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이 사람을 울리네
이 녀석이 사람을 울리네
(최옥식 물리학자)
사흘을 굶었다.
주머니가 텅 빈 것이다.
오스트리아 유학 때였는데 누구 하나 기댈 데가 없어 앞일이 막막했다.
공부는 밀렸는데 이렇게 메말라서야...
저녁 굶고. 다음 날 아침 점심 저녁 굶고.
그 다음날 아침 점심 저녁 굶고. 또 그 다음날 아침 점심을 굶었지만
매일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숙제를 했다.
그러면서도 기숙사 친구들이 눈치챌세라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버티었다.
그러나 사흘째에는 다리가 후들후들했다.
오늘 저녁도 굶어? 하다가 눈이 핑 돌았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문을 나서는데 마침 같은 기숙사에 있는
오스트리아 친구 요셉이 들어오는 것이다.
순간 다짜고짜 물었다.
어이. 돈 좀 있어? 얼마나? 한 3백실링
그는 아무렇지 않게 호주머니에서 3백 실링을 꺼내더니
되겠어? 하고는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그가 나를 찾아왔다.
자기는 대학 내의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데
괜찮다면 같이 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밥줄이 끊어진 판에 내가 무슨 일을 못할까.
그 다음날부터 방과 후가 되면 그와 나는 인쇄소에서
책장을 간추리며 강의록 책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하기를 일주일.
드디어 주급날이 왔다.
경리과에서 돈을 타기가 바쁘게 나는 그에게 돈을 갚으며
마음속 깊이 감사하려 했는데.
예기치 않은 그의 대답이 내 귓전을 때렸다.
나. 네게 돈 준 일 없어. 뭘 그래?
지난번에 정말 고마웠어.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리고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야. 이 녀석이 사람을 울리네.
그날 저녁은 그가 한턱 썼는데
나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게 사랑인가 보다.
그들은 내가 굶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내색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난 모르는 일이야! 라는 그 말에는 몸에 익은
그의 크리스천 정신이 눈부시게 묻어있었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속속들이 부끄러운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난 그렇게 못했을 텐데...
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잊는다는 것.
이것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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