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성인

5월 6일 성 도미니코 사비오

수성구 2022. 5. 6. 04:46

5월 6일 성 도미니코 사비오

축일: 5월6일(3월9일)

성 도미니코 사비오

St. Dominic Savio

San Domenico Savio Adolescente

Born:2 April 1842 at Riva di Chieri, Italy

Died:9 March 1857 at Mondonio, Italy

Beatified:1950 by Venerable Pope Pius XII

Canonized:12 June 1954 by Venerable Pope Pius XII

Name Meaning:belonging to God (= Dominic) wise; learned (= Savio)

 

 

도미니코 사비오는 1842년에 피에드몬트의 리바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불태워왔다.

요한 보스코 성인이 청소년 교육을 위하여 준비를 시작할 때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 주도록 의뢰하였는데,

도미니코의 본당 신부가 그를 추천하였다.

 

면담에서 돈보스코 성인은 이 소년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리하여 그가 12세 때 토리노의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학생이 되었다.

 

Don Bosco의 예방교육


돈보스코는 청소년들을 참으로 사랑하였고 청소년들도 돈보스코를 사랑하였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하여 나의 마지막 숨까지 다 바치겠다"는 열망으로 평범함 속에서
비범하게 이루어진 돈보스코의 '예방교육'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교육자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다.

 

"예방교육"이란 청소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질과 역량을 모든 차원에서 일깨워 적극 장려함으로써
그들이 전인적으로 성장시켜 진실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예방교육"은 온전하게 성숙한 인간,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삶의 주역'이 되어
'삶을 축제'로 살아가는 행복한 인간을 양성해내는 교육여정이다.
이것은 선량함과 친근감, 기쁨과 신뢰, 사랑과 합리성이 깃든 교육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예방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강요와 억압,겉꾸밈,권위적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예방교육"은 돈보스코의 교육사상 전체와 연관되며, 전인교육의 근본 요청이다.
돈보스코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요청을 흡족하게 채워주고 존중해 주는
그의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청소년들을 내부로부터 재생시키는 길을 찾아 내었다.

 

그는 예리한 직관력과 독창적인 재능으로 청소년들의 깊은 염원을 복음적 가치 및 올바른 삶의 원칙들과
결부시킬 줄 알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교육의 천재, 교육학 방법론의 성인이라 부른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라고 자주 말한 돈보스코 예방교육법의 최고 원리이자 기본 패러다임은 '감응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예방교육'의 성패?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내적?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적 분위기 조성과 성숙한 '교육자의 현존'이라 할 수 있다.

(살레시오수도회홈에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수도회

(이) Societa’ di san Francisco Salesio

(영) The 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개성과는 달리, 도미니코는 자신이 그곳에서 조직한 ’무염 성모회’때문에 길이 기억된다.

이 회는 신심적인 목적 외에도 돈보스코를 여러가지 구체적인 면에서 도와 주었으므로,

성 요한 보스코가 살레시오회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결성했을 때,

’무염 성모회’의 회원 22명이 주요 회원이 되었다.

 

한 번은 학교 내에서 두 학생이 돌을 들고 싸울 때,

도미니코는 그들 사이에 작은 십자가를 들고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싸우기 전에 이 십자가를 먼저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이셨지만,

당신의 박해자들을 용서하시고 운명하셨다.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나는 양심을 갖게 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한다.

자, 이제 싸워도 된다. 그러나 그 돌을 먼저 나에세 던져라.’

 

나이어린 이 소년의 한 마디 말은 그의 인품과 성덕을 밝히는 중요한 말이다.

그는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데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였고,

그의 기도 정신은 당대의 어느 큰 성인과 못지 않았다.

가끔 돈보스코는 그의 과도한 열성을 탓하고 중지시킬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그는 ’저는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렵니다.’하며 대답하였다.

 

 

또 돈보스코는 그가 고행에 몰두하는 것을 다소 저지하였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신심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도미니코는 얇은 시트 한장을 덮고 떨고 있는 것을 돈보스코가 발견하고,

’왜, 이런 짓을 하는냐, 폐렴에 걸리려구?’하자,

그는 우리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워계셔도 폐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여 돈보스코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도미니코는 아침 미사때부터 몇시간 동안 기도에 빠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런 내밀한 기도 시간을 ’나의 기분 전환’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그에게는 마치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하였다.

한 번은 그가 이런 기도 중에서 일종의 환시를 보았다.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증들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돈보스코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 할 가톨릭 신앙입니다.’

돈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께 알렸고, 교황은 이어 영국에 대한 큰 배려를 하게 되었다.

 

그의 건강은 날로 나빠져서, 1857년에는 고향집이 있는 몬도니오로 보내졌고,

3월 9일 저녁에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의 시복은 1914년에 로마에서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몇 가지 반대에 부딪혀서, 돈보스코의 시성 후에야 이루어졌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