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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코스

수성구 2022. 2. 25. 04:37

나만의 비밀코스

나만의 비밀코스

(신계숙 회사원)

 

자유로운 성격의 남편은 일 벌이는 걸 좋아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시외버스를 타고 또 학교까지 20여 분을 걸어다녔다.

그 무렵 남편이 형제들에게 서준 보증으로 갚아야 할 은행 빚이 감당되지 않았다.

남편은 걱정 말라며 큰소리치고 도장을 찍더니 정작 일이 터지자

나보고 형제들에게 가서 말 좀 해보라고 미뤘다.

형제들이 어떻게 막냇동생에게 짐을 지우고 모른 척하는지...이해되지 않았다.

 

 

어느 아침 출근길.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모르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학교 근처쯤 갔을 때 가건물로 된 성당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성당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무작정 들어가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예수님. 제가 이 난관을 잘 벗어날 수 있게 지혜를 주세요.

 

 

다음 날. 혹시나 하며 가보니 또 문이 열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나를 위해 문을 열어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성당은 나만의 비밀 코스가 되었다.

아침마다 성당 가는 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렜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던 내 이야기를 예수님께 기도로 털어놓았다.

신기하게도 마음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기도는 안하고 울기만 하다 출근했다.

그렇게 삼 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수님을 만났다.

 

 

어느 날. 부지런히 걸어 성당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밀어 봤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이제 예수님이 그만 징징거리고 오지 말라는 건가보다 생각했다.

허전한 마음에 성당 앞을 서성거렸다.

처음 기도하던 날. 주임 신부셨던 외국 신부님이 날 보셨던 것 같다.

삼 년이 거의 된 어느날 기도하고 나오다 신부님을 보게 됐다.

신부님은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 눈빛에서 나를 오래전부터 응원하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은 아침마다 나를 위해 손수 문을 열어 놓은 것이었다.

그 신부님이 가시고 젊은 신부님이 오면서 성당 문은 더는 열리지 않았다.

그동안 묵묵히 성당 문을 열어준 신부님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

 

 

그동안 열심히 같은 덕에 삼년 후.

은행 보증 빚과 원금은 해결됐다.

이제 남은 이자 오천만원....또 앞이 캄캄해졌다.

은행 직원에게 이자 감면을 부탁했다. 직원은 난색을 보였다.

담당 직원에게 눈물의 편지를 썼다.

교사인 내가 빚으로 인한 불안한 마음 때문에 어린 학생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까 봐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얼마 후. 연락이 왔다.

담당자는 편지를 들고 은행장실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 후 간부들이 내 이자를 두고 회의를 했단다.

결과는 기적이었다.

이천만 원만 갚으면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삶을 되돌아보니 지금껏 내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살아온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요즘도 길을 걸어가면서 중얼중얼 화살기도를 자주 한다.

어떤 때는 떼쓰고 징징대기도 하지만 대부분

`예수님 감사해요`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