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우상숭배와 이방인 선교

수성구 2022. 2. 10. 04:27

우상숭배와 이방인 선교

 

1열왕 11,4-13; 마르 7,24-30 / 2022.2.10.; 성녀 스콜라스티카; 이기우 신부

 

  진리와 오류는 다릅니다. 그런데 오류와 그 오류에 물든 사람은 구분해야 합니다. 오류는 틀린 것이지만 그에 물든 사람은 구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오류가 그에 물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를 죄로 더럽힙니다. 인식상의 오류가 실천상의 죄악을 초래하고, 죄악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또한 사람을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지어 내시어 땅에서 생겨난 모든 것들을 돌보게 하셨다.” 이 진리를 따르면 인간은 구원을 받고 행복할 수 있지만, 거스르면 죄악이 생겨나 파멸합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대표적인 죄악이 피조물을 창조주 자리에 올려 놓고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그 우상은 권세나 재물 같은 힘이기도 하고, 탐욕이나 미움 같은 정서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는 말년의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느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고사를 전해줍니다. 또한 오늘 복음은 아직도 하느님을 알지 못하여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전해주시러 티로 지방으로 가셨다가 마귀 들린 딸을 둔 여인의 간청을 들으시고 도와주신 일을 전해줍니다. 마귀는 하느님 대신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들 속으로 파고 들어와서 인간의 본성을 파괴합니다. 따라서 독서의 교훈으로는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행하는 우상숭배를 왜 타파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고, 복음의 교훈으로는 우리가 아직도 우상숭배에 빠진 이들이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무신론자들, 그 어느 진리도 알 수 없다고 여기는 불가지론자들, 또는 진리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이 그저 먹고 사는 데에만 몰두하는 중생들에게 진리를 알려주거나 적어도 그 오류에서 벗어나도록 일깨워주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 자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진리를 소유하거나 그것도 독점하고 있는 것인양 착각해서 진리를 진리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강요하려는 종교적 독선입니다. 로마나 유럽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을 믿고 있었던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세에 이런 종교적 독선이 횡횡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대륙에 살면서 다른 종교를 신봉하거나 다른 신념을 지닌 이들에게 진리를 강요하는 바람에 진리가 전해지기는커녕 진리가 오히려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 버리는 불행한 선교실패 사례의 역사가 저질러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인 진리를 우상적인 방식으로 전하라고 하시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만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문제 대신 숙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방식을 우리가 배워서 우상을 타파하고 우상숭배자 및 이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지닌 양심과 이성과 의지에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시고 위로해 주셨으며 가능한 한 고쳐주셨습니다. 공동선에 헌신하는 사명이요 책임이며, 진리에 따른 사랑의 방식입니다. 셋째, 마귀 들린 이들이 찾아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마귀를 쫓아내서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사회악에 맞서는 사명이요 책임이며 진리에 따른 정의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넷째, 가르침과 치유와 구마의 사도직을 행하시면서 반대자들과 적대자들 그리고 무관심자들의 죄악에 휘둘려서 죄도 없이 죄인으로 몰리셨지만 그 억울함을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수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섣불리 신자를 늘리려다가 문제를 키우지 말아야 하고, 그보다는 숙제를 제대로 해서 진리에 충실하는 것이 부활의 길입니다. 영세자, 예비자, 성소자 등의 교세에 연연하지 말고 비록 적은 숫자라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아끼고 돌보면서, 서로 섬기는 가운데 행복한 대동세상을 이룩하면 그것이 부활의 시작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 안에 심겨진 그 진리의 씨앗을 하느님께서 키워주시고 퍼뜨리시며 자라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에 대한 대책이요, 이방인 선교에 대한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