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기도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

수성구 2021. 4. 17. 03:34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

난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하다 보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영화 장면이 많이 떠오른다.

 

특히 로마 군인이 가시관을 만들어 씌우고 나서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하면서

꼬챙이로 자관 쓴 머리를 때리는 장면도 떠오르고,

 

그리고 비르짓다 성녀의 묵시에는 5,480 대의

크고 작은 매를 맞으신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그 수많은 매들이 작렬하는 장면과 기둥에 묶인 손이

매를 맞고난 뒤에 바들바들 떨면서 참으시는 장면이 떠오른다.

 

특히 그 장면 속에서 그렇게 즐비하게 진열된 고문의 도구들과

기둥에 묶여진 예수님의 모습은 정육점의 고기처럼 보였다.

 

그만큼 외적으로는 물리적으로 잔인한 고통만이 계속된다.

그들의 채찍 끝에는 차랑이 박혀 있어

때릴 때마다 등에 고랑이 파진다.

 

 

시편 129장 3절의 예언된 말씀대로

"밭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고랑을 길게 내었네."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그 처참한 모습은 말문을 닫게 만든다.

 

그렇게 하도 두드려 맞았으니, 빌라도의 관저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골고타까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도

수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넘어지지 않을 수가 없으셨다.

 

그리고 그 끔찍한 못박히는 장면은 그들이

본능적으로 손을 움추리고 피할까봐 나무에 묶어 놓았겟지만,

참 두 눈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그렇게 못할 것 같다.

 

난 그들이 묶어 놓고 못박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그렇게 억울하게 무죄한 상태에서 고통을 받는다면

사형선고의 장소로부터 십자가에 못박히는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 못박히는 자리까지 어쩌다가 끌려 왔다고 하더라도,

난 그 자리에서 죽을 때 죽더라도 그들에게 덤벼들었을 것이고

발길로 그들을 걷어 찼을 것이다.

 

난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라면,

십자가에 못박히는 걸 거부했을 것이다.

 

차라리 막시밀리안 마리아 꼴베 성인처럼

아사형 감방에 넣으면 죽을 자신은 있다.

굶는 연습은 많이 했으니까.

 

겟세마니 동산에서 얼마나 괴로워하시며 피땀흘리시면서

기도하셨기에 모세혈관이 터져 스며나온 피땀이 기도하시던

그 자리에 흥건히 고였다고 전해온다.

 

우리는 이런 절체절명의 실존을 건

절규의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로마 시대의 가장 몹쓸 죄를 진 사형수에게 내리는 형벌이

십자가형이라고 하는데, 보통 십자가에 못박히면

못박힌 자리의 근육이 파열이 되어 흘러내리는 그 피가

사람의 폐에 차면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72시간이 되면 죽는다고 한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채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48시간 만에 죽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전 6시에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3시간 동안 로마 군인들한테 조롱과 매질을 당하신 후

골고타 언덕에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마르15,25),

오후 3시에 운명하셨으니(마르15,37) 그 얼마나 피와 땀을

이미 엄청나게 많이 흘리셨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나는 미사를 봉헌한 후 대사를 얻기 위한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는 십자가의 예수님 오상을 바라보며

미사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다섯 번 바친다.

 

우리는 예수님의 자관을 바라보며 우리가 머리로 짓는

죄와 교만을 뉘우치고, 그 자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눈과 코와 귀와 입술을 적시는 것을 보면서

오관으로 짓는 죄를 진실로 뉘우쳐야 한다.

 

 

그리고 못박힌 두 손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짓는 죄를

살펴야 하며, 못박힌 두 발을 보면서 진리와 은총,

빛과 생명과 사랑의 길을 떠나 어둠과 거짓과 죄악의 길

속에서 헤매이는 죄를 참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늑방에서 흘어나오는 피와 물을 바라보며

우리가 성체성사와 세례성사를 받은 참된 자녀이며

영생의 상속자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얼마나 지금도 내 자신이 예수님의 속을 썩여 드리는

자식인지, 예수님의 이름은 늘 부르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 성심께 수많은 못을 박고 창을 찌르는 유다 같은 존재는

아닌지를 참회해야 한다.

 

 

또 한가지 덧붙인다면, 그 로마 군인들 안에 역사하는 존재는

사탄과 그 졸개라는 걸 알아야 한다.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죄로 유인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느님과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마귀들에게 그렇게 맞으시고

못박히시며 고문을 당하셨기 때문에 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그래서 마귀들을 쫓아내고 굴복시킬 수 있으신 확실한 권한이

인성으로도 계심을 다시 한번 증거하신 것이고, 마귀한테

빼앗긴 영혼들을 다시 찾아 오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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