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그들이 말하는 것은 지키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수성구 2022. 3. 15. 06:16

그들이 말하는 것은 지키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이사 1,10-20; 마태 23,1-12 / 2022.3.15.;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이기우 신부

 

  진리이신 하느님께서는 진실로써 인간에게 다가오십니다. 하지만 악마는 그 진실을 거짓으로 가리거나 덮어서 방해를 합니다. 역사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진실과 거짓이 치열하게 다투는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일러주시는 빛으로 거짓을 들추어내어 진실을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전체를 보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안목을 발휘한 것이지요.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태양신의 아들이라거나 스핑크스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을 거대한 신상으로 만들어 섬기던 이집트의 우상숭배를 보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와서도 뱀이나 물고기 같은 짐승의 상을 거대한 나무나 돌로 만들어서 숭배하는 또 다른 우상숭배에 직면했습니다. 수메르 문명에서 비롯된 이들 주변 민족들의 문화는 이런 우상숭배 종교를 위해 화려하고 눈부시게 발달되었습니다. 그 반면에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종교는 역사상 징표를 드러내실 뿐 우상숭배 종교들의 화려한 문화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화려한 우상숭배 종교와 그 문화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이사야는 동족을 향해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두 도시의 이름을 소환하여 비판하였습니다: “소돔의 지도자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신앙에 따른 윤리를 가르쳤는데, 그 윤리는 무미건조한 듯하지만 올바르고 깨끗한 길이었습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 1,16).

 

  이러한 예언자들의 정통 노선 위에서 예수님께서도 그 당시에 지배층과 민중을 다 함께 지배하고 있던 정신 풍조인 바리사이즘을 정면으로 비판하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마태 23,2)는 말이 그 서론입니다. 모세가 받들었던 하느님 신앙도 없이, 그 신앙 덕분에 백성으로부터 받았던 권위만 취하고, 신앙 없는 윤리만 공허하게 가르치고 있었던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내세운 형식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시면서 그 핵심을 찔러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의 형식논리는 율법 규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그 자구(字句)대로 지키라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내놓으신 핵심은 믿는 이들이 하느님을 섬기듯이 사람들을 섬기라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말씀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은 자신들도 6백 가지도 넘은 규정들을 다 알지도 못해서 규정과 규정이 충돌할 경우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놓고 허구헌 날 입씨름을 하기 바빴으며, 그러한 공리공론의 와중에 “어느 율법이 가장 중요한가?”를 예수님께 질문했던 것이었습니다. 설사 그들이 가장 중요한 율법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해도 자신들은 손해를 볼까 두려워 제대로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사소한 규정을 지키느라고 사람들 앞에서 생색내기 일쑤였습니다. 고아와 과부들의 재산을 등쳐 먹으면서 형식적인 십일조를 헌금한다고 자랑했고, 기도를 해도 성전이나 저자 거리에서 보란 듯이 길게 빈 말을 늘어놓으며 기도 바쳤으며, 기도 중에도 겸손하게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거나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신을 자랑삼아 늘어놓으며 축복을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청중들에게도,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입으로 가르치는 말을 따라서 지키도록 힘쓰되, 그들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행실은 따라하지 말라고 인간관계에 필요한 지혜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고 진정성입니다. 말이 진실해야 하고, 행동에 진정성이 담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윤리에서도 사랑의 최대한과 최소한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먼저 그에게 내가 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연이나, 우리가 자유로이 선택해서 맺은 인간관계에서라면 우리가 하는 말은 더 없이 진실해야 하고 행동에 진정성이 담겨야 할 것이며, 이 진실한 말로 한 약속이라면 행동으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나도 그에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우리는 최대한의 진실과 진정성이 목표가 아니라 최소한의 진실과 진정성이 흠나지 않도록 하면 됩니다. 거짓말은 그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될 것이며, 가능한 한 얼마든지 선하고 의로운 이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므로 예의를 갖추어 대함으로써 그 관계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겪다 보면 분명하게 하느님의 편에 서지 않는 사람임이 드러날 경우가 있습니다. 하는 말이 진실하지 않고 행동에 진정성이 없는 속물형 인간임이 드러날 때입니다. 그럴 때에는 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버리는 심정으로 분명한 선을 그어 처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연히 엮여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기 십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