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하늘을우러러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수성구 2021. 1. 25. 03:30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마태오 복음 14장 24절에는

배가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나온다.

 

갈릴래아 호수는 급격한 기류 변화로

인해 돌풍이 불며, 이때 예상치 못한

큰 파도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맞아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제자들이 겪은

고난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지르는

산모의 고통에 비견될 만큼

극심한 고난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쪽으로 가셨다'

 

여기서 말하는 '새벽'은

'밤 4경'으로서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의

세시간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때에 제자들에게

오셨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헤어져

육지에서 4.6~5.6km떨어진

그 시간부터 그때까지 계속 파도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어'

해당하는 '페리파톤'(peripaton; walking)

이란 현재분사형을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오신 방법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호수 위를 육지처럼 걷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시는

예수님의 신성(神性)볼 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사람의 형체를 한 존재가

풍랑이 이는 호수 위를 걸어오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목격하고,

'유령이다!' 소리 지르며 몹시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는 보이기만 하고

실체가 없는 유령이 아니고, 바로

제2위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셨다.

 

영적 분별력이 부족했던 제자들은

미신적 사고에 빠져 신적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를 내어라'에 해당하는

'타르세이테'(tharseite; take courage)

'용기를 갖다', '담대하다', '위로하다'

뜻을 가진 '타르세오'(tharseo)의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계속

반복되는 동작을 명령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지금부터

계속하여 용기를 갖고 즐거워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환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계속적으로 영육간에 즐거움을 누리고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또한 '나다' '에고 에이미'(ego eimi;

It's me) '나는 나이다'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령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스승 예수님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동시에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안심해야 할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은 과거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한 '나는 있는 나다'라는

말씀과 의미가 통한다(탈출3,14).

 

당신 자신을 소개하심으로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동일한 말로 당신 자신을

소개하심으로써 고난 가운데서

어쩔줄 몰라하는 제자들에게

힘을 주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즉 현재 비록 풍랑이 일고 있지만

두려워하는 것을 즉각 멈추라는 뜻이다.

이 말의 이면에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되시며 보호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세상을 바라볼 때는

려움에 떨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는

그 두려움에서 즉각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주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그러나 여기서 이 단어는 호수 위로

걸어오는 존재가 예수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사용된

단어는 아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먼저 상대를

'주님'(kyrie)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베드로는 이미 상대가

예수님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감격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면

자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까지 발전한다.

 

29절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는

표현에는 당신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물위를 걸으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신적 능력과 예수님께 대한

요청에 의해 일시적으로

물위를 걸은 베드로의 기적 체험 현상을

차별화시키려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호수 위를 걸으시며 베드로로 하여금

물 위를 걷게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베드로를

물에서 건져내실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는' 행동을 하신 것은 믿음이

약해 세파에 휩쓸려

고난받는 자에게 다가오셔서

친히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관심과 깊은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 이 믿음이 약한 자야'는 양과 질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 말은 모든 성경에서

제자들에 대해서 사용되었는데,

큰 믿음을 가져야 할 자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데

대한 책망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의심하였느냐?'

마음을 한결같이 가지지 못한

상태가리킨다.

 

즉 이것은 처음 생각이나 각오를 버리고

중간에 방향을 선회한 경우를 말한다.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거센 바람에

빼앗긴 상태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거센 바람쪽으로 시선을 돌린 베드로는

그와 동시에 두려운 마음에 사로 잡혔고,

그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어

주님께 절박한 목소리로 구조 요청

했던 것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는 안전하지만, 반대로

주님이 아닌 세상을 바라볼 때는

두려운 마음과 함께 위험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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