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6월 12일 사아군의 성 요한

수성구 2022. 6. 12. 05:03

6월 12일 사아군의 성 요한

축일:6월12일

사아군의 성 요한

St. JOHN of Sahagun

St. Joannes a Sahagun, C

San Giovanni da Sahagun

Born:1419 at Sahagun (Saint Fagondez), Léon, Spain as John Gonzales de Castrillo
Died:11 June 1479 at Salamanca, Spain; may have been poisoned by a woman whose lover,

a nobleman, broke off their relationship after hearing John preach,

and for this reason he is sometimes listed as a martyr; relics in Spain, Belgium and Peru
Beatified:19 June 1601 by Pope Clement VIII
Canonized:16 October 1690 by Pope Alexander VIII 

Giovanni = il Signore e benefico, dono del Signore, dall’ebraico

Name Meaning:God is gracious

 

 

남부 유럽에는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도 열의를 갖기도 쉽고 냉담하기도 쉬운 다혈질(多血質)의

사람들이 많으나 이러한 사람들을 잘 돌봐주기 위해서는 무엇이나 뚜렷한 공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에 눈부신 활약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꽉 붙잡은 훌륭한 사아군의 성 요한에 대해서 기록하려고 한다.

사아군이라 함은 그가 출생한 남부 스페인에 있는 마을의 이름으로서

정식으로는 산토 파쿤도라고 하는 것을 요약해서 부른 것이다.

그의 출생은 1419년으로 아버지는 곤잘레스, 어머니는 산티아라고 했다.

요한의 부모는 자녀가 없는 것을 한탄하며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던 바 다행히 허락되어 요한을 얻고 나서

다시 남매를 낳게 되었다. 그는 장남이었던 관계로 부모는 요한의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시내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부탁해 그 부속학교에서 배우도록 했다.

그 학교를 졸업한 요한은 부르고스라는 지방의 주교에게 총애를 받아 그 주교좌 성당 부참사회원에 선택되고

신품을 받아 사제가 되었는데, 명예를 원치 않는 그는 그 곳을 떠나 다시 남의 영혼 구원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하고자 살라만카 대학에 입학해 신학의 연구를 계속하고 훌륭히 학위를 획득하고는 그 지방 성 세바스티아노

교회의 보좌 신부로 임명되었다.

당시 살라만카 귀족의 청년들은 두 파로 갈라져 결투를 하는 한편 많은 사람들이 결투에 패배해 살해되었는데,

그의 친척 일동은 이를 매우 분히 여겨 또한 상대를 살해했으므로 시내는 물 끓듯이 소란하고,

사람들도 각 차에 가담해 서로 싸우고 서로 헤쳐 언제나 조용한 날이 없었다.

요한은 무척 이를 염려해 성당에서 설교로, 혹은 개인에 대한 훈계로, 복수는 비그리스도적 행위하는 것을

강조하고, 또 어떤 때에는 막 유혈의 참사를 일으키려고 하는 두 파 사이에 들어가서 격투를 말리고 가급적

그 조정에 노력했던 결과 마침내 시민도 그의 열과 정성에 감동되어 일체를 깨끗이 씻고 화목하는 동시에

요한을 평화의 천사, 살라만카 시의 구세주라고 부르며 한결같이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요한은 매일의 자기의 성무를 충실히 완수하며 9년간 지내다가 중병에 걸려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때 그는 “만일 다행히 경과가 좋아서 회복술의 결과는 의외로 좋아서 얼마 안 되어 전과 같은 몸이

되었으므로 그는 재산을 모두 빈민에서 희사하고 의복을 걸인에게 나누어 주며 약속한대로

살라만카 시에 있는 아우구스티노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벌써 45세였으나 젊은 수련자들 틈에서 그들 못지 않게 기도와 교행에 열의를 다하며

1464년에 수도서원을 발하고 그 뒤 원장에게 설교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의에 굳센 사람으로서 어떠한 권세가 있는 사람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움 없이 상대에게

악한 점이 있다면 기탄 없이 이를 훈계했으므로 가끔 남의 비위를 거슬러 박해를 받고 때로는

생명의 위험까지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이하게 환난을 모면하게 된 것은 의인을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가 세상을 하직할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요한은 어느 귀족의 한 청년이 한 부인과 도리가 아닌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을 알자 전래대로

그 그릇됨을 설복시켜 그를 회개시켰으나

상대의 여자는 대단히 성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어느 날 그에게 독약을 권했다.

그로 말미암아 요한은 병상에서 신음하는 신세가 되어 수개월을 지내다가

61세를 일기로 하느님의 품으로 달려갔다.

때는 1479년 6월 11일이었는데, 그의 축일은 교회의 결정에 의해 6월 12일에 지내게 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요한은 '야훼는 은혜로우시다'란 뜻이다.
그는 살라망까 대학교를 다녔고, 사제로 서품된 뒤에는 그 지방의 교구 사제로 활동하였다.

1463년, 그는 그곳의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여 높은 성덕을 쌓아 유명해졌다.

어느 사악한 영주의 미움을 받아 독살되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격정

‘하늘 아래 증오로 변한 사랑만큼 거센 분노는 없고,

모욕당한 여인의 증오심에 비길 만한 광포함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아군의 성 요한은 모욕당한 여인의 증오심 때문에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해진다.

요한은 알바 공작의 죄악을 서슴없이 비난하다가 미움을 사서 암살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천우신조로 목숨을 구한다.

또 한번은 영주에게 정부와 관계를 끊도록 설득하였는데 얼마 후 독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영주의 정부가 요한을 살해했으리라는 것이 당시의 풍문이었다.

 

누구나 화를 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노는 그 자체로는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하는 행동은 해를 부른다.

우리가 옳지 못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남을 해치는 도구로 분노를 사용하면

분노는 더 이상 감정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탄의 힘으로 바뀌게 된다.

 

그때의 분노는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분노는 마음에서 불어 닥치는 태풍과 같다.

태풍이 가리지 않고 길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피해를 주듯이

분노도 죄인뿐 아니라 순진한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친다.

모든 분노를 다 토해 내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파괴뿐이다.

분노라는 감정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노를 더 거칠게 할 수도 있고 냉정하게 가라앉힐 수도 있다.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냈던 적이 있는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분노를 품지는 않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