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양치기 신부님

키 작은 꽃도 아름답습니다! (양치기 신부님)

수성구 2018. 5. 3. 04:58

키 작은 꽃도 아름답습니다! (양치기 신부님)




키 작은 꽃도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두 명의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야고보란 이름이 그만큼 흔한 이름이었던가 봅니다. 한분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이고, 다른 한분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는 열 두 제자들 가운데, 넘버원 베드로 사도, 넘버투 요한 사도에 이어, 넘버쓰리 사도였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 간부급 제자, 핵심제자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 올라가실 때에도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올라가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야고보 사도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입니다. 넘버쓰리 야고보 사도(대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소 야고보’, 혹은 작은 야고보라고도 불립니다.

 

넘버쓰리 야고보 사도는 그나마 성경 안에서 그분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의 형’,‘주님의 형제란 호칭이 그에게 붙여졌습니다. 핵심제자단의 일원으로 예수님 지근거리에서 활동했던 자취들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알패오의 야고보 사도에 대해서 복음은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들을 소개할 때,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임을 밝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나마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딱 한 번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야고보에 이어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것 역시 둘 중 대소(大小) 야고보 중 누구를 칭하는지 명료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 성경이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으며, 베일에 가려져 있는 소야고보 사도,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묵상을 해봅니다. 인류 역사 안에 이름이 굵은 글씨로 새겨진다는 것, 자신의 행적과 업적이 만방에 알려진다는 것,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는 없겠지요. 모든 사람이 다들 무대 전면에 나서서 마이크를 쥘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멋진 한 바탕 무대를 꾸미기 위해서 누군가는 뒤에서 묵묵히 땀흘리며 희생해야 합니다. 행사 며칠 전부터 무대를 설치하기 위해 밤늦도록 망치질을 하는 사람, 행사에 필요한 제반 설비들을 끙끙대며 나르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성격상 아마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다른 사도들이 누가 높은가 길에서 따지고 다툴 때, 다른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 더 드러나기 위해 기를 쓸 때, 무대 뒤에서 그저 아무 말없이, 주님의 일을 하던 사람, 과묵한 사람, 진중한 사람이 소야고보 사도였을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서, 용감하게 스승 예수님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회개시키는 일들 앞에 마치 내 일처럼 기뻐했던 사람, 동료들이 복음선포를 잘 해낼 수 있도록 뒤에서 말없이 기도하고 지지하고 헌신하던 사람, 그가 소야고보 사도였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있는데, 다들 키큰 해바라기처럼 큰 꽃들만 있다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다들 화려한 장미꽃으로만 존재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때로 수수한 싸리꽃도 필요하고, 때로 키작은 난장이 패랭이꽃,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눈물꽃^^’도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이런 사람을 더 많이 필요로 합니다. 거침없으면서도 재미있는 강론으로 신자들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는 명 강론가 신부님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루 온 종일 강도 높은 노동으로 퉁퉁 부은 신자들의 발을 오래도록 정성껏 씻겨줄 키작고 겸손한 신부님들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도 하소연 할 곳 없는 상처투성이뿐인 신자들의 마음을 고백소 안에서 따뜻이 어루만져줄 자상하신 신부님들도 꼭 필요합니다.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에 충실한 침묵의 사도가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박수갈채보다는 주님께서 주실 상급과 칭찬만을 생각하는 익명의 사도, 익명의 의인, 익명의 천사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좋으신 우리 주님의 축복과 따뜻하신 우리 어머니 성모님의 동반 아래 기쁘고 충만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양승국 스테파노 S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