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수성구 2022. 7. 6. 06:35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호세 10,1-3.7-8.12; 마태 10,1-7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2022.7.6.; 이기우 신부

 

  드디어 호세아는 죄가 쌓일 대로 쌓인 북 이스라엘의 임금과 백성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심판의 신탁이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농부가 포도밭에 포도나무를 심듯이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히브리 노예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포도 열매가 무성하게 맺기는커녕 제때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거짓의 열매만 주렁주렁 달렸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스라엘은 죗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고, 그 대신에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정의의 씨앗을 뿌리고 신의의 열매를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예언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못자리가 열두 사도 공동체였습니다. 이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대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서 세워진 인류 역사의 새 포도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온 하늘 나라였고 세상과는 대조적인 사회였습니다. 

 

  열두 사도의 공동체로 시작된 교회는 예수님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생겨났습니다. 민족사적으로는 가장 암울했던 시점에 활약하셨던 예수님께서 역사적 상황의 암울함에 맞먹는 비중으로 역사적으로 비장한 선택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혈연으로의 이스라엘 민족은 의미가 없고 믿음으로 모인 새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사명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기억했던 김대건 사제는 우리의 선택을 위해 중요한 역사적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그는 불과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로 치명했습니다. 그는 열다섯살 어린 나이로 신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름 동안이나 걸어서 도착한 마카오에서 십 년 동안 사제로 양성받은 그가, 상하이에서 허술한 돛단배 라파엘호로 동중국해와 황해의 태풍과 파도를 겪으면서 제주도 용수리 해변을 거쳐 어렵사리 충청도 나바위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경기도 은이에서 사목한 기간을 불과 6개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후속 선교사가 안전하게 조선에 입국할 수 있는 뱃길을 알아보고자 연평도로 나갔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되어 6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심문을 당하고 고문도 당했으며 배교만 하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는 회유도 받다가 모조리 거절하고 치명하였습니다. 그는 조정에서 탐낼만한 조선 최초의 서양 학문 유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중국과의 교류 외에는 모든 해외 교류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었고 성리학 이데올로기로 다스리며 백성을 신분을 나누어 차별하면서 ‘공자의 나라’로 자처하던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습니다. 이런 판국에서 김대건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의 복음화를 위하여 사제가 되었지만 신앙을 박해하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후일에 후손들이 이 나라를 주의 나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자신은 치명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호세아가 당시 자기 조국인 북이스라엘에 내려질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했듯이, 김대건은 조국 조선이 장차 복음화되리라고 내다보고 새남터 형장에서 열두 칼 서슬 아래 죽어갔습니다. 민족 복음화라는 이 목표는 김대건 순교 150년 후에 열린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평신도 의안, 16항)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신 예수님께서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이들을 사도로 삼고 열두 사도 공동체라는 주춧돌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자 성찬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뜻도, 파스카 축제일을 골라서 성찬례를 세우신 뜻도 모두 교회가 파스카 전통을 계승하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상호 섬김으로 당신을 기억하여 행하기를 바라는 유언을 남기신 이 파스카 예절에 예수님 선택의 진수가 담겨 있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켜 하느님 안에서 자유인이 되게 한 파스카 탈출 사건처럼,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이제는 이집트가 아니라 온 세상에서 파스카 과업의 추진엔진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선택, 예수님의 선택, 김대건의 선택처럼 우리도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하느님 앞에서 선택해야 하는 실존입니다. 우리 민족의 파스카 과업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한반도의 평화를 회복한 바탕 위에서 갈라진 겨레가 화해하고 민족의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호세아의 신탁에 따르면, 우리 교회는 우리 민족을 하느님의 포도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정의가 비처럼 내리고 신의가 넘쳐나는 사회로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예수님의 선택을 본받아,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는 파스카 본연의 자세로 공동체를 살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보여주는 탐욕스럽고 비인간적인 행태를 반면거울로 삼아서, 작지만 정체가 분명한 대조사회로 살아가야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를 당신 도구로 쓰실 수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신앙을 증거하며 치명했던 김대건의 꿈대로, 민족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가 구현되고 신의가 충실한, 거룩한 주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