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부활대축일[ 부활하신 우리 주여, 우리 부활시키소서!

수성구 2022. 4. 17. 06:18

[부활대축일[ 부활하신 우리 주여, 우리 부활시키소서!

 

부활하신 우리 주여, 우리 부활시키소서!

사도 10,34-43; 콜로 3,1-4; 요한 20,1-9

2022.4.17.; 주님 부활 대축일; 이기우 신부

 

1. 우리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 아침에, 우리가 부활 축하 인사를 나누는 것은 우리의 부활도 축하하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도들이 부활을 체험하고 굳게 믿게 된 경위를 잘 알고 그 경로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으로 들으신, 빈 무덤의 체험 속에서 발현 체험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의미심장합니다. 

 

2. 여인들의 빈 무덤 체험

부활절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돌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이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빈 무덤이었습니다. 시신이 도난당한 줄로 생각하고 충격과 좌절을 겪고 있는 여인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고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니, 갈릴래아로 가서 그분을 만나 뵈오라고 제자들에게 일러주어라”(마르 16,6-7; 마태 28,5-7; 루카 24,5-7). 

 

3. 제자들의 빈 무덤 체험

여인들의 전갈을 받고 갈릴래아로 간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예전에 하던 대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밤새 애를 썼지만 허탕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온, 그래서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는데도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게 된 계기는 그분이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려 보라고 권하셔서 그렇게 했더니, 놀랍게도 그물이 찢어질 지경으로 물고기가 많이 잡혔던 풍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요한 21,6). 

 

4. 풍어기적, 발현 체험

요한 복음사가는 이때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153마리라고 기록해 놓았는데, 이 숫자에 풍어기적이 뜻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부터 17까지 더하면 153이 됩니다. 또 마지막 숫자 17은 10과 7을 더한 숫자인데, 십진법에서 완전수인 10은 십계명을 뜻하고, 칠진법에서 완전수인 7은 성령칠은을 뜻합니다(아우구스티누스). 그러니까 그물에 잡힌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는 십계명을 지키며 성령칠은을 받는 신자들로 채워질 교회의 모습이요, 이는 부활신앙으로 무장한 사도들이 전개할 선교 활동의 풍성한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는 체험을 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사도가 되어서 얻게 될 풍요로운 선교 성과를 미리 맛볼 수 있는 기적을 행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밤새 애를 썼어도 성과가 나지 않았던 허탈한 좌절 체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어주신 발현 체험이 되었으며, 또한 제자였던 그들이 사도로서 나설 수 있게 한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5. 부활, 영적인 몸의 현실

이밖에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사도로 훈련시키시기 위하여 자유자재로 발현하셨습니다. 육신의 제약을 벗어남은 물론, 영혼이 더 이상 육신의 욕구나 죄로부터 고통을 겪지 않게 되셨으며 나그네나, 동산지기나, 어부로나 자유자재로 그 모습을 바꾸실 수도 있게 되셨습니다. 또 이미 타볼산에서 세 명의 제자가 경험한 것처럼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실 수도 있게 되셨습니다. 또 순식간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실 수도 있는가 하면 한 번에 여러 곳에서 나타나실 수도 있는 ‘영적인 몸’을 지니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보여주신 이 영적인 몸을, 세례 때에 저마다의 영혼에 부여받았습니다. 이 영적 생명은 신앙생활로 성장하는 새로운 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몸이 우리가 신앙고백문에서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이 보여줄 미래입니다. 이는 죽고 나서야 온전한 상태가 될 수 있지만, 세례 때부터 신앙의 수준에 맞추어 서서히 성장합니다. 이것이 교리 용어로는, 상하지 못함 빛남 빠름 사무침을 뜻하는 네 가지 은총 즉 사기지은(四奇之恩)입니다. 

 

6. 사기지은(四奇之恩)

첫 번째는 ‘상하지 못함’의 은총으로써, 영적인 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로 인해 다시 살아난 몸으로서 죄와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오로도,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1코린 15,42)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로 인한 상처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용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상하지 못함’의 은총은 사랑을 실천할 용기를 뜻합니다. 

 

  두 번째는 ‘빛남’의 은총으로써, 영적인 몸은 더 이상 육신의 본능에 지배당하지 않고 영혼이 이끌기 때문에 천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닦은 덕행과 실천한 선행 덕분에 빛납니다. 사도 바오로도,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1코린 15,43) 하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총은 덕행과 선행의 품위를 말합니다. 

 

  세 번째는 ‘빠름’의 은총으로써, 영적인 몸은 육신 본능의 한계에 굴복하는 미약한 모습을 지나 이를 넘어섭니다. 사도 바오로도,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1코린 15,43) 하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수고나 피곤함을 모른 채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아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총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뜻합니다. 

 

  네 번째는 ‘사무침’의 은총으로써, 영적인 몸은 시공의 제약에 갇혀있지 않고 이를 넘나드는 통공의 자유로움을 구사합니다. 무덤을 비워놓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문을 잠가놓은 방을 자유로이 드나드신 데에서 볼 수 있는 이 은총은, 사도 바오로도 이렇게 증언한 바 있습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1코린 15,44).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총은 두려움으로 움추러든 마음을 넘어서는 통공과 연대의 힘을 뜻합니다. 

 

7.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 발현 체험을 할 수 있는가 

그 옛날 여인들과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이 발현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지 물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의 네 가지 놀라운 은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곳은 어디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곳은 주님의 현존이 나타나는 다섯 가지 표지가 있는 곳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역대 교황들, 특히 프란치스코 현 교황께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현존 양식을 다섯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십자가 죽음의 충격과 좌절에 빠져 엠마오로 가고 있을 때 나그네 차림으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메시아의 수난이 이미 기약되어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루카 24,27. 受難旣約). 그제서야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져서 그 충격과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루카 24,32). 이처럼 말씀은 반드시 실현되고야 만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둘째는 성체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앞두고 축성하신 빵과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당신의 몸과 그 몸에서 흘러나올 피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체성사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자신을 봉헌하신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고, 우리도 그분처럼 우리 자신을 봉헌할 수 있는 기운을 얻습니다. 그분의 뜻을 기억하고, 그분께서 하신 일을 기념함으로써,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셋째는 사랑의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저녁에 최후의 만찬을 드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시며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상호 섬김의 윤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이 섬김의 사랑을 행하면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베푸는 사랑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누구도 예외없이 이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넷째는 서로의 신앙감각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6년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내신 문서에는 세례 받은 모든 신자에게는 성령께서 머물고 계시므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직분을 넘어서서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섯째는 공동합의성의 구조를 이룩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신앙감각을 존중하며 사랑의 섬김을 행하는 사도직에 있어서, 서로에게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지혜를 공유하고 나누어서 공동으로 합의할 수 있는 구조, 그래서 세상의 질서보다 더 인격적이고 더 민주적인 구조로 마음을 일치시킬 수 있을 때,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믿음이 약하고 용기도 부족했던 당신 제자들을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존속할 수 있었고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2018년에 교황께서 발표하신 문서의 주요 내용이 이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빈 무덤 체험의 좌절을 딛고, 발현 체험의 기쁨으로 용약하는 부활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여, 우리 부활 시키소서!”(성가 134번. '거룩하다 부활이여,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