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입대하길 잘했다
군에 입대하길 잘했다!
(박재영 영상제작자)
무더운 8월. 20중반의 늦은 나이에 휴양지에서나 볼 법한 복장으로 입대했다.
화려한 선글라스와 캄보디아 전통 문양의 통바지에 거꾸로 모자를 눌러쓴 채.
사람들은 관심 끌고 싶어하는 철없는 괴짜로 봤을지 모르지만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순간을 즐기려는 필사의 노력일 뿐이었다.
배웅하는 부모님께 교환학생이나 해외인턴을 가는거나 다름없다고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엄마의 눈물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동기들과 줄을 맞춰 생활관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난은 시작됐다.
나보다 어린 조교들의 지적이 하나 둘 늘어갔고
간부들까지 옷차림새를 지적했다.
시작부터 생각 없는 애로 찍혔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와
조교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어리바리하던 나 혼자 열차려를 받고 저녁 배식 당번이 되었는데
양 조절까지 실패해 밥과 반찬이 모자라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외로움과 서러움에 눈물을 참고 둘째 날을 시작했다.
오후 일과 후에는 야간 종교행사가 있었는데
개신교. 천주교. 불교 중 선택해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
가족 모두 천주교 신자였지만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냉담 중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질렸고 하느님의 존재에 의심을 품으며
종교인들의 친절한 태도를 가식으로 치부했다.
심지어 어머니가 성가를 틀어놓을 때면
시끄럽고 분위기가 쳐진다...며 짜증을 내고 댄스곡을 틀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선 군대에서 그나마 접해본 것이라는 이유로 천주교 미사에 참석했다.
성당은 생각보다 넓었다.
특유의 경건하고 정숙한 분위기에서 잠시 후 피아노 반주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평소 어머니가 자주 틀어놓고 부르던 낮은자의 하느님 이었다.
그순간 공간을 뛰어넘어 부모님과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복받쳐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부르는 내내 눈물이 났다.
군대에서 느낀 서러움과 외로움 때문이 아닌 안도감과 감사함의 눈물이었다.
가사 하나하나 곱씹으며 누구보다 크게 성가를 부르는 동안
부모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가호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자만했었는지 깨달았다.
그날 이후 단 한번도 주일 미사에 불참한 적이 없다.
가끔 유혹에 빠지려 할 때면 부모님이 보내준 가톨릭다이제스트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미사 때 독서도 해보고 전우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원만한 관계를 다질 수 있었고
성당 간부의 도움으로 견진성사도 받았다.
내가 만약 군에 오지 않았다면 견진성사는커녕
미사조차도 참석하지 않아 영혼은 더욱 메말라 갔을 것이다.
하느님과의 연결고리.
부모님과의 연결고리를 성당을 통해 깨달은 지금.
그때 군에 입대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