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수성구 2017. 10. 7. 06:14

2017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 바룩 4,5-12.27-29

5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6 너희가 이민족들에게 팔린 것은 멸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너희가 하느님을 진노하시게 하였기에 원수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7 사실 너희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제사를 바쳐, 너희를 만드신 분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8 너희는 너희를 길러 주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희를 키워 준 예루살렘을 슬프게 하였다.
9 예루살렘은 너희에게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들어라, 시온의 이웃들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큰 슬픔을 내리셨다. 10 나는 영원하신 분께서 내 아들딸들에게 지우신 포로살이를 보았다. 11 나는 그들을 기쁨으로 키웠건만 슬픔과 눈물로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12 과부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나를 두고 아무도 기뻐하지 말아 다오. 나는 내 자식들의 죄 때문에 황폐해졌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멀리하였다.
27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 이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를 기억해 주시리라.
28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29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복음 루카 10,17-24

그때에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어느 마을의 지혜롭다는 신부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오늘 당신 침대에 미녀 한 명이 누워 있다면, 당신은 그 미녀를 여자로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욕망을 자제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면 사막을 지나가다가 금 조각을 본다면, 금 조각을 조약돌인 양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가지고 싶은 마음을 참고 그 금 조각을 줍지 않을 수는 있을 겁니다.”

또 물었습니다.

“두 형제가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당신을 싫어하고, 다른 한 명은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그 두 형제를 공평하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속으로는 괴롭겠지요.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형제와 싫어하는 형제를 똑같이 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니라, 욕망을 억누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파울로 코욜로의 ‘마크튭’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사실 우리는 욕망 자체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대해 크게 자책을 하면서 힘들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상 욕망 자체에서 벗어나기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단지 욕망을 억누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바치시지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잘 떠올려 보십시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리 특출한 사람이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거나 오히려 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당할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을 세상에 성공적으로 알릴 수 있었습니다.

내 자신의 욕망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과 함께라면 충분히 욕망을 억누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조금씩 노력하면 됩니다. 주님 안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해지는 것,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니나 상코비치).


어젯밤에 찍은 밤하늘...


잔느 칼망 할머니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에 살던 잔느 칼망 할머니에게 어떤 변호사가 아주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할머니가 살던 아파트를 사겠다는 것인데 그 조건은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매달 2,500프랑을 지급하고, 돌아가시면 소유권을 넘겨받기로 한 것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죽어서 돈을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니까, 더군다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니 매달 우리나라 돈으로 300만원 가까운 돈을 그냥 준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조건입니까?

변호사 역시 이렇게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할머니의 나이가 90세였기 때문입니다. 60년대 중반에 90세까지 사시는 분은 거의 없었지요. 따라서 큰 목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집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변호사는 1995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할머니는 살아계셨습니다. 1997년 8월 4일, 12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변호사는 원래 집값의 두 배 이상의 돈을 지불하고서도 집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지혜로운 사람, 슬기로운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결국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20세 생일을 맞이하시는 잔느 칼망 할머니.