비오 7세는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낼 것을 허용하였고,

1855년에는 에우데스에 의해 만들어진 경문을 바탕으로 한 고유미사가 행해졌으며

1857년 고유한 성무일도 경문도 만들어졌습니다.

 

성모 성심께 대한 신심은 파티마에서의 성모 발현 후 더욱 널리 전파되어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파티마 성모 발현 25주년때

세계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하였고,

전교회가 성모 성심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1969년 이래로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을 티없이 깨끗하는 성모성심을 기념키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신성사성은 1996년 1월 1일자 교령으로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내 오던 이 축일을 ’의무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다.

 

성모 성심 공경은 예수 성심 공경과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나

인간은 배은하기 때문에 모욕된 사랑에 대하여 보속하는 사랑이 그 목적이지만,

성모 성심은 하느님과 예수님께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그 목표인 것입니다.

(가톨릭홈과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실지를 거의 모른다.

북프랑스 농가에서 태어난 요한은 7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그는 독실한 사제 선교사였다.

두 개의 종교 단체 설립자이며, 성모 성심과 예수 성심께 헌신한 가장 위대한 선구자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해서 24세에 서품을 받았다.

1627년과 1631년 사이에 심한 흑사병이 만연하는 동안

그는 관할 교구내에서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흑사병이 유행하는 동안

들판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통 속에서 살았다.

요한은 32세에 교구 선교사가 되었다.

설교자이며, 고해 신부로서 그의 인기는 점점 높아 갔다.

그는 몇 주일에서부터 몇 달에 이르기까지 백여 개의 본당을 다니면서 설교했다.

사제의 정신적 향상에 관심을 가진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교에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수도원 총장과 주교, 심지어 리슐리외 추기경에게도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다.

그러나 바로 자기 원장이 찬성하지 않았다.

요한은 결국 기도하고 조언을 들은 후에 자신이 수도회에 떠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결정했다.

 

 

 

같은 해에 그는 에우디스트라고 하는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그 단체는 ’예수와 마리아의 회’로서 교구 신학교를 지도하며 성직자 육성에 헌신했다.

그 같은 그의 새로운 모험은 개별적으로 주교들의 인정을 받는 반면에,

특히 얀세니스트들과 그가 전에 있던 수도회의 몇몇 사람의 즉각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요한은 노르망디에 여러 신학교를 세웠으나 로마에 인가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부분적이기기는 하지만 그가 재치있게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요한은 본당 선교 활동을 하면서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매춘부들의 서글픈 상황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임시 거처는 마련하였으나 설비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부인들은 돌보던 마들렌 라미라는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성당이겠지요!

당신머리 속에 상상하면서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니까요.

그런 당신에게 진실로 원하는 것은 언제나 이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깨끗한 집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은 그의 마음 속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 결과 그는 애덕의 성모 마리아 수녀회라는 새로운 수도 단체를 설립했다.

그는 자기 저서의 중심 주제 때문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기도하다.

그것은 거룩함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생활의 모범이신 마리아에 관한 것이다.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께 대한 그의 헌신으로 비오 10세는

그를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 공경의 아버지로 선포하였다.

 

 

성덕은 하느님의 사랑에로 온전히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표현의 다양성은 하나의 진취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요구에 대한 관심이다.

요한의 경우에서는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이란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

본당의 모든 신자들, 성직을 준비하는 사람들, 매춘부들,

그리고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본받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우리의 소원,우리의 목적,우리의 중요한 임무는

그의 정신,그의 헌신,그의 애정,그의 욕망 그리고 그의 의향대로 살고 영향력을 미치며

스스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종교적 활동은 이 같은 목적에로 방향지어져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수행하라고 주신 의무이다."

(성 요한 에우데스, ’그리스도인에 있어 예수의 통치와 삶’)

 

 

 

 

성 요한 에우데스 사제의 (예수의 영광스러운 성심에서)

(Lib. 1,5: Opera omnia, 6,107,113-115)

 

구원과 참된 생명의 원천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참된 머리이시고

여러분은 그분의 지체라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스도는 여러분으로 볼 때 지체들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의 모든 것, 즉 그분의 정신, 마음, 육신, 영혼 그리고 그분의 모든 기능들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분을 섬기고 찬양하며 사랑하고 찬미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마치 여러분의 것인 양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볼 때 머리이신 그분의 지체들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여러분이 지닌 모든 기능들도 마치 당신의 것인 듯

그것들을 아버지를 섬기고 영화롭게 하는 데 열렬히 사용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여러분에게 속하는 것뿐만 아닙니다.

머리가 몸의 지체와 함께 살며 그들을 다스리는 것처럼 그분은 여러분 안에 계시고 생활하시며

또 여러분을 다스리기 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 안에서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정신이 여러분의 정신 안에, 당신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그리고 당신 영혼의 기능들이 여러분의 그 기능들 안에 있기를 원하시고,

또 "예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드러나도록 여러분은 자기 몸에 하느님의 영광을 지니십시오."라는

바울로의 말씀이 성취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하느님의 아드님께 속하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지체들이 머리에 결합되어 있듯 여러분은 그분 안에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닌 모든 것이 그 분께 접목되어 그분에게서 생명을 얻고 그분에 의해 다스려져야 합니다.

참된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신 그분 안에서가 아니라면 여러분에게 참된 생명은 없습니다.

그분을 떠난다면 죽음과 파멸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지향과 행위와 능력의 유일한 원리가 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해 살아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도 바울로의 다음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체들이 머리와 함께 하나이듯이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그분과 함께 하나의 정신, 하나의 영혼, 하나의 생명, 하나의 의지, 하나의 지향,

그리고 하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스도 친히 여러분의 정신, 마음, 사랑, 생명 그리고 모든 것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 위대성은 세례에서 기원하고, 견진과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다른 은총의 훌륭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튼튼하게 되며,

무엇보다 성체 성사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세속은 우리 교회의 성인들을 향해 사회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기생물,

혹은 무위도식하는 자들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이는 대단한 오해다.옛날의 은수자는 자신의 영혼 구원만을 가장 중히 여겨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덕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아 멸시와 금욕의 생활은 이기와 탐욕투성이인 세속에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는가?

또 그외의 성인들은 직접 자선 사업을 운영하거나

혹은 그런 사업에 적극 협력해 사회에 무수한 혜택을 베푼 일이 많았다.

성 요한 에우데스는 윤락여성들을 구원해 준 특이한 성인 중의 한 분이다.

 

그는 1601년 11월 14일 북 프랑스의 노르만디 주에 있는 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본직이 농업이었지만 의술(醫術)에도 약간 경험이 있었으므로

근방 주민들이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린 경우에는 곧잘 가서 치료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독실한 분이시며, 어려서부터 요한의 마음속에 하느님께 대한 깊은 관심을 심어 주었고

특히 하느님께서는 안 계신데 없이 곳곳에 다 계시다는 정신을 새겨 주는 데 노력했다.

그래서 어린 요한이지만 그 신앙에대한 열의는 보통 어른도 못 미칠 정도였으며,

그 당시의 어린이로서는 매우 드물게 일찍이 첫영성체를 했고

얼마 후에는 종신 동정 서원까지 발했다는 것이다.

 

그가 14세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카엔 시에 보내 예수회가 경영하는 중학교에 입학시켰다.

그의 부지런하고 성실함은 동료에게 비할 수 없었고, 학업은 우수했으며,

또한 그 학교에 조직되어 있는 마리아 공경회 회원들의 거울로서 칭찬을 받았다.

 

중학을 마친 그는 계속해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때부터 장래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주님의 의향을 알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와 고행의 생활을 했다.

마침내 사제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확신하고 그는 아버지에게 그 뜻을 밝히고 승낙을 청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요한을 위하여 어떤 부유한 집 딸과의 혼담까지 이야기 하고 있었으므로

이 말을 듣자 처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이해심이 많은 분이라 곧 그의 요구를 쾌히 승낙은 했지만,

수도 신부가 되느냐, 세속 신부가 되느냐에 대해는 쉽게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즉 아버지와 가족은 후자를 택하고 요한은 전자를 택했으나,

요한의 열심하 신심생활의 모습이며 변함없는 요청은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마침내 그 아버지는 수도원을 향하는 아들에게 모든 축복을 주었다.

 

이리하여 그는 성 필립보 네리가 창설한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고

24세에 서품되었으며 그가 갈망하던 사제로서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건강이 악화되어 충분히 일을 하기도 전에 휴양을 하게되어 파리 근교인 어떤 농장에 가게 되었다.

본래 부지런한 그의 성격은 무위 소일할 수가 없어 성서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가 성서를 손에 든 때는 반드시 이를 완전하게 정독했고,

묵상에 잠겼을 때는 마치 하느님과 함께 노는 듯한 인상을 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끔 했다고 한다.

"성서는 성체 다음으로 우리 신자들의 보물이다."

그의 입에서는 항상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는 동안 1627년 , 그의 고향에서는 악성 페스트가 창궐하여

많은 주민이 이에 감염되었으므로 간호에 이바지 할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요한은 즉시 원장에게 허락을 받고 몇 명의 동료 신부와 같이 그 지방에 가서

 병자를 간호하며 임종자에게는 병자 성사를 주는 등 눈코 뜰 사이 없이 맹활약을 했다.

그런데 자신의 휴양은 하루에 두세 시간뿐, 그것도 의자에 기대서 잠깐 졸다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자들과 더불어 행렬을 하며 그 지방을 성모께 봉헌하고

질병 종식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올렸던 바 차차 병마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재화로 인해 인심은 험악해지고 아울러 신심도 퇴폐한 감이 있었으므로,

요한은 구호책으로 우선 묵상회를 열기로 하고 1개월내지 3개월 간의 신심행사를 시도해 보았다.

그 성과는 대단했으며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묵상회를 열기를 실로 백 열 두번 이나 했다.

그리고 청중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그는 알아듣기 쉬운 종교서적을 저술해 일반에게 이를 읽도록 했다.

 

당시의 프랑스 교회는 얀세니오 이단 때문에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그 시급한 대책으로 신자들을 지도할 착한 사제들의 양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주교들을 재촉해 신학교를 창립하고서

그 회원들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도록 했다.

 

전에 베푼 묵상회 때 많은 윤락여성들이 회개를 했었다.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가기 쉬우므로 그 대책으로

우선 신심이 깊고 열심한 주부와 과부들에게 선도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 기초가 튼튼치 못해 아무래도 수녀들의 헌신적 활동이 필요함을 깨닫고

방문 수녀회를 초청해 그들을 일임한 후 그 회칙을 약간 수정해 이를 ’착한 목자회’라 개칭했다.

 

 

요한은 이런 사업 때문에 대단히 심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상식이 있는 사람까지 "동정 서원까지 발한 수녀들을, 아무리 회개는 했다 하지만

그런 추잡한 창녀들과 접촉시킨다는 것은 적당치 않은 일이다"하고 반대했다.

그러한 비난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항상 이러했다.

"참다운 사랑을 지닌 정덕은 결코 더러워지지 않은다.

이는 마치 더러운 곳을 비추는 태양의 광선이 더러워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의 공격은 오직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그로인해 그 수도회는 아무런 추문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불행한 여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는 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요한은 그 외에도 사도적 사업에 끊임없는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1680년에 병을 얻어, 그 해 8월 19일 잠자듯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이 79세였다.

그는 1909년 비오 10세 교황 때 시복되었고, 1925년 비오 11세 교황 때 시성되었다.

 

오늘날 그가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와 더불어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이어서 성모 성심 공경이 보편화 되게 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계획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능력을 받았으니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진실한 종이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나를 창조하셨으니

 

  나는 그분을 생각하고 사랑하며

  그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내 자신을 희생으로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오로지 내 생의 목적이 있고

  관심과 사랑의 유일한 목표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와 깨어 있는 시간이

  그 목표를 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나의 지상 선과 영혼의 완전한 안식을 찾을 곳이고

  내 마음과 또한 나의 참된 낙원이 있는 곳입니다.

 

  나는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사랑하렵니다.

  나는 또한 하느님께서 바로

  내 존재와 생명의 주인이심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영광과

  그분의 거룩한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내 생명을 다할지 생각하렵니다.

 

  하느님은

  오직 우리의 선함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해야 만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성요한 에우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