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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성녀 루트가르다(루갈다) 동정

수성구 2022. 6. 16. 04:10

6월 16일 성녀 루트가르다(루갈다) 동정

축일:6월16일
성녀 루트가르다 동정
Santa Lutgarda Religiosa
ST. LUTGARDIS

St. Lutgardis of Aywières, OSB Cist. V (RM)
Born:1182 at Tongres, Limburg, Nederlands
Died:16 June 1246 at Aywieres,

just as night office began on the Saturday night following Feast of the Holy Trinity

    

성녀 루트가르디스(또는 루갈다)는 1182년 네덜란드 브라반트(Brabant, 오늘날에는 벨기에의 주) 지방의 통그레(Tongres)에서 부유한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귀족 청년과 혼인하기로 하였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자 파혼을 당하였다. 그래서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살의 나이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생트롱(Saint Trond) 부근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검은 베네딕토 수도회(Black Benedictine convent of Saint Catherine)로 보내졌다. 수도생활에 특별한 성소가 있지 않았지만, 지참금이 없다는 사실은 적당한 남편을 찾는 희망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옷과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좋아하던 아리따운 소녀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경험한 뒤 자신의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동안 나타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상처를 그녀에게 보여주시고 당신만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그녀는 즉시 예수님을 자신의 신랑으로 맞이했고 20살이 되는 해에 베네딕토회의 수녀가 되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의 많은 자매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열정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지기만 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현존은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기도를 시작하면 육신의 눈으로 보듯이 예수님을 보았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주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일을 끝내자마자 다시 돌아올게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 후 12년 동안 다수의 환상을 경험하였고, 그 환상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다수의 성인들을 뵙게 되었다.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였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할 때엔 이마와 머리에서 피가 맺혀 흐르기도 했다.

 

성녀 카타리나 수도회의 수녀들이 그녀를 수녀원장으로 추대하고 싶었지만,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08년 그 수도회를 떠나 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곳을 찾아 브뤼셀(Brussel) 근처 에비에르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갔다.(Order of Citeaux; Cistercians; White Monks) 독일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을 선호했을 법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해사제와 당시 성 카타리나 수도원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의 권고를 받아들여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훗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에서 그녀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수녀원장직을 피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곳에서 오직 빵과 물로만 지내며 극기 생활을 하던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당시 기승을 부리던 알비파 이단을 위한 보속으로 7년 동안 3번이나 대재를 지켰다. 또 그녀는 에비에르 수도원에서 30년을 살며 영적 슬기로움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치유와 예언의 은사를 주셨으며 성서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주입시켜 주셨다. 불완전한 프랑스어에도 불구하고 영적 지도에 있어서 크나큰 업적을 이뤘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특히 기도에 열중하였는데, 그녀의 기도는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중의 한 예가 동정심이 없던 한 수도원 원장이 죽자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그가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수도원장이 나타나 그녀의 기도 덕분으로 연옥의 고통을 크게 덜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자주 루트가르디스 성녀에게 발현하였는데, 예수님의 수난은 성녀의 수도 생활의 핵심이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35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어 생애의 마지막 11년을 맹인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가시적인 세계에서 자신을 떼어놓고자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하며 고통을 참아냈다.

 

예수님께서는 성녀 루트가르디스에게 나타나셔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그렇게 받은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후 죄인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을 영원히 마주 뵈올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였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자신이 예언한대로 1246년 6월 16일 삼위일체 대축일 저녁기도가 끝나고 대축일 끝기도가 시작되려는 시간에 64세로 선종하였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의 일생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큰 징표를 남겨 죽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받음을 기뻐하며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수난의 부족한 것을 마저 채웁니다”(골로 1,24). 그녀는 12-13세기의 뛰어난 신비가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가톨릭홈에서)

 

Black Benedictine convent of Saint Catherine
Order of Citeaux; Cistercians; White Monks 


 


  


성녀 루트가르다의 일생은 주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합일을 지향하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속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골로 3, 3-4)라는 이 성 바오로의 말씀은 루트가르다의 생애를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루트가르다는 1182년 벨기에 돈글에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대단히 신심이 깊은 분으로서 루트가르다를 경건하게 키우려고 노력햇으나,

아버지는 신심이 없는 세속적인 인간으로서 현세의 쾌락, 허영, 사교 등에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으므로

루르카르다는 이처럼 상반된 교육 방침의 희생이 되어 선을 행하는 것 보다 악을 따르는 편이 더 쉬운,

그야말로 의지가 굳지 못한 소녀로 자라났다.

 

그녀는 결혼한 나이에 이르면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어떤 귀족 청년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결혼 지참금도 딸에게 줄 수 없을 정도로 상업에 실패하여 큰 손해를 보자,

처음부터 사람보다 금전을 탐내고 있던 청년은 즉시 약혼을 파기하고 루트가르다를 만나지 않았다.

그 당시의 루트가르다의 부끄러움은 어떠했으랴!

그녀는 그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어머니의 권고대로

이후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하느님께만 의탁하며 살아가려는 결심을 했다.

 

 

성소(聖召)의 유무(有無)를 알고자 일심으로 기도하고 있던 어느날 그녀는 뜻밖에 예수의 발현을 보았다.

즉 예수께서 유혈이 낭자한 옆구리의 상처를 보이시며

"보라, 그대가 사랑해야 할 것을! 이 상처에서야말로 그대는 무상의 기쁨을 발견하리라"하고 말씀하셨다.

이후 그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필로 삼고 그분의 성의에 합당한 것을 구하며

밤낮 덕을 닦을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18세 때 꿈에도 그리던 수도 서원을 발한 그녀는 오로지 사랑하는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

수녀의 본분인 기도, 노동, 고행 등에 골몰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도 그녀를 보다 높은 완덕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 아래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나 남에게 오해를 받는 등의 정신적 고통을 거의 끊임없이 내려 주셨다.

그녀는 이모든 시련을 기쁨으로 받아 그녀의 영혼은 하루하루 더 굳게 주님과 결합되었고,

예수께서도 그녀에게 발현하시어 신비적 생활의 오묘함을 명백히 밝혀 주셨다고 한다.

이러한 은혜는 온전히 자기를 끊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면 좀체 베풀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녀는 회칙에 정해진 책임 기도를 완수함은 물론, 틈만 있으면 기도와 묵상 등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가 구한 소원을 실제로 신기하게 채워졌다.

한 예를 들자면, 어느날 그녀가 잘 알고 지내던 한 수도원자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사람은 생전에 남에 대한 동정심이 모자랐었다.

그래서 루트가르다는 그이 사후의 운명을 근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고행을 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되어 그가 40년이나 덜 받게 되었습니다. 하고 감사하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가 특별히 죄인을 위해 진력한 한 가지 이유는 젊었을 때의 불미한 생활을

다시금 통회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과 깊은 신비적 합일의 은혜를 받게 된 루트가르다는 직접 예수께 지도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가 7년간의 단식재를 세 번이나 명 받은 것도 그 실례이다.

그 최초의 그 최초의 단식재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알비파 이단을 소멸하기 위해,

다음 것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 것은 바햐프로 교회를 급습하려는 박해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함이었다.

 

루트가르다는 이와 같이 주님의 뜻대로 수도 생활에 골몰하고 다른 자매들의 훌륭한 모범이 되었으므로

그가 겨우 25세의 젊은이로서 수도원의 원장에 추천된 것은 별로 놀랄 것이 못된다.

그러나 겸손한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수도원에 간청하여 고향을 떠나

브라반드 주의 아비에르 수도원에 가서 약 40년 간 경건한 수도 생활을 계속 했다.

마지막 11년간은 주님의 특별한 섭리로 완전히 장님이 되었으나 그 부자유스러운 고통을

주님의 고난에 합쳐 성부께 바치며 세상의 구원에 동참했다.

 

이렇게 수많은 공적을 쌓으며 세상에서 주님과 일치하고 있던 루트가르다가 풍부한 보수를 얻으며

영원히 배필로서 즐길 수 있는 천국으로 가게 된 것은 1246년 6월 16일이었고, 그의 나이 64세 때였다.
(대구대교구홈에서)

 

 

베네딕도성인의 십자가

CSPB = CRUX SANCTI PATRIS BENEDICTI" (사부 성베네딕도의 십자가)

 

 

네델란드의 통그레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12세 때에 쌩-트롱에 있던 성녀 가타리나 수녀원에서 지냈는데,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단지 결혼 지참금을 분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주 매력적이고 티없이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성소자로 들어온게 아니었으므로 수녀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의 발현을 보게 되었다.

그분은 당신의 다섯 상처를 보여 주시며, 당신을, 당신만을 사랑하라고 이르셨던 것이다.

그녀는 즉시 그분을 천상정배로 받아 들이면서 세상사와 인연을 끊어버렸다.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를 본 다른 수녀들은 처음에는 우려하였지만,

그녀가 주님의 현존을 목격하며, 육신의 두 눈으로 직접 뵙는다는 사실이 차차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주님과 아주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주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오겠습니다" 는 말을 자주 하였다.

또 성모님의 환시를 비롯하여, 수녀원의 수호자이신 성녀 가타리나의 환시도 보았다.

또 복음사가 성 요한도 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묵상할 때는 거의 항상 주님의 고난에 신비적으로 동참하는 은혜를 받았다.

사실, 그녀는 12세기와 13세기 최대의 신비가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올바른 선택
  
 
살면서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느낀 적이나
무엇인가 다른 일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가?
루트가르다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수녀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이 망하면서 딸의 결혼 지참금을 다 날린 부모는
12살 된 그를 수녀원에 떠맡겨 버렸다.
억지로 수녀원에 들어간 루트가르다는 수녀원을 하숙집 정도로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환시 속에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자기가 수도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루트가르다는 자신이 우연히 그곳에 오게 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오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가 루트가르다처럼 환시를 통해서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아마 일생을 기다림 속에서 허송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본다면 자기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해 현재의 삶에 투신하라는 것이다.

복자 헨리코 수소는 “각자 자신이 처한 삶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식별하고 거기에 마음을 써야 한다.”라고 권고하였다.

 

우리도 성녀 루트가르다처럼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하느님이 나를 위해서 마련하신 길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잘못된 곳에 와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그럴 때 나는 장소를 바꾸려 하는가, 혹은 나를 바꾸려 하는가?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