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내음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실수투성이들...

수성구 2021. 5. 10. 02:19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실수투성이들...

+모든 위로의 샘이신 예수 성심!

 

이젠 어제의 일이 되고 말았네요. 어제는 정말로 너무나 맥빠진 날이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신심 단체에서 행사를 포함한 미사가 있었는데, 그 행사를

진행하는 주축이 저였어요. 이런저런 할 일이 참 많았지요.

 

미사 전례 짜는 것도 제가 해야 했는데, 성가 반주자가 일이 생겨 못 오게 되어

반주 없이 선창자가 이끌어 가야 했어요. 평소에 선창을 잘하는 이에게 카톡으로

부탁을 해두었지요. 그런데 미사 시작 시간이 되어도 그는 카톡을 읽지도, 성당에

오지도 않았어요. 다급한 김에 제가 마이크를 쥘 수 밖에 없었어요.

 

너무나 갑자기 당면한 일이라 저는 봉헌금도 미처 못 냈기에, 영성체 할 때 봉헌금을

살짝 넣어 놓고 오려고 머뭇거리는 사이 영성체도 끝나 버려서 이미 감실 앞으로

돌아선 신부님께 '저 영성체 못했습니다.'라고 부를 수 없었어요. 기가 막혔습니다.

그 행사에서 가장 수고를 한 사람이 저였는데 저만 영성체를 못 모시다니요. ...

 

선창을 해 줄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고 생각은 했지만 원망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가 왜 미사 말미에사 나타난 줄 아세요? 날짜를

혼동해서 오늘 행사가 있는 줄 몰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네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전화를 꺼놓은 바람에 메시지조차 열어 보지 않았다나요.

 

우리들의 인지 수준이 이 모양이니 누굴 탓하겠어요? 저 역시 전날 우리 이안이를

돌보다가 아찔한 실수들을 연발했는데... 이안 엄마가 전임 교사들을 만나러 외출한

사이 펠릭스랑 제가 이안일 돌보고, 사위는 펠릭스 방에서 쉬었어요.

 

이유식, 분유는 제가 잘 먹였고, 감기약은 펠릭스가 먹이게 되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약의 절반 이상을 방바닥에 흘려 버리고 간신히 나머지만 이안이 입에 털어넣었지요.

딸이 돌아올 때까지 별 문제가 없는 듯 했습니다.

 

다만 이안이의 발바닥에 빨간 자국이 서너 개 보였는데, 제가 이름을 잘 모르는

놀이 기구인 뱅뱅이를 갖고 와서 아기가 지루해 할 때면 거기에 앉혀 두곤 했지요.

이유식을 먹을 때는 한 숟갈 받아 먹고 한 바퀴 돌고 오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제가 조금 통제를 하였지만 그래도 신바람이 난 아기는 수 십 번을 돌고 또 돌았어요.

발바닥에 발갛게 보인 게 벌써 굳은 살이 박힌 것처럼 보였네요.

 

이안네가 귀가하고 한참 후에사 펠릭스가 큰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감기약을

0.5ml 먹이랬는데 5ml 를 먹여 버렸다고... 물론 절반은 흘려 버린 상태이긴 했지만

사흘간 먹여야 할 약을 한꺼번에 먹였다는 ... 펠릭스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기가 막혀했고 저 역시 할 말을 잃었지요.

 

아기의 발바닥도 굳은 살이 박힌 게 아니라 물집이 돋은 것이었대요. 뱅뱅이를

타고 너무 많이 도는 바람에 생기게 된... 사위는 속없이 그걸 터뜨려야 한다기에

제가 기겁을 하며 가만 두라고, 그대로 가라앉혀야지 물집을 터뜨려 세균이 들어가면

어찌하느냐고 말렸지요. 아무리 연약한 아기 피부라곤 해도 뱅뱅이 타다가 발바닥에

물집이 그리 잡힐 줄이야......

 

기도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어제 오전, 딸에게 아기의 상태를 물었지요.

병원에 다녀온 길이랍니다. 감기약 사건은 별 문제가 없답니다. 워낙 약의 함량을

약하게 조제해 주신 거라서... 그나마 절반은 흘려 버렸으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고요.

손톱 깨진 것도 많이 아물었고, 발바닥의 수포는 가만 두면 된다시더랍니다. 대신

귀지 제거를 제대로 해주셔서 큰 소득을 얻고 온 길이라며... 갓난이들은 한사코

귀지 제거를 못하게 말렸기에 쭉 손대지 않다가 병원에서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온통 실수투성이 만발이라... 집에서도 그런 일들을 겪은

후인데, 모임에서조차 영성체도 못 모신 채 마무리를 짓고 나니 맥이 빠져서 귀가할

힘도 없었어요. 성당 마당에 얼마나 오랫동안 지친 채로 앉아 있었는지 모릅니다.

 

겨우 겨우 일어나서 운전하여 돌아오는데, 아뿔싸 전화기를 성당 의자에 놓고 온 듯

했어요. 운전 중에 핸드백 안에 손을 넣어 뒤적여 봐도 만져지질 않는 거에요. 이미

그 성당의 문은 잠겼고, 내일은 월요일이니 새벽 미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앞뒤가 꽉 막히는 심정이었어요. 그래도 일단 집으로 오고 있는데, 뒷자석의 천가방

안에서 부르르 떨리는 듯한 전화음 소리~ 그저 환청이 아니기만을 바랐네요.

정말정말 다행히도 전화기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

아, 남도 나도 다들 이런 정신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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