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살리고 떠난 아내 . 울산시 신정동에 사는 정태진 씨(46)는 매년 8월 4일이 되면 6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생일상을 차린다. . '고향 간 사람'의 생일상을 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연이 숨어 있기에 그러는 것일까? . 아마 아직까지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정씨가 고인이 된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987년 4월, 전북 김제 평야지대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영농 후계자로 선발돼 종묘, 농약 등의 구입문제로 종종 상경하곤 했는데 기차에서 우연히 동석하게 된 사람이 아내였다.

그렇게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했고 정씨는 당시 사회문제가 됐던 농촌총각 장가 못가는 서열에서도 빠질 수 있었다. . 비록 농촌에서의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 아내의 고운 심성에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 그해 6월 10일, 농기계 구입을 위해 기차로 상경한 그는 서울역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시위행렬을 보았다.

'6.10 민주항쟁'의 현장이었다. 정씨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위대에 떼밀려 대열에 합류한 후 어느덧 시청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두 팔을 하늘로 향하고는 독재 타도, 민주 쟁취를 외쳤다. . 그러다가 최루탄이 터졌고 정씨는 이를 피하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정씨는 흩어지는 시위행렬에 무참히 짓밟혔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 정신을 차려보니 병상이었고 옆에는 시골에서 급히 올라온 홀어머니와 아내가 지키고 있었다. . 그 사고 후 한동안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노환으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89년에는 2세도 태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두통이 오기 시작했고 여러 군데 병원을 다닌 결과 뇌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됐다. .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병인데 6. 10 민주항쟁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 이제야 온 것이다. 이때가 1991년이다. . 정신착란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로 정씨는 망가져갔다.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바깥을 돌아다닐 정도로 온전치 못한 그의 몸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 이처럼 심각한 정도의 정신병 환자로 91년부터 99년까지 8년을 살았으니 그 동안 가족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그동안 아내는 그 많은 농지를 정리해 미국의 유명한 정신병원인 '동부 컨퍼런스 병원'에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다. . 1년에 네 다섯 차례 미국의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 동안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 그의 삶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 그러나 아내의 지극정성에 힘입어 정씨는 차도를 보였고 99년 병원 측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다. . 정씨는 잃었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17일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아내는 이미 자궁암 말기 환자가 되어 병원에 누워 있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모자를 쓴 채 말 한 마디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아내는 죽음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 그 동안 남편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병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온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 . 아내의 지극 정성으로 즉 아내 덕분에 정신병을 고치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인데 아내는 이 기쁜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 남편이 미국에서 돌아온 지 4일 만인 1999년 12월 21일, 눈을 감지 않으려고 미간에 잠깐 동안의 미동만 보이다 아내는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남편을
살리고 대신 자신이 떠나 간 것이다. 그 후 남편은 아내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 대신 아내의 생일상을 차린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씨가 살아 있는 동안 제사 대신 아내의 생일상을 차리기로 한 것이다. . 또 주변에서는 세월이 약이라며 정씨에게 새로운 삶을 권유하지만 먼저 간 아내를 배반할 수 없어 혼자 살고 있다. - 파이뉴스 윤태 객원기자 -
세상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 내 사람이다" 라고 점찍어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복된 일입니다. .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서로서로 보완하여 완성해가는 삶. 그 인연을 소중히 지켜 가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여 보세요.
-옮긴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