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양치기 신부님

웃으시는 예수님 (양치기 신부님)

수성구 2018. 5. 11. 05:15

웃으시는 예수님 (양치기 신부님)



웃으시는 예수님

 

 

어떤 분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봤습니다. “복음서 그 어디를 봐도 예수님께서 웃으시는 장면을 발견할 수 없다. 그분은 존재 자체로 거룩한 분이셨으며, 인류 구원이란 막중한 사명에 대한 큰 부담으로 인해, 언제나 진지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사가들이 굳이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예수님은 탁월한 유머감각의 소유자로서, 얼굴 가득, 충만한 미소와 함께 지상생활을 영위하셨으리라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완강히 거부하시고 혐오하셨던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특징들이 완고함, 경직성, 형식주의, 겉치레, 자기 과시, 개폼 등등이었습니다. 당대 이런 성향의 대표격 인물들이 율법학자들이요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늘 경건했고, 엄숙했으며, 굳어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늘 가까이 하시고 선호하셨던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특징들은 한없는 부드러움, 자연스러움, 유연성, 소박함, 단순함, 겸손함 등등이었습니다. 이런 성향의 대표격 인물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요 성모님, 엘리사벳과 세례자 요한, 그리고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천진난만했으며, 밝은 미소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제 개인적으로 가장 각별하게 다가오는 모습은 철저하게도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그분의 지상생활은 지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지상생활은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러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정겹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먹음직스런 음식을 눈앞에 두고 절대로 체면 차리지 않으셨다. 잔치 집에 가시면 포도주도 한잔 드시고 흥얼거리시면서, 잔치분위기에 어울릴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어 축제를 즐기셨습니다. 초상집에 가셔서는 복받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너무도 잘 어울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분임을 확인한 어린아이들은 멀리서부터 달려와 그분을 껴안았습니다. 그분 품에 안겨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지상 생활은 당신께서 극진히 사랑하셨던 양떼들과 함께, 기쁨 속에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던 축제의 나날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 생활이 너무나 힘겨운 나머지, 울며 애통해하고 있는 우리의 등을 가만히 두드리시며, 이런 위로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복음 1620)

 

 

다시 한번 일생에 도움 안되는 근심을 떨쳐버려야겠습니다. 지니고 있어봐야 거추장스럽기만 한 걱정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 몰아내야겠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내면도 말끔히 정리해야겠습니다. 그래야 그 빈공간에 주님의 성령께서 찾아오시고, 그 모든 근심은 충만한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주님의 현존, 성령의 인도, 성모님의 동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합니까? 오늘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처럼 환한 미소로 가득합니까? 오늘 우리의 얼굴에서는 따뜻한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있습니까?(양승국 스테파노 S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