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오늘의 강론

성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수성구 2019. 4. 15. 06:05

성주간 월요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조욱현 신부 강론

       

 

 

성주간 월요일: 마리아의 큰 사랑

 

복음: 요한 12,1-11: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하였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1) 베타니아로 가신 것은 유대인들이 미리 준비하여 열 나흗날까지 보관하던 파스카 양처럼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실 흠 없는 어린 양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파스카 축제 닷새 전에 예루살렘으로 가실 생각이었다. 라자로와의 식사는 유대인들의 관습이었다. 파스카 양을 준비하기 전에 잠시 흥겨운 시간을 가졌는데, 양을 마련한 후에는 축제 때까지 단식이나 정화하는 데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 식사는 또한 예수님의 권능을 상기시켜 주는 식사이다.

 

마르타는 정성스럽게 식사 준비를 하고 온 마음 다해 그리스도께 시중을 들었다. 라자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 영예를 가지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비싼 나르드 향유를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족들의 시중드는 것을 흐뭇해하시면서 받아주신다. 마리아는 여기서도 시중을 들지 않고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 이는 우리의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3) 이렇게 향유를 부어 그 향기가 가득 차게 하는 것은 그 행위가 하느님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행은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유이다. 자선을 베풀고, 병자를 찾아가고, 낯선 이들을 맞아들이는 일과 겸손, 친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것이다. 이 향유가 온 집안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내로 가득 채우는 값진 향유가 될 것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5) 유다는 열 두 사도 중의 하나였고, 돈주머니를 관리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돈 때문에 배반하지 않도록 그 일을 맡기신 것 같다. 믿음이 없고 사악한 유다는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맡고 있던 돈주머니에서 훔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믿어준 주님을 배반하고 만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7) 여기서 보면 유다가 순수하게 말하고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에 담신 신비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이것은 당신께서 곧 돌아가실 것이며 향료와 향유로 당신의 장례가 치러질 것임을 알려주신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8) 사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할 시간은 많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을 떠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다를 꾸짖으시면서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두둔해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분이 살려주신 라자로를 보려고 몰려 왔다. 그러니까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려고 결의하였다고 한다. 생명을 다시 얻어 살아난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은 참으로 눈먼 자의 눈먼 생각이 아니겠는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분이 당신을 죽이더라도 당신은 다시 살아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보면 이런 눈먼 자들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죽은 이들이 생명으로 돌아오고 죄를 용서받아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시샘하며 그들이 다시 죽기를 바라고 죽이고 싶어 하는지도 우리자신을 살펴야 한다.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유대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막으려고 살해에 또 살해를 저지를 생각을 한다. 라자로를 죽이면 그 기적의 힘도 지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선행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삶을 살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며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면서 이 성주간을 지내도록 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