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죽은 소녀가 살아나고 앓던 여인은 치유받고 …

수성구 2022. 7. 4. 04:32

죽은 소녀가 살아나고 앓던 여인은 치유받고 …

 

호세 2,16-22; 마태 9,18-26 /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2022.7.4; 이기우 신부

 

  호세아 당시 북이스라엘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북방의 아시리아와의 국제 관계를 원만히 하려고 아시리아의 우상숭배 풍조도 서슴없이 도입했는데, 이 결과 율법 정신이 느슨해져서 왕정은 부패했습니다. 호세아는 주님의 심판을 예고했으며 회개하라고 촉구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내부 개혁은 좌초되었으며 우상숭배는 나라 전체에 만연하는 바람에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그리고 진실 같은 공동선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이스라엘의 국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시리아가 침략하자 나라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2열왕 17,6-7).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려주시고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고생하던 이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으리라는 비상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던 덕분에 손을 댄 즉시 치유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았다는 선언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부 아우구스티노는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다시 살리신 회당장의 딸은 유다 민족을,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치유와 구원을 받은 여인은 이방 민족을 상징한다고 이 대목을 주해하였습니다. 

 

  4세기경 로마에서 활약한 아우구스티노는 1200년 전에 활약한 호세아 예언자가 전해 준 이스라엘의 상황, 즉 최고선과 공동선이 무너져버린 사정이 4백 년 전인 예수님 당시에도 별로 달라지지 못했음을 감안하여 오늘 복음 말씀을 주해한 듯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다 민족을 찾아 오셨다는 것이고, 그분의 사도들이 선교사가 되어서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 사는 많은 이민족 이방민족들이 치유와 구원을 받게 된 사정을 해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 역시 로마제국의 멸망을 당대에 목격하고 말았으니, 그의 주해는 로마가 아니라 게르만 민족들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호세아와 아우구스티노의 안목과 통찰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민족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병들었다가 깨끗이 낫기도 하는 역사의 섭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북이스라엘 시대이거나 로마 시대이거나 상관없이 시대를 넘어서는 진리입니다.

 

  18세기경에 이 땅에 처음 천주교 신앙을 들여온 천진암 강학회의 선비들도 기울어가던 민족의 운명에 대해 예언자적 진단을 내려 교회를 창립했었던 역사에 비추어, 20세기에서도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맞이하여 열렸던 전국 사목회의도 예언자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이 회의의 폐막미사를 주관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제 이 땅의 교회 현존 제3세기에 삶의 증거, 회개를 통한 화해, 그리고 사랑의 나눔이라는 세 항성(恒星)으로 방위를 찾기 바랍니다.” 하고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도, “이 사목회의는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 즉 성직자·수도자·평신도가 같이 참여하는 회의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자축하면서, “안으로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의 새로워진 모습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과 같이 있는 교회 되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니 사목회의는 교회 생명 자체를 다루는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회의에서 발간한 의안들이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사목 향방 설정에 큰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1995년에 출간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 일부 반영되었을 뿐 더 많고 커다란 제안 사항들은 숙제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주교회의에서 12개 분야 사목의안 전집을 발간한 것은 이 의안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한국 현실에 맞추어 수렴한 값진 메시지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 사목의안들을 숙고하여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수렴했었더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당시에 주교단에게 보낸 쓴소리 대신에 격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국 사목회의도 벌써 폐막 40주년을 맞이합니다. “역사적 초유로 열렸던 이 사목회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주님의 영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통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안고 내일을 오늘로 힘차게 살아가는 이 시대 그리스도교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이 의안은 선교 3세기를 이미 중반 정도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아직 유효한 예언적 메시지입니다. 특히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도 더욱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황청에서 파악하고 있는 21세기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교 전체 역사상 제3천년기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역할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향도(向導)이기 때문입니다. 이 섭리를 알아듣고 우리 교회가 이 예언적 메시지에 따라 교회를 쇄신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께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 복음화라는 선물을 주실 수 있는 봉헌이 될 것입니다. 

 

  죽은 소녀를 살리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여겼던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민족이 흥하거나 망하는 역사의 부침은 그저 이유없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파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