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시와 좋은 글

식은땀 흘리며 고해성사

수성구 2022. 3. 25. 01:41

식은땀 흘리며 고해성사

3월 넷째주 사순 제4주일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것이다

 

식은땀 흘리며 고해성사

(조철희 신부. 주문진성당 주임. 영동가톨릭사목센터 관장)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고등학생이던 나는 항상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느님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

어는 날 본 책에는 많은 영혼이 자신의 죄를 숨기는 모고해로 인해

지옥불에서 고통받는 장면이 너무나 생생히 묘사되어 있었다.

나는 두려운 나머지 `총고해`를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신부님을 찾아가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죄를 고백하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고 두렵기만 했다.

 

 

하루는 나의 집 강릉에서 멀지 않은 주문진성당에 외국 신부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거다! 외국 신부님이라 한국말을 잘 모르실 테니 찾아가

부끄러운 나의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해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총고해를 함께 할 친구들을 소집해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주문진성당에 도착했다.

신부님은 과연 소문대로 스페인 분이었고 딱 봐도 한국말을 잘 못하실 것처럼 생긴

완전 외국 사람이었다. 내가 제일 먼저 총고해를 보러 들어갔다.

 

 

신부님. 한국말 조금 하세요?

나의 질문에 신부님께서 나 주문진 사람이래요~~하시며

유창한(?) 강원도 사투리로 나의 고해 내용을 너무나도 잘 알아들으시는 게 아닌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해 성사를 보고 나온 다음 고해성사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예들아. 미안해.......망했어!

신부님 한국말 겁나 잘하셔..

 

 

루카 복음 15장에서 우리는 자기 몫의 재산을 아버지로부터 챙겨

당당하게 집을 떠난 작은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곧 모든 것을 잃고 만시창이가 되었고 비참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실패하고 넘어진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심했을 것이고.

고향 집과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밀려드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밤새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아버지. 제가 하는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망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한다.

처음과 달리 돌아가는 길.

그가 가진 건 죄책감과 수치심뿐이었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버지는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허물과 상처도 아버지의 따듯한 품 안에 받아들여졌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단 한 번도 철회된 적이 없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이러한 믿음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다시 일어나게 하고

상처로부터 회복되게 한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해하는 행위이다.

넘어져도 실수해도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자.

그분은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주문진까지 가서 총고해를 봤던 그 고등학생은 재밌께도 지금

주문진성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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