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모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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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연아 빨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엄마의 자명소리에 눈을 떴다.
늘 그랬다는 듯 나의 시선은
유리깨진 낡은 시계를 향해 있었다.
시간을 보고 나는 인상부터 찌푸리고
언성을 높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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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깨워줬어!!! 아우 짜증나!! 쾅.."
방문소리가 세게 울려 퍼졌다.
주섬주섬 교복을 입고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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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연아, 미안하다.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아씨.. 또 감기야?
그 놈의 감기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
"늦게..깨워줘서 미안하구나..
자.. 여기.. 도시락 가져 가렴.."
타악!!!
"됐어! 나 지각하겠어! 갈게!!"

도시락이 바닥에 내동댕이 처졌다.
신경쓰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
뛰어가면서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말없이 주섬주섬
내팽겨진 도시락을 다시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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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보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늘 엄마는 아팠기 때문에
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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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시간이다.
이번 주 토요일 날 수학 여행을 간댄다.
가고 싶었다.
가서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
가난이란 걸 깨끗히 잊고 오고 싶었고
엄마도 잠시 동안은 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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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와서 여느 때처럼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인상이 먼저 찌푸려졌다.
"어어...우리 민연이 왔어..?"
"엄마! 나 이번 주 토요일 수학여행 보내 줘!"

다녀왔다는 말도 안하고 보내 달라고만 했다.
"어.....수학..여행이라구....??
"어.""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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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돈부터 물어봤다.
우리집안 형편때문에
가야될지 안 가야될지 고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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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원은 든다는데?"
"8.....8만원 씩이나...?"
"8만원도 없어? 우리 생그지야?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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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난이 싫었다.
돈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가난이 싫었다..
엄마도 싫었고,
식구가 엄마와 나 뿐이라는 것도 외로웠다.
엄마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이불 속에서 통장을 꺼냈다.

"여기..엄마가 한푼 두푼 모은거거든..?
여기서 8만원 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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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보는 우리집의 통장을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는 말도없이
당장 시내의 은행으로 달려갔다.
통장을 펴보니 100만원이라는
나로선 어마 어마한 돈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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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여태 왜 안썼나 하는 생각에
엄마가 또 한번 미워졌다.
8만원을 뺐다. 92만원이 남았다.
90만원이나 더 남았기 때문에
더 써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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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틋 애들이 요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이라는게 생각이 났다.
40만원을 다시 뺐다.
가까운 핸드폰대리점에 가서
좋은 핸드폰 하나 샀다. 즐거워졌다.
난생 처음 맛 보는 즐거움과 짜릿함이었다.

핸드폰을 들며 거리를 쏘 다녔다.
여러 색색의 이쁜 옷들이 많이 있었다.
사고싶었다. 또 은행을 갔다.
이번엔 20만원을 뺐다.
여러벌 옷을 많이 샀다.
예쁜 옷을 입고 있는 나를 거울로 보면서
흐뭇해 하고 있었을 때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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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엄마가 잘라 준 촌스러운 머리였다.
은행에 또 갔다. 5만원을 다시 뺐다.
머리를 이쁘게 자르고, 다듬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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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수학여행 때 필요한 걸 살 차례다.
난 무조건 마구잡이로 닥치는대로 고르고, 샀다.
9만원이라는 돈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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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에 갔다.
또 그 지긋지긋한 집에 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가야만 하기 때문에 갔다.
엄만 또 누워있었다. 일부러 소리를 냈다.
"흐흠!!!"

소리를 듣고 엄마는 일어났다.
통장을 건네 받은 엄마는 잔액을 살피지도 않고
바로 이불 속으로 넣어버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토요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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쫙 빼입고 온 날 친구들이 예뻐해 주었다.
고된 훈련도 있었지만, 그때 동안은 엄마 생각과
가난, 그리고 집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제 끝났다.
2박 3일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이제 알았다.
또 지긋지긋한 구덩이 안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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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
웬일인지 집이 조용했다.
"나 왔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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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용하다.
신경질나고 짜증나서 문을 쾅 열었다.
엄마가 있었다. 자고 있었다.
내가 오면 웃으며 인사하던 엄마가
딸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자기만 한다.

"혹시 내가 돈 많이 썼다는거 알고 화난걸까?
쳇..어자피 내가 이기는데 뭐.." 하고
엄마를 흔들려 했다..그런데...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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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차가웠다.
이상하게 말라버린 눈물부터 났었다.
심장이 멎을것 같았다.
그 싫었던 엄마가 차가운데 이상하게 슬펐다.
믿어지지 않았다..
마구 흔들어 깨워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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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았다.
얼른 이불에서 통장을 꺼내
엄마의 눈에 가져다 대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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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다신 이런 짓 안할게!!!
안 할테니까!!!!!!!!!
제발 눈 좀 떠!!!!!!!!"
통장을 세웠다.
그런데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내렸다.
엄마의 편지였다.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 나의 사랑하는 딸 민연이 보아라.
민연아. 내 딸 민연아. 이 에미 미웠지?
가난이 죽어도 싫었지? 미안하다...미안해...
이 엄마가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돈도 없었어...
민연이한테 줄거라곤..
이 작은 사랑..
이 쓸모없는 내 몸뚱이 밖에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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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엄마 먼저 이렇게 가서 미안하다...
엄마가 병에 걸려서.. 먼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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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수술이란 거 하면 살 수 있다던데...
돈이 어마어마 하더라..
그래서 생각했지..
그까짓 수술안하면..
우리 민연이 사고싶은 거 다 살 수 있으니까..
내가 수술 포기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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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어서..
이젠.. 몇 달을 앞두고 있단다..
딸아.. 이 못난 에미..
그것도 엄마라고 생각해준 거 너무 고맙다..
우리 딸..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딸아..우리 민연아...사랑한다.........
사랑해......』
-엄마가-

추신 : 이불 잘 뒤져 봐라..
통장 하나 더 나올거야..
엄마가 너 몰래 일해 가면서
틈틈히 모은 2000만원이야..
우리 민연이..
가난 걱정 안하고 살아서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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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너무 미워진다.
그동안 엄마를 미워하던 거 보다
100배..아니 1000배. 아니, 끝도 없이..
내 자신이 미워지고 비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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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 같이 못난 딸을 사랑했어..어..?
수술비.... 내가 펑펑 쓴 그 돈 수술비...
왜 진작 말 안했어....어....?
왜 진작 말 안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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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정성껏 싸 준 도시락도 내 팽겨쳤는데..
엄마한테 신경질 내고 짜증 부렸는데..
엄마 너무너무 미워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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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밉고 나쁜 날 왜 사랑한거냐구..어..?
엄마 바보야? 왜 날 사랑했어...왜...왜......
이젠 그렇게 보기 싫었던
누워있는 모습 조차 볼 수 없겠네..

엄마의 그 도시락도 먹을 수 없겠구..
엄마가 맨날 깨워주던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겠네..
나.. 엄마 다시 한 번 살아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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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진짜 다시 한번
나한테 기회를 주신다면..
나.. 그땐 엄마 잘 해드릴 자신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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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상에서 만나자..응..?
꼭 만나자..? 어..? 엄마.......미안해.....
정말 미안해....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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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말
엄마한테 처음으로 말하는거다..?
엄마.............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네티즌들이 선정한 감동리얼리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