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시작은 `황량한 곳`

수성구 2022. 6. 18. 04:34

시작은 `황량한 곳`

6월 셋째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루카 9.1-17)

 

시작은 `황량한 곳`

(마진우 신부. 대구대교구 초전성당 주임)

 

지금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

모든것이 메말라 있는 곳이다. 그렇다! 시작은 황량한 곳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계산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무언가 있다.

크나큰 군중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초라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 처한다.

본당은 메말라가고 황량해져 간다.

고령화는 계속되고 신자들도 줄고 젊은이들도 줄어든다.

성소도 줄어드는 게 확실히 보이고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가 남아 나지 않을 것 같다.

남의 일은 이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 가운데

그 하느님의 외아들이 함께 계신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드님은 감사 할줄 아는 분이다.

아버지에게 복을 기운할 줄 아는 분이다.

아빠를 굳게 믿는 훌륭한 아들이다.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추어지게 마련이다.

교회의 황량함 속에서는 참된 봉헌이 그 가치를 지닌다.

아무것도 없으니 그런 가운데 뭐라도 꺼내 드는 사람이 진정으로

믿음을 지녔음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은 언제나 그렇게 유지되어 왔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곳에서 싹 트고 자라 온 것이다.

우리 한국 땅의 순교사도 비슷하다.

모두가 멸절되고 말살될 것만 같았던 혹독한 순교 속에서

역으로 그 순교자들의 피가 거룩한 씨앗을 움트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는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모든 공허를 메꾸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남은 조각만 모았는데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찬다.

열둘의 상징성은 뚜렷하다.

그것은 `열두 지파` 열두 사도` 즉 교회의 충만함이다.

예수님은 거룩한 성체성사의 예표를 드러내셨고

이 거룩한 성사. 성체 성사.

즉 미사는 오늘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황량함이 교회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황량함이 우리의 진실한 믿음을 드러내게 하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빵과 물고기를 바쳐 드리도록 하자.

우리를 무섭게 노려보는 세상 앞에 이것은 너무나 보잘것없지만.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면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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