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일
이사 58,9-14; 루카 5,27-32 / 2022.3.5.; 사순시기 첫 토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의 독서는 단식의 윤리에 이어서 안식의 윤리에 대해 일깨워줍니다. 이는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서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할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합니다: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인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이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이사 58,13).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의 정상과 냉담 상태를 가르는 기준이 주일미사 참례가 되어 있습니다. 주일날 본당에서 거행되는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으면 열심한 신자라고 칭찬하고, 그 반대로 빠지면 냉담자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계명의 네 번째에 규정된 바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은 “주일미사에 빠지지 마라.”는 계명으로 축소되어 버린 셈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자기 일 대신에 하느님의 일을 해서 그분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날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란 종교적인 봉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일과 공동선을 위한 봉사까지를 다 포함합니다. 무릇 종교적인 봉사도 원래는 사랑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레위를 눈여겨보셨던 듯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던 그를 보시고 마치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사이인 것처럼, 더구나 그저 알고 있었던 사이 정도가 아니라 둘 사이에 이심전심(以心傳心) 상태인 것처럼 “나를 따라라.”(루카 5,27) 하고 부르셨고,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리를 할 정도로 영민했던 레위는 예수님께서 눈여겨보시기도 전에 그분에 관한 소문을 듣고 여러 차례 그분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도 여러 번 가서 열심히 듣다 보니 그분의 눈에 뜨일 정도가 되었겠지요. 그는 세리라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그분의 말씀과 인상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듯합니다. 그래서 “나를 따라라.” 하시는 말씀 한 마디에 주저 없이 모든 것을 버려둔 채 그분을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신 예수님께 그는 고마운 마음에서 동료 세리들을 죄다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틈에 덩달아 참석한 사람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속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은 엉뚱한 딴지를 걸었습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루카 5,30).
그래서 스스로 의로운 체 하던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익히 알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응수하셨습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그네들이 이 말씀의 진의를 알아차렸든지 또는 알아차리지 못했었든지간에 예수님으로서는 매우 점잖게 그들의 비난을 받아치신 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에서는 불평등 추세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시대의 징표를 보고 있는 한편, 또한 우리 교회는 중산층화되어 가는 추세가 굳어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을 잘 지키는 길도 분명합니다. 그냥 쉬는 날이나 노는 날, 또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날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함으로써 주일을 ‘존귀한 날’로 드높이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릴 수 있으며,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약속된 축복을 듬뿍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일에는 미사 참례를 중심으로, 평소에는 일 때문에 쉽사리 시간을 내어 하기 어려웠던 귀한 일을, 가족과 함께 또는 교우들의 가족들과도 어울려서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다음 날이면 또 일하러 나가야 하니까 너무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고, 매 주일 지속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그러나 그치지 않고 하시면 되겠지요. 이렇게 하여 주님을 믿고 섬기는 기쁨을 느끼고 알아간다면, 자녀들이 믿음을 잃고 냉담하는 일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함께 나누거나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도 하느님을 믿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차츰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상황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공생활 내내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전하신 방식입니다. 다시 한 번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방식에 대해 간추려 전해 드립니다. 미사 참례를 먼저 하고 나서, 가장 귀한 일을, 가족과 함께, 천천히, 조금씩, 지속적으로 하는 겁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미사의 화답송 후렴이 우리가 이 사순절에 바쳐야 할 회개의 기도입니다.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으오리다”(시편 86,11).
'백합 > 오늘의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순 제1주일 / 정진만 안젤로 신부 (0) | 2022.03.06 |
---|---|
사순 제1주일 : 다해 / 조욱현 토마스 신부 (0) | 2022.03.06 |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루카 5,27-32 <영혼의 병을 치유해주시는 주님 ♣ (0) | 2022.03.05 |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0) | 2022.03.05 |
단식의 윤리 (0) | 2022.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