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감동의 스토리

천개의 바람이 되어

수성구 2022. 4. 26. 05:28

천개의 바람이 되어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 거기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난 천개의 바람으로 불고 있어요.
눈밭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기도 하고
익은 곡식위에 햇빛으로 내리기도 하고
부드러운 가을비로 내리기도 해요.

아침에 서둘러 당신이 깨어날 때
난 당신 곁에 조용히 재빨리 다가와서
당신 주위를 맴돌 거예요
밤하늘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이 나에요.

그러니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말아요.
나 거기 있지 않아요.
나 죽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이런 詩가 있을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詩라니ᆢ
산 자가 죽은 자를 애도하는 추모詩는 있지만,

죽은 자, 정확히는 죽을 자가
자기 죽음을 너무 슬퍼할 산 자를
망자 일인칭 주어로 걱정하는

참으로 특이한 詩다.

대체 누가 썼을까.
작가 미상인 만큼
작가에 대해 몇 가지 설이 있는 바,
내가 가장 믿고 싶은 설은 이거다.

아일랜드 독립전쟁(1919년 1월~1921년 7월)때
IRA ( 아일랜드 공화국 군대 )의 소년병이
닥쳐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머니를 위해
이 詩를 자기가 먹은 빵봉지에 써두었다고 한다.
아마 소년병의 마지막 식사 빵이었으리라.




아군의 어머니든 적군의 어머니든
전쟁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만큼 비통한 것이 있을까.

자식이 죽은 아픔을 칼로 창자를 저며 내는
참척 (慘慽)의 고통이라 표현하지 않는가.

죽은 아들이
엄마의 참척의 눈물을 닦아준다.

"엄마 나 이 무덤에 누워있지 않아요.
천개의 바람으로 자유롭게 나르며
아침부터 엄마 곁을 휘돌고,
햇빛으로 별빛으로 때론 가을비로 내리며
엄마를 영원히 지키고 있어요."

이 詩는 미국에서 명사들의 장례식에서
많이 애송되어 왔다.
알링턴 국립묘지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에서도 낭송되었고,

배우 존 웨인이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의 장례식에서 낭송했고,
여배우 마릴린 몬로의 25주기 기념식에도 낭송되었다.


그리고 2002년 9월 11일 뉴욕 그라운드 제로.
미국 9.11 테러 1주기 기념식에서
한 소녀가 이 詩를 낭독했다.

마침 그 기념식에 참석했던 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이 이 詩에 감동, 곡을 부쳐서
2003년 '천의 바람이 되어'란
j - pop 을 만들었는데
일본 전역에 걸쳐 대히트를 친바 있고.

지난 2009년 이 노래 가사를 번안 개사하여
팝페라테너 임 형주가 발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참척의 슬픔을 위로했다.

임 형주 노래는
'내 사진 앞에서 울지마세요'로 시작된다.

어렴풋이 엄마의 답시가 떠오른다.

"그래 엄마 안 울께 넌 죽은 게 아니라
천개의 바람으로 내 주위를 돌고 있어.
부드러운 바람이 나를 감싸 돌면
니가 나를 안아준다고 느낄게" ...라고.

- 작가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