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7월 27일 성 판텔레온 순교자

수성구 2022. 7. 27. 02:48

7월 27일 성 판텔레온 순교자

성 판텔레이몬 St.Pantheleimon.중앙러시아.18세기. 35.5 x 30.5cm

 

이 성화(Icon)는 성 판텔레이몬의 반신상이다.

그는 왼손에 약상자를, 오른손에 고약을 뜨는 주걱을 들고 있다.

빨간색의 어깨에 걸치는 망토는 그의 순교자적인 죽음을 상징한다.

 

이 성화(Icon)에는 성자의 청년다운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림의 왼쪽 윗 모서리에는 성부가 보인다.

판텔레이몬은 의술(醫術)을 배웠으며 막시밀리안 황제 통치시대에

니코데미아(Nikodemia) 궁(宮)의 의사로 일했다.

그는 이단교도인 아버지와 기독교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는데, 그 자신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

 

시기심이 많은 동료들이 그를 모욕하였으므로, 후에 구속되었다.

그의 기독교 신앙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의 확고한 신앙심은 고문을 이겨냈지만 결국에는 칼로 목베임을 당했다.

 

이 성화(Icon)는 18세기에 제작되었으며 19세기에 화면뒤의 목판을 새로 개조(改造)하였다.

 

-유럽 聖畵(ICON)集 에서-
하인츠 스크로부카(Heinz Skrobucha).에드워드 로트만(Eduard Rotmann).
金喜一(He-Il Kim) 共著. 韓獨美術家協會

 

 

 

 

축일 : 7월27일
성 판텔레온 순교자
St. PANTELEON
St.Pantheleimon
San Pantaleone Medico e martire
Died :nailed to a tree and beheaded c.305 under Diocletian
Name Meaning:the All-compassionate (= Pantaleon)
304년경 니코메디아.뇌가 아픈 환자의 수호자

 

 

그가 판텔레이몬으로도 알려진 이유는 그가 그곳에서 살았으며 순교한 것 때문이다.

그는 원래 이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인 에우불라에 의하여 크리스챤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막시미안 황제의 의사가 되어 박해를 받을 때까지 궁중의 방탕한 생활까지 즐겼던 인물이다.

 

그가 크리스챤의 삶을 되찾게 된 계기는 그의 스승 헤르몰라오스 덕분인데,

이 스승은 자신의 의술을 가난한 이를 위하여 인술이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꾸준히 도왔던 것이다.

303년, 디오클레시안의 크리스챤 박해가 니코메디아에서 거세게 일어날 때,

그는 다른 동료 의사가 고발에 의하여 크리스챤임이 발각되었는데,

이때 자기 스승과 다른 두 신자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사형 언도를 받았는데, 판탈레온은 참수치명하였다.

 

 

그는 동방의 최고 순교자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공경받는데,

그의 축일에는 이 성인의 피가 용해되는데,

이런 현상은 나폴리에서 일어나는 성 야누아리오와 같은 경우라고 한다.

  

 

 

 

로마 3백년 그리스도교 박해 시기에 여러 황제 중 가장 잔인하게 박해를 한 때는

아마 디오클레시아노와 막시미아노 시대였을 것이다.

그 박해는 소 아시아에 있는 디오클레시아노의 수도 니코메디아에서부터 시작했고

최초로 쓰러진 순교자들 중에 성 판탈레온도 끼어있었다.

 

그의 전기로서는 순교록에 있는 기록 외에 남은 게 없으며

이것 또한 당시 박해로 말미암아서인지 요점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고관인 에우스토디오로서 이교를 믿었으나

어머니는 열심한 천주교 신자여서 어머니와 헬모라오 신부의 영향을 받아

판탈레온도 신앙에 눈을 떠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의사로서 그 방면에 매우 뛰어났는데 세례를 받은 후부터는 하느님께 의탁하고 기도를 함으로써

더욱 더 뛰어나 어느 날은 맹인의 눈을 뜨게도 했다.

이 현저한 기적을 본 그의 아버지는 경탄하며 헬모라오 신부에게 교리를 배우고 영세하여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막시미아노 황제가 정치상 의노늘 하기 위해 디오클레시아노 황제를 만났을 때

그 기적 이야기를 듣고 찬탈레온을 자기 시의(侍醫)로 초청했다.

그는 이러한 영직에 있으면서도 결코 구원 사업에 대해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수계 범절했다.

 

그러한 직책에 있는 동안 천주교 신자 탐색의 손이 사방에 뻗쳤다.

판탈레온도 황제 앞에 호출되어 배교를 강요당했다.

황제는 그의 과거의 공로를 조금도 고려치 않고

“교를 버려라. 그러면 내 심복으로서 더 출세할 기회를 얻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끝까지 고집한다면 네 생명은 없는 줄로 생각하라”고

때로는 위협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판탈레온은 이미 세례 때에 마귀를 끊고 세속 영화를 다 버린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생명을 아끼고 불의를 따라 세속 영화를 탐하고 하느님과 영원히 갈라질 리가 만무했다.

절대로 신앙을 버릴 수 없다는 완고한 답이 그의 입에서 떨어지자,

황제는 노발대발하여 형리들로 하여금 그를 감람 나무에 못박에 하고 갖은 형벌을 가한 뒤에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판탈레온은 박해에 희생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장한 죽음은 그를 감옥과 같은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본 고향으로 인도했다.

그가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가 순교한 후 많은 기적이 일어남으로써 확실해졌다.

 

그는 지금 의사들의 주보 성인으로 존경받으며,

그가 순교할 때 머리에 못을 받는 데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도 뇌가 아픈 환자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