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손 도손 나눔

황혼

수성구 2021. 10. 7. 06:11

황혼

 


어느 때보다 일찍 귀가를 서둘렀다.

그냥 오라는 아내의 전화는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서운해서 다시 한번 전화를 했다.
"에이 참 그냥 오시라니까.

어머니는 방금 저녁 드셨고 여기 과일이랑 먹을 것 많이 있어요"


알뜰한 당신을 닮아 아끼는 습성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아내의 짜증스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도 한번 물어봐, 장모님은 세꼬시 회를 좋아하시잖아?"
"점심 때 회 드셨네요. 아까 언니가 사 가지고 와 동숙이랑 엄마랑...

몰라요,

그럼 당신이랑 아들 오면 같이 먹게 조금만 사 오시든지..."


평소의 내 고집을 아는지라 체념했는지,

아니면 친정 엄마에 대한 작은 배려가 싫지 않았는지

아내가 반승낙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 회는 나와 아들만의 잔치가 되고 말았다.


장모님이 몇 달만에 더 늙어 보인다.

작년에 장인어른을 멀리 보내신 후로는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간단한 인사말 정도만 응답할 뿐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시거나

몇 번씩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다가 딸들에게 악의 없는 핀잔을 듣기도 하신다.

옛날 그 영특하시고 악착스런 애살은 어디에도 묻어 있지 않았다

 

처가는 마을이 꽤 큰 시골이다.

지금도 젊은 사람들이 제법 남아 있는 부촌이다.

한때는 힘센 머슴을 둘씩이나 둘 정도로 부농이었던 처가는

한창 농번기에는 하루 종일 큰 가마솥 아궁이에 불 꺼질 날 없었다고

장모님은 자랑 반 푸념 반의 이야기를 수시로 입에 올리신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 처가는 옛 어른들이 모두 그랬듯이

당신들은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은 중학을 마치고 경주로 대구로 유학을 보내셨다.

대신 주말이면 어김없이 불러서 일요일 막차로 올려보내곤 했다.


나는 결혼을 해서 대구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농번기가 닥치면 주말 새벽의 호출이 계속 되었다.

잠이 덜 깬 아내손의 수화기에선 숨 넘어가는 애절한 애원이

새벽 고요 속를 밝힌곤 했다.

나는 으레 하는 것처럼 서둘러 회사 일을 마치고 12인승 봉고차를 끌고는

집집이 사람들을 태우고 시골로 향한다

"당신 딴 볼일 없어요?"

 

시골 갈 짐을 챙기며 미안해하는 아내의 마음을 못 들은 체하며.

우리들의 도착이 늦으면 장모님은 신작로를 쳐다보며 죄 없는 영감님만 돌돌 볶는다.

차가 보이면 반가움에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시고 미안해하시는 당신들을 앞서

서둘러 들로 나선다.

물론 장모님의 빠른 일머리로 각자 맡은 구역으로 나가는 것이다.

약 치기, 보리 베기, 복숭아 봉지 싸기, 마늘 감자 땅콩 캐기, 모심기,

마지막으로 쌓아 놓은 보리 타작이면 대충 농번기는 끝이 나지만 일은 끝도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별들이 하나 둘 마실 나오면

"엄마 이제 깜깜해 안 보인다"는 딸네들의 재촉에도 장모님은

"어서 들어가라 다됐다 곧 가꾸마" 하며 주위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한다.

참다못한 영감님의 뿔뚝고함이 내리치고서야 마지못해 일어나 사위들을 보고 미안해

한다.


식사를 하고 술상이 들어오고 주렁주렁 분위기가 익어 가면

슬며시 일어나 내일 준비하느라고 늦도록 왔다 갔다 하시다가

깜깜한 새벽이면 다시 일어나 떨그덕거리며 만만한 영감님을 이내 불러내시고

사위 보기 민망해서인지 시집 안 간 처제들을 재촉해서 불러댄다.

반복하는 독촉에 하나 둘 일어나 웅성거리고 고무신 끄는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지고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방에는 갓 돌을 지난 우리 애와 두 사위만 새벽잠에 빠져든다.


아침 밥상이 나오고 꼭두새벽부터 들에 나갔던 식구들이 빙 둘러앉으면

괜히 미안해 엉거주춤 밥상을 받는다.

그러나 두 분은 번갈아 미안해하며 고기국 건더기를 듬뿍 담아 준다.

밥상을 물리고 당신은 서둘러 앞장서서 들로 나가면 이내 딸네들도 하나 둘 따라 나서고

우리 두 동서도 뒤따른다.

하루의 해가 왜 그리 더딘지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노을이 길게 깔리면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과 뿌듯한 포만감을 느낀다.

어둠이 왜 그리 반가운지……


허겁지겁 저녁상을 물리고 삽짝을 나서면 별들이 초롱초롱 시골 하늘을 온통 수놓고

마을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서둘러 동네를 빠져 나온다.

물론 푸성귀며 참기름 등을 잔뜩 싣고, 몇 번이나 미안해하는 당신들의 아쉬운 손짓에

울컥 비애를 느끼며 돌아왔다.

아마 차 불빛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계셨으리라.

그 당시 갓 돌을 지난 큰딸이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그때 왜 그렇게 모질게 일을 시켰는지,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묵묵히 힘든 일을 참고 했었다.

덕분에 우리 두 동서는 동네에서 "심실댁 사위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노?" 하는

마을 어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크면서 농사일이라곤 예비군 대민 지원 사업이 고작이었던 우리 두 동서는

지금도 만나면 그때를 이야기한다.
시집 못간 막내딸 걱정을 넋두리처럼 몇 번이나 하시더니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계신

장모님을 부축해 잠자리에 모시고 나무토막같이 바싹 마른 다리를 주물러본다.
"장모님 시원합니까?"
"그래 그래 이제 됐네. 자네도 피곤 할텐데 가 자게"


장모님은 이내 잠이 드시고 나는 물끄러미 잠이 드신 모습을 쳐다보다가

벽돌 같이 거친 손을 만져본다.

"이 손으로 그만한 재산을 일구고 육 남매를 모두 똑바로 키워

집집마다 일등 며느리로 인정을 받게 했으니 위대한 손입니다" 하고 중얼거리며

조용히 방문을 닫아 드렸다.


아내는 아직도 주방에서 덜거덕거리며 장모님이 주무시냐고 묻는다.

배란다 창 너머 멀리 우방 타워에 깜빡이는 불빛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나도 당신 같이 노을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을는지 자신을 돌아보았다.


"여보, 모레 일요일은 장모님 모시고 구룡포에 가서 겨울 바다도 보고

좋아하시는 싱싱한 회도 사드리고 그럽시다.

함께 대게도 쪄 먹고 놀다 오도록 전부 연락해요, 오랜만에 같이 가도록... 응?"

"아이쿠, 됐네요. 잔치 할 일 있어요? 좀 있으면 해맞이 갈 거잖아요.

그때 가서 많이 사 드리세요."

몸에 밴 또순이 기질 아니랄까 봐 한마디로 딱 자른다.


더 이야기 해봐야 볼일 없다는 걸 나도 아는지라 달력 앞으로 가서 날짜를 짚어본다.

하나 둘... 보름하고도 하루니까 딱 십육일 남았군."

혼자 구시렁거리며 신문을 펼친다.

황혼에 붉게 물든 당신께 해돋이는 얼마만큼의 희열을 안겨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 우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