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하늘을우러러

어둠 속에 있는 보화

수성구 2020. 12. 9. 04:30

어둠 속에 있는 보화

 

 

 

'흰 부분이 아닌 검은 눈동자를 통해서

사물을 보고, 밤이 되어야 아름다운

별빛, 달빛을 보듯이 사람에게도

어두운 체험, 실망, 아픔을 통해서

삶의 깊이와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선배 신부님께서 보내신 내용인데,

살면서 특히 아픔이 있거나 어두운

체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까 해서 함께 나눈다.

 

참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제도 어둠, 오늘도 어둠, 내일도

어둠과 같은 일이 계속 되는 사람에게,

아니 칠흑같은 밤만 계속되고 희망이

조금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싶다.

 

그만큼 고난을 받는 시간,

어둠과 아픔 중에 있는 시간들이

문학적인 소재로 치부되거나 낭만적인

어휘로 표현될 만큼 쉽지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난,

죽지 못해 마지 못해 숨쉬고 사는

일초일각,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고난의 시간과 십자가의 무게는

급기야 도무지 희망의 작은 출구조차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을

대면하게 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참 억울한 사람들의

삶에 유독 시선과 마음이 간다.

 

언젠가 미국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나이 30세 중반에 감옥에 들어가

40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70세가 넘어 풀려난 사람을 보았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냈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옥에서 살도록 내정된 인생이었는가?

그 사람의 억울함은 죽고난 뒤

내세에서 보상받을 수가 있는가?

 

얼마전에 오래된 영화같은데,

'Escape Plan'(탈출 계획)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나 위에서 볼 때 죄질이 나쁘고

지능적인 범죄자들로 치부되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눈을

가리고 잡아다가 감옥에 쳐넣었는데,

알고보니 그 감옥이 미국도 아닌

모로코 근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엄청난 함대같은 배였다.

 

그래서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도

없는 곳을 탈출하는 실베스텔론과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나오는 영화였다.

 

지금 이 지구상에 말같지도 않는

이념이나 사상 체계와 배우지 못한

무지와 환경에서 오는 게으름 때문에

인권이니, 인간의 기본권이니,

생명의 존엄성 같은 고급 단어들이

사치가 되어 있는,

그런 것들의 사각 지대에 사는

인생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감옥만 감옥이

아니고, 영적으로 어둠의 세력에

지배당하는 또 다른 영적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이런 이들은 하느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지 않고 풀어 주지

않으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가 없다.

 

그들에게 성경의 욥의 고통이나

의인들이나 순교자들의 고통과 증거

이야기가 얼마나 위로가 될까?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소위 성경에 나오는

'신(神)이 선택한 남은자들'에 의해

신앙과 종교적 진리는 아편처럼

그들을 위로하고, 고통을 승화시키며

지고(至高)의 인내로

그들을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내가 어둠 속에 있는 보화와

숨겨진 보물을 너에게 주리니 내가

바로 너를 지명하여 부르는 주님임을,

이스라엘의 하느님임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사45,3)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14,34)

 

특히 도무지 인간의 이성으로 납득이

안가는 '신비(神泌)로서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이 이사야서 45장 3절과

마르코 복음 14장 34절의 말씀이

지금 한도 끝도 없는 고난과 어둠 중에

있는 분들에게 절대적 생명의 말씀이

되어, 결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체념과 포기에서

부활의 빛으로 이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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