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마음
나 자신도 힘들지만 더 힘들거나
힘들지 않거나
위타적 사랑의 지향을 가지고 기도할 때
사랑이신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마치 십자가의 길의 8처처럼
고난 중에서도 예루살렘 부녀자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
특히 병고와 다른 이유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해
며칠을 두고 그와 그의 아픔을 두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무의식 가운데서도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내가 그와 그의 아픔을 두고 기도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어
서로 있는 곳과 시간이 달라도
한손에 지구를 들고 계시며
온 우주와 세상을 주관하시고,
인간사, 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는 주님을 감동시켜
기도 응답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도 응답의 전제 조건은
기도드리는 사람이
죄가 없는 은총지위이어야 하고,
그 다음, 상대에 대한 애덕이 충만할 때
사랑과 선 자체이신 주님을
감동시키게 된다.
마르코 복음 2장 5절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애덕이 들어간 믿음이 주님을 움직였고,
마태오 복음 2장 41절에도
예수님께 무릎꿇고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나병환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을 가지신다
(Moved with pity).
루카 복음 7장 11절이하에도
나인 지방의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렬에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따라가는 것을 보시고,
이 과부가 평소 자신의 소외된 처지에도
동네 사람들의 희노애락에 함께 하며
애덕을 많이 실천했다는 사실을 아시고,
당신 스스로 '가엾은 마음이 들어'
(he was moved with pity)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신다.
요한 복음 11장 33절이하에 보면,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우신다. 라자로가 평소에 동생들인
마리아와 마르타와 더불어
얼마나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고
사랑을 쏟았는지가 드러난다.
마르코 복음 6장 34절이하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 많은
군중들에게 '가엾은 마음'을 가지신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8장 5절 이하에
나오는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탄하시는
내용도 보면, 먼저 백인대장이
자기 아들도 아니고 매매물품같은
자신의 종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동정심과 애덕을 보시고, 원거리
리모콘 치유(원격 치유)를 해 주신다.
이처럼 병고에 지친 이웃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신 주님을 부르고,
어려움에 있는 타인에 대한 선(善)은
선(善)자체이신 주님을 부른다.
그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전능의 힘이요,
권세요, 치유하는 광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