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수성구 2022. 2. 25. 04:24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야고 5,9-12; 마르 10,1-12 / 2022.2.25.;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 이는 매우 도발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혼하려고 혼인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혼인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노력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혼인과 가정 생활을 잘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가정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어야 정상이었습니다. 

 

  질문의 의도가 당신을 시험에 빠뜨리려던 것임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마르 10,3). 혼인에 대한 모세의 율법은 일부일처제를 준수하는 현대 사회의 혼인 질서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천여 년 전의 규정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선진적인 윤리 규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 불가피하게 이혼을 허락하지만, 재혼을 할 수 있도록 이혼장을 써 주고서야 가능하다고 단서를 붙인 것뿐이었습니다(신명 24,1). 그런데 되물음을 받은 바리사이들은 이 단서 조항을 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하였습니다”(마르 10,4). 

 

  예나 지금이나 부부간에 일생동안 상호정결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설사 불륜이 저질러지는 경우에 이는 남녀 공히 관여되어 있는 범죄인데도 아내의 불륜만 문제를 삼는 것만 보아도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얼마나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관행이 굳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사이들은 모세도 허용한 이혼을 예수님께서 반대하실 경우, 모세의 권위에 대항했다는 빌미를 잡으려고 함정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네들이 들먹인 모세 법보다도 더 근원적인 근거로서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응수하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고, 남자가 여자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된 후에는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창세 1,27; 마르 10,9). 함정 질문에 방어적으로 응수하시느라고 가장 근본적인 진리만 꺼내 놓으신 이러한 예수님의 뜻과 가르침을 본격적으로 펼치자면 이러합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혼인과 가정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할 만큼 중요한 인간의 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이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하느님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세상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혼인과 가정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주도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를 근거로 혼인 성사를 거행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혼인은 남녀의 자유의사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가정은 일부일처제여야 하고, 이 가정의 존엄성은 존중받아야 합니다(혼인의 단일성, 가정의 존엄성). 둘째로, 자유의사로 이루어진 남녀의 사랑과 혼인 속에 이미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므로 한 편의 배우자가 죽기 전에는 갈라설 수도, 갈라놓아서도 안 됩니다(혼인의 불가해소성). 셋째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자녀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이므로 자녀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어야 합니다(신앙 교육 의무). 이는 부부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기본적인 희망사항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보람있는 인생을 가족들에게 제공해 주는 가정이 되는 데 있습니다. 가정은 가족들만의 삶으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교회의 보호와 존중을 받고 있고 또 그래서 세상과 교회를 위해서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보람을 위한 충분조건은 가족들이 거룩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이 성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정을 교회로 건설해야 합니다. 이는 신앙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은총입니다. 

 

  가부장(家父長)인 남편뿐만 아니라 가모장(家母長)인 아내도 가정 교회의 사제입니다. 사제직의 기본은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가정 교회에서 부부는 자신들과 자녀들의 가정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청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혼인 성사에서 약속한 부부간 상호정결 서원을 일생동안 충실하게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구원을 위해서 성실하게 사랑하고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또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 감사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모든 뜻을 모아서 부부와 자녀들이 함께 기도바치는 가정 기도가 가정 교회의 제사입니다. 

 

  요컨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의 축복으로 주신 성은 추악하게 죄로 타락시킬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천부적인 권리인 가정의 행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세 가지 필요조건을 채워야 하고, 세상을 당신의 나라로 만들어가기를 기대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가정의 행복에 만족하지 말고 가정 성화의 소명을 다해서 가정의 보람도 성취하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