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아이가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아이가
(박선정 헬레나)
라떼는 말이야. `각설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분 밖에 시끄러워 나가보면. 영화에서나 볼 법한 딱 그 모양새로
한 손에는 밥그릇. 다른 손에는 숟가락 하나 들고
종합예술 공연을 펼치던 사람들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닌 나는 그런 각설이가 무섭고 싫었다.
다 해지고 더러운 옷에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얼굴과
그 웃음까지도 다 싫었다. 냄새는 또 어떻고.
우리 무서운 할배가 와서 딱 쫓아버렸으면 좋겠는데.
어찌 알고 할배가 없을 때만 골라서 찾아온다.
그런데 내 속도 모르는 할매는 이내 정지로 달려가서 보리밥 한덩이를 들고 나온다.
찌그러진 그릇에 보리밥 덩어리를 받아 든 각설이는
더 크게 노래를 부르면서 골목길 한가득 춤을 춘다.
한바탕 그러고 나서야 각설이는 연신 헤헤거리며 큰길로 사라진다.
그제야 조용하다.
할매. 우리 묵을 것도 없는데 왜 맨날 각설이한테는 저 아까운 밥을 주능교?
안 죽고 살아 왔다아이가. 고맙다아이가.
안 죽고 살아온게 우리캉 무슨 상관인교? 고맙기는 무슨 얼어 죽을...
빈농의 여식으로 일자무식이었던 우리 할머니는 남편인 할아버지를 따라
스무 대여섯갈에 만주로 건너 가셨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배고파 우는 어린 딸 하나 등에 업고 그 머나먼 길을 떠났던 할머니는
몇 년의 죽을 고생 후 아들 하나를 더 업고 여전히 고픈 배를 안은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긴 여정과 이국만리 타향에서의 고행을 할머니는 길게 얘기한 적이 없다.
그저 안 죽고 살아왔다아이가..였다.
할머니는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다.
굴복하지 않고 살아냈따는 것의 숭고함을 알기에
한 해 동안 전국을 떠돌며 겪었을 추위와 질병과 멸시와 냉대를 다 이겨내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살아서 다시 돌아온 것을 환대한 것이다.
40년이 지나서야 할머니의 그 마음을 알겠다.
세상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풍족해지는 듯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갈설이들이다.
그러니 포기하거나 추락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서로를 더욱 따뜻하게 `공감`하고 `환대`해야 하지 않을까.
특별히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나와 이웃들에게
`살아줘서 고맙다아이가` 라고 다독이며 함께 살아간다면
하느님을 뵙는 그 날 하느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겠나.
잘 살다와줘서 고맙데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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